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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유럽 여행에서 맥주의 새로운 맛을 알게 된 후 여러 맥주를 맛보고 돌아다녔다. 최근 한국에도 불기 시작한 크래프트 맥주 열풍으로 이제 막 새로운 맥주에 눈을 뜬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 되고자 하는 마음에 정리를 시작했다. 조금씩 축적한 개인 지식에 덧붙여 미국양조협회 등 사이트와 텍스트, 한국 비어포럼과 '맥만동' 등을 참고했다. - 기자 말

Ingredients (재료) : 몰트, 홉, 이스트 그리고 물

 맥주저장통.
맥주저장통. ⓒ sxc

몰트 : 그 이름 자체가 보리 맥(麥)에서 나왔듯, 맥주의 재료 중 첫 번째는 보리다. 그 가운데서도 싹튼 보리(맥아=몰트)가 기본이다. 몰트는 맥주를 마실 때 첫 맛에서 느껴지는 달콤한 맛과 맥주의 색깔을 결정한다. 몰트의 종류는 건조 방식과 생산된 도시 등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되고, 그 종류에 따라 맥주의 달콤한 맛 역시 그 정도나 미세한 맛 등이 다르다.

: 몰트가 맥주의 단맛을 좌우한다면, 홉은 맥주의 쓴맛을 만드는 중요한 원료다. 홉은 다년생의 줄기식물로, 초록색 열매 속의 루프린(luprin)이라는 노란색 알갱이들과 그 속에서 나오는 오일이 맥주 맛에 직접적으로 작용한다. 홉은 끝 맛(피니시)에서 느껴지는 씁쓸함의 정도와 맥주의 향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몰트에서 나온 단 맛과 함께 맥주 맛의 균형을 잡아준다. 이 뿐 아니라 저장, 살균 효과도 있다. 홉 또한 생산지에 따라 그 종류가 다양하며 각각의 개성이 아주 다르다.

이스트 : 맥주는 발효주다. 때문에 맥주를 만드는 데 있어 효모 역시 필수적이다. 효모는 발효과정에서 맥아가 만들어낸 당을 먹고 알코올과 탄산가스로 바꿔낸다. 효모는 에일에 사용되는 상면발효 효모, 라거에 사용되는 하면발효 효모, 마지막으로 벨기에에서 람빅이란 맥주를 만들 때 사용하는 야생효모 등 크게 세 가지로 구분이 가능하다. 동시에 이 셋은 맥주 스타일을 크게 구분하는 척도기도 하다. 

: 앞서 소개한 세 가지 재료만큼, 혹은 그보다 맥주 맛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물이다. 물은 맥주의 95%를 차지한다. 물 맛이 좋아야 맛 좋은 맥주가 나온다. 미국 오레곤 주의 브루어리들이 설산의 빙하수를 강조하는 이유, 체코와 독일의 물맛을 논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Japan (일본)

미국 다음으로 크래프트맥주 시장이 활짝 열린 곳? 가장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다. 처음 이 여행을 기획하며 자문을 받을 당시 꽤 많은 추천을 받은 곳이 바로 일본이었다. 어쩌면 '장인정신'과 '지역 고유의 문화'가 뿌리 깊은 일본의 특성상, 맥주에 녹은 로컬(local)을 논하기엔 일본이 도리어 미국보다도 적격일지 모르겠다.

주변의 맥덕들도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다양한 크래프트맥주와 더불어 그 안에 담긴 지역 문화를 맛보고자 할 때, 일본을 방문한다. 1990년대 중반 기린, 아사히, 삿포로 등 대기업 맥주들이 주름잡던 때 혜성같이 나타난 '지비루(지역 맥주)'들. 조금 사그라들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200여 곳 가까이 되는 그들의 지속력은 꽤 탄탄하다.

Key (키워드)

정의를 논할 때도 잠깐 살펴봤지만, 크래프트맥주는 단순한 술이라기엔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특히 크래프트맥주란 말이 탄생한 미국이라는 나라를 볼 때, 크래프트맥주는 지켜야 할 하나의 문화기도 하다. 어째서냐고? 바로 이어 소개할 이 몇몇 키워드들에 주목해 미국 크래프트맥주를 좀 더 파헤쳐보자. 

Local & Minor (지역성과 마이너)

 세상엔 정말 다양한 맥주가 있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맥주가 있다. ⓒ flickr

Neighberhood (이웃)

유럽 출신 이민자들이 미국의 크래프트맥주를 논할 때 첫 번째 키는 단연 지역성이다. 미국은 곳곳마다 마치 특산물마냥 그 지역을 대표하는 크래프트브루어리들이 존재한다. 단순히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브루어리들은 로컬 팜과의 직거래를 통해 원료들을 가져오고, 양조가 끝나고 남은 곡물 찌꺼기들은 다시 로컬 팜 가축들의 먹이로 돌려준다.

