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듯 말듯 애간장을 녹이는 봄소식과 함께, 여기저기서 벼룩시장·프리마켓·시민장 개장 소식이 들려온다. 시민 셀러들의 열정과 상상의 마당이 되어 주었던 여러 마켓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서울의 골목골목을 들썩이게 할 모양이다. 지난 14일, 서울의 이름난 마켓 중 한 곳인 '늘장'이 새 단장을 마치고 봄맞이 개장을 했다 하여 찾아가 보았다.
공덕역 삭막한 빌딩 숲 사이로 돌아 들어서면, 두런두런 얘기소리, 음악소리, 아이들 웃음소리 정겨운 '늘장'이 있다.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주단체들의 아기자기한 컨테이너와 텐트들. 그사이 때때로 열리는 마켓이 공존하는 곳이다. 시민, 예술가,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만든 다양한 제품도 만나고, 먹거리도 맛보고, 공연이나 워크숍, 체험행사 등에도 참여할 수 있다. 2013년 여름 첫선을 보인 이래, 공덕동의 새로운 대안 시장, 생활 문화 장터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날마다 즐거운 상주단체 11곳 11색 공간
늘장 봄 개장을 알리는 현수막을 따라 들어서니, 감미로운 현악기의 선율이 나즈막이 발길을 이끈다. 봄볕마냥 포근한 선율에 취해 다다른 곳은 그림책 카페. 책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공간에선 실내악 공연 펼쳐지고 있었다. 그림책 읽어주는 엄마 연주자 '쁘띠꼬숑'의 따뜻한 공연이었다.
"저희는 늘장 안에서 책과 관련된 활동들을 주로 담당하고 있어요. 이곳은 도서관처럼 누구나 그림책을 볼 수 있는 곳인데요. 북카페도 있어 책을 보며 차도 마실 수 있습니다. 오늘은 늘장 개장을 맞아 쁘띠꼬숑의 그림책과 함께하는 클래식 공연, 그리고 '걱정 인형 만들기' 워크숍이 진행되는데요. 주말에는 이처럼 그림책과 예술프로그램을 접목해 다양한 공연이나 체험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습니다."이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그림책미술관 시민모임' 대표 한명희씨의 설명이다. 그림책이라 해서 아이들만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 젊은 층이나 어르신들도 많이들 찾고 있었다. 매월 첫째 목요일 저녁에는 '청년들의 그림책 읽기 모임'도 진행된다고 하는데, 청년부터 주부나 작가까지 다양한 시민들이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고 한다. 자녀를 위한 그림책이 아닌 자신을 위한 그림책을 함께 읽는다고 하니, 마음이 따뜻해지는 모임이 될 듯싶다. 그림책 카페는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낮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문을 연다.
이곳 늘장의 가장 큰 특징은 이처럼 상주단체들이 입주해 있다는 것이다. 늘장 안에 듬성듬성 놓여있는 주황, 노랑, 푸른 컨테이너와 대형텐트들이 바로 상주단체들의 공간인데, 개성 있는 겉모습만큼이나 각양각색의 구성원들이 들어와 있다.
영화를 매개로 다양한 문화 예술 행사와 네트워킹 파티가 열리는 문화예술공간이자 영화도서관인 '늘씨네', 창의력 발산 놀이연극을 진행하고 있는 '극단 더더더', 포슬린·가죽공예 ·캘리그라피 등 핸드메이드 작가들이 주민과 함께 손으로 행복한 시간을 만드는 공유공방 'HAP' 등이 있다. 또, 면생리대·앞치마·에코백 등 다양한 친환경 면제품을 생산하는 '목화송이'와 친환경 문구 전문업체 '지구나무', 종이인형만들기와 타로 상담을 진행하는 '사람인타로', 업사이클 디자인 제품을 전시·판매하고 체험 워크숍 등을 진행하는 '쌈지농부', 마을기업의 상품 및 서비스를 소개하는 '마을기업연합회 - 공유공간', 중고물품이나 수공예품 · 사회적 기업 제품을 판매 혹은 위탁 판매하는 '마켓인유' 등이 있다.
그리고 늘장을 찾는 가족단위 시민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는 '자연의 부엌 - 마음먹기'도 만나볼 수 있다. 개장일에도 역시 수제 화덕 피자 만들기 체험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마음먹기에서는 이와 같은 체험은 물론, 적정기술을 이용해 만든 건강한 음식도 맛볼 수 있다. 무농약 화덕핏자, 샐러드, 부추전, 깡통라면 정식, 핸드드립 커피 등을 판매한다.
