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많은 비를 동반한 장마가 시작된다고 하더니 하늘은 잔뜩 흐리고 간간이 비가 내리다 맙니다. 아침부터 비가 온다는 뉴스를 접해 우산을 들고 출근을 했지만 아직 생각했던 것만큼의 비는 내리지 않는 상태입니다. 올해 들어 적당한 비가 내리지 않아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애간장을 태웠는데, 넘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비가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몇 주 동안 기침 감기가 너무 심해서 고생을 하고 난 후, 며칠 전 고향 집을 찾았습니다. 퇴근하자마자 바로 고향으로 갔지요. 고향 가까이 산다는 것이 때론 좋을 때가 있습니다. 어머니를 찾아뵙고 싶을 때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좋습니다. 해는 이미 서산으로 기울었고, 어머니께서 아직 논두렁을 거닐고 있을 거란 생각에 바로 논으로 향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구부정한 허리에 지팡이를 짚은 채 논두렁을 걷고 있었습니다. 순간, 마음이 찡했습니다. 그런 줄 알고 있었지만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자꾸 본다는 것은 그리 편치 않은 거지요.
"엄~마~엄~마~"소리를 질렀습니다. 몇 번을 그렇게 부르고 나서야 어머니는 허리를 펴고 제가 서 있는 쪽으로 얼굴을 보입니다. '평일인데 어쩐 일이냐'는 표정으로 다소 놀란 얼굴을 하며 그 자리에 앉습니다.
"와 이제 오노~""그라믄 언제 오노~ 퇴근하고 오니 지금 올 수밖에~ 그러케 보고 싶더나~""너무 늦어서 그라제~ 밥은 묵었나~""아직이지, 아이고, 엄마는 허리 구부리가 논두렁 걸어다니믄서 무신 생각하노~"모녀가 논두렁에 앉아 이런저런 얘길 주고받았습니다. 논에는 알 수 없는 잡초가 많이 자라서 물을 다 뺀 상태고, 주말에 마을 이장님이 오셔서 약을 치기로 했다는 겁니다. 한참을 앉았다가 일어서려니, 어머니는 감자 캐가라, 호박 하나 열린 것 봐둔 게 있다며 그거 따가라, 아삭 고추가 생각보다 많이 열렸다 따가라 하십니다. 늦은 시간이라 어머니 얼굴만 보고 가려 했는데 어머니는 하나라도 챙겨주지 못해 자꾸만 잔소리(?)하셨습니다.
남편이 어머니의 유모차를 차에 싣는 동안 저는 어머니를 부축하여 논두렁을 빠져나왔습니다. 논과 밭을 다니실 때는 지팡이가 항상 어머니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논두렁을 다 지나오고 나면 풀숲에 지팡이를 숨겼습니다. 그리곤 뒷짐을 지고 허리를 구부린 채 차로 걸어오시지요. 늘 그런 모습을 봐 왔기 때문에 어색하거나 그러진 않았습니다.
"동네서 지팡이 짚고 다닐라카이~ 챙피하다 아이가~"
차로 5분 정도 달려가면 어머니의 고향집입니다. 예전같지 않게 마을입구 사거리에는 복잡한 신호등이 달려 있고, 옆집으로 가는 길에도 신호등을 보고 건너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생각하면 할수록 그냥 씁쓸해집니다.
그렇게 마을입구에 차를 주차하고, 어머니의 유모차를 꺼내고 어머니께 내리시라고 했습니다. 유모차가 있을 때는 그것을 밀고 가시는데 유모차가 없을 땐 아무리 지팡이가 있어도 그냥 들고 가십니다. 1분도 채 안 걸리는 집으로 가는 길, 허리를 구부리고 몇 번을 쉬었다 가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지팡이는 안 짚고 가십니다.
"엄마~ 지팡이 짚고 가요~""아~니~ 됐다~""와 그라는데요~ 지팡이 짚으면 편하다 안 그랬는교~""그래도 안 짚을란다~ 내사~""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상하다 칸다~ 사람들이~""그라든 말든 내사 싫다카이~ 대신 니가 내 손 쫌 잡고 가제이~""손 잡아 주믄 쫌 편하나~ 자~아 잡아보래이~""내사 마아~ 지팡이 짚고 동네 다닐라카이~ 챙피하다 아이가~""아이고~ 엄마 나이가 몇인데~ 챙피한기 다 있노~ 엄마는 이제 할매 아이가~""그래도 내사 싫다~ 아직꺼정은~"사람들이 쳐다보고 흉볼까봐 지팡이는 안 짚고 다닌다는 어머니의 말이 이해가 가면서도 팔십이 넘은 할머니인데 왜 창피함을 느끼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젊은 시절 쌀자루 번쩍 들어올리고 그 어느 이웃집 아저씨보다 센 힘을 자랑했을 때가 있었기에, 지팡이를 짚은 자신의 지금 모습을 어머니께서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 애틋해졌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어머니를 부축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한 손을 오로지 나의 팔에 의지하며 걷는 어머니의 모습이 저는 가슴 찢어질 듯 아픕니다. 어머니는 들고 온 지팡이는 대문 한 귀퉁이에 가지런히 세워두고 대문을 열고 들어가셨습니다.
지난해 여름 시원한 '자수정 동굴나라'에 갔을 때, 주차하기 힘들어 매표소와 좀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걸어서 가야했는데 어머니의 역정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어머니 걸음으로, 구부정한 허리로 백 미터 정도를 걸어가야 했으니 어머니의 화가 이해는 갔습니다.
그때도 제가 지팡이를 짚고 가자고 했지만, 어머니는 아프다고 하면서도 끝내 지팡이 없이 딸아이의 부축을 받으며 매표소 앞까지 갔습니다. 매표소 앞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동굴 안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 중이었고,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 춥고 시원하고 살 것 같다며 좋아하셨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저 역시 그 지팡이가 자꾸만 머리 속에서 맴돕니다.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손가방을 열었습니다. 찢어진 봉투 안에서 아침에 싸간 밥과 김치통 두 개가 나왔고, 먹다 남은 떡 조각이 하나 나왔습니다. 좀처럼 무엇을 사달라거나 뭐가 맛있다는 이야기를 안 하시는 어머니인데 지난번에 드린 갈치가 너무 맛있었다고, 몇 번 전화를 했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불현듯 고향집을 찾은 것은 그 갈치 때문이었습니다. 사온 갈치를 녹여 몇 토막 굽고, 냉장고를 뒤적거려보았지만 먹을 만한 찬거리가 없었습니다. 한참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고 생각했습니다.
바쁘게 오다 그냥 왔는데 정말 잘못했다 싶었습니다. 이것저것 꺼내 반찬을 만들고 상을 차려 어머니와 맛있는 저녁을 먹고 돌아왔습니다. 가끔이라도 그렇게 어머니를 위한 밥상을 차려드려야 할 텐데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고향집을 나서면서 대문 모퉁이에 세워진 지팡이를 보았습니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창피해서 못 짚고 다닌다, 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왠지 서글픈 하루였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언제쯤 지팡이와 친구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