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서울시 가락시장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앞마당이 아침부터 들썩였다.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와 제주도 등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여성농민 생산자들이 한 데 모여 축제를 개최했기 때문. 새벽부터 버스에 한 가득 싣고 온 각종 먹을거리와 토종 농산물, 소비자에게 줄 선물들이 지역의 푸근한 인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 먹을거리를 만들어보고 농사 일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체험마당은 엄마아빠 손잡고 나온 아이들로 가득하다. 단호박 찐빵과 쿠키만들기 체험은 가장 인기가 많은 곳. 단호박을 넣은 반죽을 예쁘게 모양내고 구우면 맛있는 쿠키가 완성. 제과점에서 사먹는 쿠키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맛이 있다.
예전에 시골에 가면 볼 수 있었던 짚으로 만든 계란꾸러미. 요즘은 시골에도 잘 없는 그 꾸러미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도 있다. 고사리 손으로 짚을 엮어 계란꾸러미를 만드는 모습에 엄마도, 구경하는 사람들도 흐뭇한 미소가 가득하다.
평소에 잘 먹지 못하는 오곡 강정 만들기, 대봉으로 곶감 만들기, 오색 송편 만들기 등 요즘엔 집에서 잘 해먹지 못하는 간식들을 직접 만들어 보며 아이들은 신기해하고, 어른들은 추억에 젖는다. 엄마가 옆에서 도와주니 아이들도 쉽게 만들어보며 신이 난다.
시끄러운 소리를 따라 가니 언니네장터가 나온다. 도별로 준비한 각종 지역 농산물이 한가득이다. 제주도에서 막 수확한 감귤을 비롯해 각종 과일, 채소들이 즐비하다. 생산자가 직접 가져와 판매하니 믿을 수 있어 기분 좋게 구매한다.
고소한 냄새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먹거리 장터다. 제주빙떡, 홍탁삼합, 도토리묵 등 여성농민들이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음식들이 다양하다. 직접 수확한 재료로 직접 만들어 파는 먹거리라 음식점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은 맛이 있다. 자리가 꽉 차 잠시 대기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거의 재료비만 받고 만들어주는 먹거리라 돈 만 원으로 배불리 먹는다.
행사장이 조금 정리될 무렵, 시원한 풍물소리가 들린다. 여성농민들이 직접 참여한 길놀이패를 선두로 토종씨앗을 든 생산자들이 뒤를 따른다. 무대에 올라 제문을 읽고, 한 해 농사를 잘 갈무리하고 토종씨앗을 이어갈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올린다.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토종씨앗 드림제'다. 이제부터 축제의 시간. 여성농민과 소비자들이 한 데 어울려 노래하고 춤추며 축제를 즐긴다. 지역공동체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함께 손잡고 어울렁 더울렁 하나가 된다.
언제부터인가 농사는 농사꾼만의 것이 되었다. 먹을거리는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농민과 소비자가 함께 우리 먹을거리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우리 농업은 스스로 일어설 힘을 점점 잃었다.
농업은 소비자의 식탁에서 비로소 완성된다고 한다. 농업의 시작과 끝이 농민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농산물을 먹는 소비자에게 달렸다는 것이다. 소비자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농업은 어떤 농민도 살릴 수가 없다.
중국과의 FTA로 수입개방에 기대감이 높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된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우리 농산물이 중국 농산물의 공세에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소비자들이 우리 농업에 관심을 갖고, 우리 먹을거리의 문제가 내 먹을거리, 우리 가족 먹을거리와 직결된 문제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추수한마당의 그 모습처럼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어울렁 더울렁 어우러지다보면 우리 농업에도 분명 희망은 있다.
덧붙이는 글 | * 언니네텃밭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 식량주권사업의 일환으로 운영하는 사회적기업으로 제철꾸러미, 언니네장터, 공동체 방문 등을 통한 도농교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문의: 02-582-1416/ www.sistersgarde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