게다가 수익 중 일부를 지역 내에 기부하거나 행사 스폰서를 자처하며, 라벨로 제작하는 로고 하나에도 지역의 특성을 한껏 살려낸다. 그들은 스스로 지역사회와 긴밀한 관계를 가질 것을 주문하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것이 크래프트맥주가 탄생하고 지금과 같이 단단해질 수 있던 배경에, 지역 커뮤니티의 끈끈함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사람들이라면 아침에 일어나 시에라네바다페일에일을 가볍게 마시고, 저녁엔 도그피쉬헤드 IPA를 들이킬 것 같지만, 사실 크래프트맥주가 현재의 미국 맥주시장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 빠른 속도로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지만, 아직은 우리나라처럼 BMC(버드와이저, 밀러, 쿠어스 등 미국 3대 라거 맥주)가 시장을 쥐고 흔들고 있다.

미국의 크래프트브루어리들이 2000곳이 넘는다지만 아직 마이너란 소리! 그런데 정작 그들, 맥주를 만드는 사람들은 신경쓰지 않는다. 심지어 때로는 스스로가 마이너가 되길 자청하기도 한다. 'off-centered ales foroff-centered people.' 중심에서 벗어난 (주류에 편입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변두리 맥주'를 만들겠단다.

여기서 말하는 중심(center)인 BMC와 같이 대규모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맥주에 맞서서 본인들이 만들고 싶고, 마시고 싶은 맥주를 만들겠다는 것. 90%의 메이저가 되기 보다, 오히려 자신들과 같은 사람들(beer geeks)을 위한 맥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미국 크래프트맥주의 역사를 볼 때, 그리고 이 문구를 만들어낸 도그피쉬헤드 브루어리의 너무도 유명해진 모토를 볼 때, 미국 크래프트브루어들이 가진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난데없는 금주령, 양조장을 암흑기로

유럽 출신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답게 미국 맥주 역사의 첫 걸음은 가벼울 '뻔'했다. 맥주의 본토에서 익힌 양조기술이 저마다 다양하게 꽃을 피우려는 순간, 난데없는 금주령은 많은 소규모 양조장들을 암흑기로 밀어넣었다.

'20세기 역사상 가장 바보스러운 법'이라는 이 법은 비록 1933년에 해제되었지만, 이미 우리나라로 치면 하이트, OB와 같은 대기업들이 맥주산업계를 꽉 잡고 흔들던 상태. 이 결과로 맥주 역시 라이트 라거들이 시장을 지배했다. 때문에 좀 더 맛있는 맥주를 갈망하던 사람들은 취미 겸 집에서 맥주를 담가 앞 집, 옆 집과 나눠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웃들과 나눠먹던 것이 알음알음 호응을 얻기 시작했고, 1960년대 이르러 캐스케이드 홉까지 개발되자 비로소 크래프트브루어리들의 숨통이 트였다. 

이 뿐 아니라 ABA의 '크래프트브루어리들이 추구해야 할 기본 정신'중에는, '대다수의 미국인의 생활 반경 10 마일 안에 브루어리가 있어야 한다'라는 문구가 있다. 실제로 대다수 브루펍이나 탭하우스를 구경해보면 자전거 타고 동네 마실 나왔다가 맥주 한 잔 하고 돌아가는 오래된 단골주민들이 많다. 직원들과도 자연스레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직원과 손님이라는 단편적인 비즈니스 관계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이웃'인 것이다.      

Originality (전통)

미국 크래프트브루어리들은 이전에 없던 것을 과감히 실험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전통을 고수하는 유럽 맥주들과 가장 뚜렷이 구분되는 점이자 미국 크래프트맥주의 가장 큰 강점이기도 하다. 유럽 맥주들 각각은 자기들 고유의 스타일과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높다. 말인 즉, 그 외 다른 나라 스타일을 실험한 맥주들을 찾기는 어렵단 얘기.

그런데 미국 크래프트브루어리들은 국가나 전통, 고유의 스타일에 갇혀있지 않다. 우선 모든 것을 열린 상태로 받아들이며, 자기들이 만들고 싶은 대로 재해석해내고 때로는 아예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어찌 보면 지극히 미국스럽다. 여튼 이렇게 맥주를 '갖고 놀 줄 아는' 덕에, 비록 맥주 시장 전체에선 작은 파이를 나눠먹어야 하는 경쟁자일지언정 이들 크래프트브루어리들 저마다가 가진 오리지널리티는 상생과 선의의 경쟁을 가능하게 한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덧붙이는 글 | 4년 전 유럽 여행에서 맥주의 새로운 맛을 알게 된 후 여러 맥주를 맛보고 돌아다녔다. 최근 한국에도 불기 시작한 크래프트 맥주 열풍으로 이제 막 새로운 맥주에 눈을 뜬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 되고자 하는 마음에 정리를 시작했다.



#크래프트비어#수제맥주#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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