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우리 모두의 '스물'은, 곧바로 두 귀가 달아오르는 부끄러움과 지우고 싶은 수많은 '흑역사'들, 그렇지만 돌아가고픈 아련함과 향수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알을 막 깨고 나온 새가 허기와 호기심에 보이는 모든 것을 쪼아대듯이, 미성년자의 틀을 겨우 벗어난 우리들은 실수로 기억될 많은 아기 발자국들을 남기곤 했었다. 우리가 남긴 실수의 족적들은 때로는 순수하진 않았어도 순진했었기에 그리움이 대상이 되곤 한다. 영화 <스물>은, 우리가 한때 그랬듯, 갓 성인이 된 세 친구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영화를 요약하는 것은 매우 골치 아픈 일이다. 세 친구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물이 되어 겪는 1년간의 이야기를 그리는데, 각각의 에피소드는 신변잡기적이고 옴니버스 형식이어서, 나이 '스물'을 제외하고는 영화를 관통하는 주된 제재가 없다. 사실 영화를 감상하며 줄거리를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 관람을 끝낸 관객들의 머릿속엔 스토리라인 대신에 당혹감 혹은 유쾌함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스물>은 호불호가 갈리는, 마치 민트맛 아이스크림과 같은 영화다. 영화에 대한 평가를 보면 5분마다 한 번씩 빵 터졌다는 관객이 있는가 하면, 이런 저질스러운 영화를 보게 돼서 충격적이라는 반응도 있다. 민트맛 아이스크림도 마찬가지이다. 민트향이 마치 치약 냄새가 난다며 질색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상쾌한 맛에 중독돼 민트맛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스물>에서 관객들의 취향을 나누는 요소는 다름 아닌 날 것 그대로의 거친 웃음코드다. 마치 현재 20대들의 대화를 그대로 따온 것 같은 리얼리티 있는 대사는 분명 지금까지 스크린을 통해서 듣지 못했던 수위의 것들이다. 극도로 현실적인 대화들은 양날의 검이 되어 시청자를 폭소하게 하거나 당황하게 한다.
참신한 영화 <스물>... '거친 웃음코드'로 평가 엇갈려
리얼리티를 잘 살린 대사와 달리, <스물>의 플롯에서는 리얼리티를 찾아볼 수가 없다. 집에 쌀이 떨어졌다는 준호는 어느 순간 집에 치킨과 훈제오리를 사가지고 가는 금전적 여유를 부린다. 또한, 그가 갈망하는 만화가의 꿈과 공장에서 일해야만 하는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아 관객으로 하여금 그가 내리는 결정이 그렇게 의미 있었는지를 의심하게끔 한다.
또한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하는 '그녀'를 교수에게 뺏겨버리게 되는 강하늘은, 비슷한 방법으로 대학 첫 사랑을 묘사했던 <건축학 개론>과 비교해 보았을 때 현실성이 많이 떨어진다. 무명 연예인을 만나 영화감독을 꿈꾸게 되는 김우빈의 설정은 리얼리티를 아예 고려하지 않은 듯싶다.
비현실적인 배경을 가졌다고 해서 영화 내에서 김우빈의 연기까지 부자연스럽지는 않다. 오히려 정반대이다. <스물>의 김우빈은 마치 제게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미친 듯한 활약을 보여준다. 김우빈이 맡은 '치호'는 잘생기고 여자를 밝히는 바람둥이이자, 꿈도 없이 집에서 용돈을 타 내기 위해 땡깡을 부리는, 일종의 진상이다.
찌질해야 할 때엔 찌질의 극치를 보여주는, 때로는 두꺼운 낯짝으로 철판을 깔고 집에 데려온 여성에게 당황스런 멘트를 던지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김우빈이 실제로 집에서 저런 캐릭터인가?'라고 되물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친구2> 그리고 <기술자들>에서 이어지는 김우빈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모습이었다.
전반적으로 평가해 봤을 때, <스물>은 꽤 참신한 영화이다. 웃음을 목적으로 하는 다른 많은 영화들처럼 억지스러운 감동코드를 좇지도 않았고, 뻔한 해피엔딩보다는 열린 결말을 내려 차별성을 두었다. 하지만, 독특하고 거친 웃음코드 때문에 적게는 20대, 많게는 30대 관객들에게서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은 분명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 나이를 살아가며 그 나이의 귀중함과 소중함을 진정으로 이해하기는 힘들다. 자신의 스물을 뒤돌아 볼 기회가 있었던 늦은 이십대들에게,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을 권하고 싶다. 비록 영화가 15세 관람가이지만, 십대들이 부모님과 함께 영화를 보러가 5분 만에 얼굴이 시뻘게지는 불상사는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