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그마한 어린이집에서 일하고 있는 A씨.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아이들을 돌보는 생활을 매일 같이 해오고 있다. 일반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의 휴가 계획은 그저 먼 나라 이야기일 뿐. 유치원 교사인 친구도 곧 시작될 방학에 대한 기대로 들떠있지만, A씨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근로기준법 제60조 제1항에 따르면, 근로자라면 누구나 1년에 15일의 연차유급휴가를 누릴 권리가 있다. 물론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근로자 모두가 이 권리를 온전히 사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이 권리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최종결정권은 어디까지나 근로자 개인에게 있어야 하고, 정부와 법은 근로자들이 당연히 누려야할 이 권리를 외면해선 안 된다. 회사나 사회가 보내는 유무언의 압력 때문에 사실상 무의미한 권리라 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상당수 어린이집 교사들은 근로기준법이 말하고 있는 이 권리를 사실상 국가로부터 규제받고 있다. 법적으로 어린이집은 완전휴무나 방학이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어린이집 운영기준을 위반할 경우에는 영유아보육법 제44조 시정명령에 따라 최대 운영정지 또는 시설폐쇄에 이르는 강력한 처벌을 받게 된다. 예외적으로 학부모들의 동의서를 받았거나 대체교사를 구한 경우에는 휴무가 가능하다고는 한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현실성 있는 논리일까?
방학 때마다 반복되는 어린이집-학부모 신경전
#2.맞벌이를 하는 B씨 부부는 곧 다가올 아이의 방학이 무섭다. 멀리 계신 부모님께 아이를 맡길 수도, 부부 중 한 명이 휴가를 쓸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 아이를 맡길 곳을 이리저리 알아봤지만 도무지 마땅한 방법이 나오질 않는다. 부부의 사정을 몰라주는 어린이집 선생님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B씨는 "방학 무렵이면 어린이집에서 공문과 학부모 동의서를 보내오기는 한다"면서도 "동의를 하지 않으면 아이를 돌봐주는 선생님들과 감정이 상하는 것이 두렵고, 우리 아이만 혼자 어린이집에 남겨지진 않을까 하는 마음도 들어 어쩔 수 없이 동의한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학부모 동의가 지극히 형식적이고 반강제적인 절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학부모 C씨는 "일부 어린이집은 학부모 동의를 아예 받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방학을 공지하기도 한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한 어린이집 관계자는 학부모들의 불만을 이해한다면서도 "법적으로 정해진 어린이집 운영시간을 맞추기 위해, 대부분의 어린이집 교사들이 초과근무 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하루에 12시간 가까이 근무한다"며 "어린이집 교사들도 근로자인 만큼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유치원의 경우엔 한 달씩 방학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데 반해, 어린이집은 동의를 받고 1주일만 방학을 하겠다고 해도 신고하겠다는 항의가 들어오는 경우가 있어 섭섭할 때도 있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방학 대신 대체교사를 선택할 순 없을까?
한국어린이집 총연합회 김종필 소장은 12월 중순 기자와의 통화에서 "여건이 비교적 좋은 국공립 어린이집과 직장 어린이집을 제외한 민간 어린이집들의 경우에는 대체교사를 구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소규모 어린이집들은 교사가 휴가를 떠나게 되면 법적으로 정해진 교사 대 아동 비율을 맞출 수가 없어 방학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의 2013년 보육통계를 보면, 현원 20명 이하의 소규모 어린이집이 전체의 절반 이상인 2만5494곳에 이른다.
어린이집의 완전휴무를 법적으로 금지한 정부. 그렇다면 어린이집 대체교사 지원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보건복지부에 문의한 결과 정부는 올해엔 428명의 대체교사를 지원하고 있고, 내년엔 449명을 지원할 계획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전국의 어린이집이 4만4천여 개에 이르고 교사의 수가 30여 만 명에 달하는데 비해 정부의 지원이 너무 적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이에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대체교사 수급은 원칙적으로 어린이집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답했다.
대체교사의 수가 이렇게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어린이집 여교사들은 근로기준법 제73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월 1일의 생리휴가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 한 어린이집 교사는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한 휴가 때도 중간에 당직으로 나오는 문제 때문에 제비뽑기를 하는 어린이집도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생리휴가까지 챙기는 것은 꿈같은 소리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처우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한국어린이집 총연합회는 4년째 동결되어온 보육료를 최소 16%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국회는 내년 보육료를 올해 대비 3%만 올리는 안을 이달 초에 가결시켰다. 어린이집 관계자들은 물가상승률과 열악한 보육환경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무책임한 결정이라며, 보육료 3% 인상 결정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미 최종 결정된 사안이라 어쩔 수 없다는 입장만을 고수하고 있다.
보육에 대한 불안으로 저출산이 국가적인 문제가 되고 있음에도, 방학 때마다 불거지는 어린이집과 학부모들 간의 전쟁. 지금처럼 교사나 학부모의 희생만을 계속 요구하기보다, 이제는 정부가 보다 더 적극적인 자세로 보육문제를 책임져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