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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n 드라마 <미생>이 유행이다. 직장인들의 삶을 현실적으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그 흔한 러브라인 없이 묵직하게 원작의 스토리를 끌고 간다는 점에서, 출연하는 모든 배우들의 연기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점에서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믿지 못할 불편한 현실도 눈에 띈다. 계약직 사원인 주인공 장그래는 설 선물로 '식용유'를 받지만 나머지 정규직원들은 '햄'을 받으면서 차별대우를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씁쓸한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이익과 효율성을 우선시 하는 회사의 입장에서, 계약직과 정규직의 구분이 개개인의 '입맛 구분'으로도 이어진다고 생각한 것일까? 계약직이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장그래의 입맛은 식용유를 먹을 정도의 가치가 있고, 정규직은 햄을 먹을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는 것인가? 장그래가 차별받는 수많은 장면을 지켜봤지만, 유독 그 장면을 보고 한동안 깊은 고민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유교적 차별문화가 재생산되는 사회

'설 선물' 장면에서 장그래가 당한 차별 역시 업무적 차별이 아닌, 상당히 후진적이고 비인간적인 차별이었다. 과거 계급주의가 통용되던 유교사회에서 소위 '아래 것'들과는 겸상도 하지 않겠다는 부당한 차별문화가 기업 내 신분 혹 직책을 명분으로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항상 열심히 하는 장그래를 응원해 온 오 차장도 장그래에게 욕심 부리지 말라고 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자책한다. 결국 잘못된 현실을 바꾸지도 못하고 그 현실 속에 살아간다. 드라마 속 그들은 모두 '미생(未生)'이었다.

우리 내면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그 실체, 계급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도 과연 이렇게 잘못된 관행과 관습, 계급문화는 현존하고 있는가? 우리나라 사회에서 소위 '계급'이라는 것은 유명무실이 아닌, '무명유실(無名有實)'하다고 본다. 물론 신분제가 폐지되면서 그 경계가 없어졌고 적어도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는 헌법상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계급이라는 명제를 꺼내는 것 자체가 오히려 민감하고 시대착오적 발상일 수 있다. 하지만 정말로 현실 속의 모든 사람들이 인격적으로 평등하고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멀리 있는 문제가 아니다. 고등학교 간 또는 대학 간에서도 사실상의 서열이 존재하고 그러한 소속감에서부터 나오는 개인 간의 서열화, 암암리에 다수가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프레임은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 가정 등과 같은 다양한 사회, 경제적 약자에게도 쉽게 적용될 수 있다. 물론, 과거 공자가 말한 것처럼 '중인 이상이라야 고차원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과격한 차별적 관점이 통용되진 않을지 몰라도, 소위 '계급'이라고 총칭되었던 부당한 차별문화 그 자체는 여전히 잔존함을 부인하지 못한다. 

미국의 사학자 벤자민 슈월츠(1916~1999) 역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계급구조와 권위를 인류의 문제에서 막 사라지려고 하는 과거악의 일시적 흔적으로 간주하는 근대 정치이념들의 광범위한 승리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문명들이 과연 계급구조와 권위 없이도 생존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는 (중략) 아직 확실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

잘못된 계급 문화, 우리 모두가 바로 잡아야

​ 어쩌면 신분상의 계급과는 다르게, 차별적 사회구조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구조는 누군가의 자의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닌,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어떻게 보면 나름 합리적이고 자연스러운 '생존을 위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나쁘다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흔히 말하는 좋은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고 그 사람이 좋지 않는 사람인가? 좋은 직장에 다니지 못한다고, 계약직이라고 이들을 낮은 인간으로 치부할 수 있는 것인가? 진정으로 계약직 사원은 설 선물로 식용유를, 정규직 사원은 햄을 주며 먹을 것으로 구분 짓는 '짓거리'가 정의로운 것인가?

사회적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는 업무상 '구분' 혹은 분야별 '구분'이 자칫 인간사이의 '계급'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우리는 스스로를 항상 경계해야 한다. 적어도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시민'이라면 말이다.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인 만큼 각자의 분야에서 나름의 신념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존중받아 마땅하다.

최근 압구정의 모 아파트 경비원이 한 입주민의 훈계와 갑(甲)질에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분신하였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이후 해당 아파트는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다른 경비원들 모두에게 해고예정통보를 했다. 다른 세상 이야기 같지만 지하철 타고, 버스타고 몇 정거장만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현실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잘못된 현실을 알고도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처럼, 여전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현실의 우리도 여전히 '미생(未生)'이다.


태그:#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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