앞으로도 많은 일들이 탈없이 지나가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욕망에서 비롯된 치명적인 결함들로 인해 우리가 세운 기념비들은 쉬이 망가질 수 있다. 우리가 구축해온 '정상'이라는 세계의 허울 뒤에는 망설임과 무심한 선택들이 뒤섞인 심각한 우발성이 가려져 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혹은 정부든, '특별한 나'는 세월이 흐르면 점점 희미해져갈 필요불가결한 환상일 뿐이다.
그 결과로 얻게 될 자기연민의 마지막 변명조차 사라지게 되면, 헛된 꿈에서 깨어나 우리의 어리석음과 죄 많음을 똑똑히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로테스크한 과잉소비사회의 오벨리스크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소비하며 살아간다. 살 집과 먹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필요는 이미 오래 전에 충족되었고, 이제 새로운 상품들은 괴상한 모양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누워서 보는 안경, 온도 변환 머그컵, 소맥 제조기, 공중 부양 지구본, 휘어진 대형 TV. 우리 사회의 과잉소비풍조는 가히 그로테스크한 수준이다.
단지 기분이 좋거나 나쁘다는 이유로 우리는 이미 옷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정장과 블라우스, 스웨터를 새롭게 사들인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최신형 컴퓨터를 선물하고, 지금껏 쓰던 것은 겨우 3년 밖에 안 되었지만 구형이라며 밀쳐버린다.
선진 산업국에서는 한 사람이 평생 동안 평균 1만 가지의 상품을 소비한다. 목적에 합당하거나 즐거움을 주는 것과는 상관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다만 사회적으로 자신의 지위가 높아지는 기분을 갖게 될 뿐이다. 계속해서 이렇게 소모적으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자녀들은 1만이 아니라 2만 가지 상품을 쓰다가 삶을 마칠 것이고, 손자와 손녀들은 4만 가지의 상품을 쌓아 올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바호 인디언들은 불과 25개의 물건만 가지고도 평생을 살아낸다. (참조 - 레기네 슈나이더 <새로운 소박함에 대하여> 여성신문사 2000, 7면)
지난 10월 14일 총 건축비 3조5천억 원, 연면적 42만8934㎡에 이르는 롯데월드몰(제2롯데월드)이 개장했다. 국내 최대 명품 전문백화점이라는 에비뉴엘 월드타워점에는 국내에 첫 선을 보이는 50여개의 신규브랜드를 포함한 세계 각국의 명품 브랜드 200여 개가 곳곳에 들어섰고, 아시아 최대 규모 면세점이라는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에는 150여 개 화장품 매장을 비롯한 400여 개의 브랜드가 입점했다.
능히 국내 최대 쇼핑시설이라 할 만하다. 개장 후 열흘 동안 120만 명의 사람들이 오늘날 과잉소비사회의 기념비적인 이 오벨리스크를 숭배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신전 제사장들은 앞으로 연 1억명이 이 곳을 순례할 것으로 내다봤다.
가족 위해 가족을 저당잡힌 소작인들고려 말기의 소작제도(小作制度) 아래에서 전형적인 봉건적 지주는 농노적 지위에 있는 소작인으로부터 신분적 강제에 의하여 생산물의 50%에 달하는 소작료를 탈취했다.
정도전(鄭道傳)은 이에 대해 "공전제도가 붕괴된 이후 권세 있는 자들이 토지를 겸병하여 부자는 토지가 백과 천에 이르고, 가난한 자는 송곳 꽂을 땅도 없어서 부자의 토지를 차경(借耕)하지만 일 년 내내 힘써 일해도 먹을 것도 부족한 데 반하여, 부자는 편안히 앉아 경작하지도 않으면서 전인(佃人)을 사용하여 수확물의 태반을 거두어 들인다"고 하였다.
롯데월드몰에 입점하는 업체수는 1000여 개에 이른다. 이 경작지에서 일하는 소작인들은 6000여 명. 입점업체들은 매출의 30%에 해당하는 임대수수료와 별도의 관리비를 꼬박꼬박 봉건지주에게 납부해야 한다. 예상되는 연간 매출규모는 1조5천억 원. 오벨리스크를 구축한 봉건지주는 이제 편안히 앉아 소작료로만 연간 5천억 원을 벌어들인다. 6000여 명의 직원들 대부분은 시간당 6000원 내지 최저임금 5210원을 받고 하루 6시간에서 14시간을 일한다.
새로 개장한 쇼핑몰을 구경하기 위해 삼삼오오 매장을 둘러보는 가족 쇼핑객들을 서비스 하기 위해, 어린 아이들, 남편이나 아내와 보내야 할 직원들의 거의 모든 시간은 정작 고스란히 저당잡혀 있다.
바람 새는 풍선 러버덕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 공공미술 작가 플로렌타인 호프만은 리버덕에는 국경도 경계도 없다며 러버덕의 치유의 속성을 강조했다. 러버덕은 지난 2007년 프랑스에서 처음 선보인 이후 전 세계 16개국을 돌며, 귀여운 외모와 함께 잠시나마 각박한 현실을 벗어나 위로와 희망의 시간을 가져보자는 의미를 전파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키 16.5m, 몸무게 1000kg의 거대한 고무오리 러버덕은 우리나라에서 바람 새는 풍선이 되었다. 석촌호수에 띄워진 러버덕의 설치 및 전시 비용은 14억 원. 한 달 동안의 전시기간을 고려해 보면 하루에 4600만 원 어치의 공기를 계속 주입하고 있는 셈이다.
이 비용은 롯데월드몰의 첫 번째 공공미술 프로젝트라는 명분으로 오벨리스크 측에서 전액 후원했고, 전시도 롯데월드몰 개장에 맞춰 10월 14일부터 시작했다. 러버덕의 치유의 미소는 오벨리스크를 숭배하듯 롯데월드몰을 향하고 있다.
석촌호수변의 거대한 오벨리스크는 아직도 건설 중이다. 이 기념비는 555m 높이까지 치솟을 예정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경제성장의 황금기는 끝난지 오래다. 미래학자 마티아스 혹스는 오늘날 계속되고 있는 산업문화와 소비문화의 침체에 대해 사회의 심장에 피로가 쌓였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바 있다.
무분별한 소비, 무분별한 섹스, 너무나 많은 새로운 것들, 엽기적인 사건들이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그는 현상황은 치유되기 이전의 병과 같아서 희망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며, 우리가 문화와 가치의 체계를 통해서 치유의 희망을 발견하고 표현하게 될 때 산업문화와 소비문화도 좋든 싫든 성숙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기간의 경제침체는 새로운 문화현상을 가져와 이제 자발적인 소박함이 새로운 가치관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되었다. 소박함이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고 스스로 선을 긋는 능력이다. 한계에 도달한 경쟁사회에서 마치 수레바퀴 속의 햄스터처럼 기능하는 대신에 자신의 삶과 소비에 의식적으로 결정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이것들을 사들인다고 정말 행복해질 것인가 하고 자문해보는 것이다. 소박함의 대가는 내적인 자유, 보다 본질적인 것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는 능력, 근심과 생활에 대한 불안으로부터의 해방, 어쩌면 행복 그 자체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