오감이 즐거운 주민 참여 공간, 플리마켓
"과일컵이랑 카프레제 샐러드, 요즘 인기 있는 치아바타 샌드위치도 만들어 봤어요. 계란샌드위치는 많이들 해 드시는데, 전 치즈를 넣어 더 맛있게 만들었고요. 상그리아는 낮이라 에이드로 만들어봤고, 딸기에이드도 만들어왔어요. 늘장은 지나가며 봤었는데,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다 이렇게 참가하게 되었네요."
마포구 지역 주민이라는 손유리씨는 늘장 셀러로는 처음 참가하는 것이라 한다. 이른 아침부터 손수 만들어 가져온 먹거리들은 보기도 좋고 맛도 좋아, 제법 인기가 있었다. 앞으로 늘장을 비롯한 다양한 마켓들에도 참가하고 싶다는데, 잘 되면 가게도 열어보고 싶다는 소망도 살짝 귀띔해준다.
늘장은 이처럼 지역 주민들이 직접 만든 먹을거리, 마실 거리, 수공예품이나,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은 중고물품들을 가져와 파는 벼룩시장도 열린다. 이와 같은 '주민참여마켓'과 함께, 사회적 기업·협동조합·마을기업·자활기업 등 사회적 경제 주체들이 참여하는 '소셜 마켓', 주민자치단체와 같은 외부단체 및 기업 등이 참여하는 '오픈마켓'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3월 한 달 동안은 시범적으로 주말에만 열리는데, 4월부터는 점차 늘려, 가능하다면 지난해처럼 늘 열리는 늘장으로 확대할 예정이라 한다.
"저희는 수제청이랑 케이터링 도시락 만들고 있는 소담 키친이란 곳이고요. 마포구 망원동 근처에서 매장 겸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어요. 지금 1년 정도 됐는데, 작은 업체다 보니 많은 분들한테 알리기가 힘들어서 판매 겸 홍보 겸 해서 이렇게 나왔어요. 저희 수제청의 특징은 레몬을 깨끗이 씻어 레몬 제스트와 흰색 부분은 다 버리고 속살 부분만 사용해, 쓰지 않고 상큼한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거예요. 설탕도 건강을 생각해 당 흡수가 적은 자이리톨 설탕만 쓰고 있고요."
이처럼 서울의 마켓들은 손맛 좋은 지역 주민들의 참여의 공간이자, 도전의 장이다. 또한, 작은 가게들의 홍보 창구 역할도 한다. 참여하는 사람도 즐겁고,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한 다양한 마켓들. 이런 마켓들이 더욱 활성화된다면, 서울의 골목들도 활기를 띠게 될 것이다.
경의선 폐선 구간에 들어선 늘장은 오는 5월 경의선 숲길 공원 개장을 앞두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라 하면 상주단체들이 힘을 모아 설립한 '늘장협동조합'이 운영을 맡아 하게 된 것.
지난해까지 개별 단체나 사업자가 운영했다면, 올해부터는 공간 입주자들이 함께 운영하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주민 참여도 더욱 늘려나갈 계획이라 한다. 매월 1회 늘장 사업 설명회를 열어 주민들의 제안 의견도 받고, 지역 사회 지도자·주민대표·도시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별도의 자문위원단을 구성하여 사업 방향이나 활동에 대한 자문도 받을 예정이다.
또한, 경의선 숲길 공원 각 구간 운영에 참여하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며, 다양한 기획 장도 선보일 예정이다. 개장식 첫날은 체험을 통해 생태, 예술, 역사, 환경을 공부하는 어린이 토요 체험학교 '동네에서 놀자'가 진행되었다. 마포의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진행해온 프로그램으로, 늘장에서 선보이게 된 것이다. 이렇듯 늘장에서는 앞으로 동네에서 놀자, 여행자 마켓과 같은 다양한 기획 장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날마다 새로워질 늘장의 모습과 그날그날 진행 내용이 궁금하다면, 늘장
블로그 나
페이스북을 참고하자. 혹시라도 늘장 나들이를 계획 중이라면, 프로그램 내용이나 시간 등이 다소 유동적이니, 반드시 확인한 후 찾아가는 것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서울시온라인뉴스 '내 손안에 서울'에도 보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