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을 타고 가면서 보면, 손자와 노인이 부부처럼 나란히 앉아서 그저 사랑스러워 손을 만지고 얼굴을 쳐다보는 이들이 있다. 소근소근하면서 옆 사람 의식하지 않고 이야기꽃이 핀다.
요즈음 손자 키우는 노인들이 많다. 하기사 세상이 달라져서 노인소리 듣자면 70이 넘어야 된다는 세상이다. 50대 후반이나 60대는 노인이라고 하는 데 스스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뭐 사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어떤 집은 자기직계 손자를 못 본다고 한단다. 그 주장이 너무 강력해 외할머니가 데려다가 키우는 집도 보았다.
세상에 어쩌면 그럴 수가 있을까?
직계손자에게는 별로 하는 일 없으면서, 사돈에게 아이를 보게 한 후 차려 입고 친구끼리 모이는 곳에 가는 이도 있다. 그곳에서 하하 호호하며 지낼 수가 있을까?
사정상, 그 어린 것을 유아원에 출근하면서 맡기고, 퇴근 시에 데려가는 사람도 여럿 있다. 세상이 그렇게 되어 버렸다. 그토록 손자들 키우는 것이 힘이 들고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럴 수도 혹은 그럴수밖에 없다고 여긴다.
손자 키우기는 할배도 함께 해야
잘하는 건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에 넘어져서 상처라도 나면 며느리에게 미안해진다. 아예 아이를 맡지 않으면 그런 일은 없을 것인데, 너무나 힘들고 난처한 며느리를 못본 척 할 수도 없다. 내 아내도 둘째 손자를 거의 매일 아들네 집에 가서 돌보아주고 있다.
돌이 되기 전에는 그래도 돌보기 그리 어렵지 않았으나, 돌이 지나니 달라졌다. 걸을 수 있게 되고, 손자의 주관도 뚜렷해지니 이제는 참 어렵다.
이제는 곧 넘어질 것 같지만, 뒤뚱거리면서도 빠르게 다니며 하루 운동량이 참 많다 그래서 어느 날 일찍, 만보기를 엉덩이에 달아주었다. 엉덩이에 그것을 달고 걷는 것이 귀엽기도 하고 웃음이 절로 났다. 그런데 저녁에 잘 때 보니 이게 어찌된 일이냐 4000여 보를 걸었다.
지 마음대로 하려고 하고, 안 되면 소리도 지른다. 이유식에서 밥으로 갈아타면서 과일도 먹이고, 간식 자주 먹여야 한다. 눈 돌릴 틈 없이 졸졸 따라다녀야 한다. 유모차도 태우면, 안전띠를 매줄 때 전에는 가만히 있었는데 지금은 벗어버리고 땅바닥 내려가려고 한다. 예삿일이 아니다.
놀이터에 가면 내려가서 걸으려고 한다. 바닥이 딱딱하지 않는 곳에 가서 그리 해주면 눈에 보이는 작은 물건들을 집어서 꼭 먹어보아야 한다. 돌도 먹어보고 누가 흘려둔 과자 부스러기도 주워 먹고, 퍼질러 앉아버리고, 바닥에 엎드려서 땅도 먹어본다. 하아.
뭐든지 먹는 것. 그것만 안 해도 좀 덜 힘들 건데 무엇이든 먹어보는 게 사람을 너무나 피곤하게 한다. 뒹굴며 온갖 흙이나 때를 묻혀도 씻으면 되지만, 먹어보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 그게 참 큰일이다. 이렇게 되니, 아내도 이제는 웬만한 일 아니면 나를 좀 도와주세요라고 한다.
힘들어도 좋으니 개구쟁이로 자라다오
그리고 저녁에 집에 와서는 어떤 때는 끙끙 앓기도 하고 많이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그래 그렇게 해야 하겠다고 마음먹고 시키는 대로 잘한다. 안아주고 놀아주는 것은 보통이고 유모차 태워서 시내를 돌아다니기도 한다. 요즈음 이상하게 만든, 업는 포대기로 업거나 안고 시내도 잘 다닌다.
한 번은 아이를 업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니, 옆에 같이 탔던 어느 노인이 "그래요, 요즈음은 할배도 함께 봐주어야 합니다, 참 잘하십니다"하며 나를 칭찬했다.
그런데 그 칭찬이 예전 같으면 좀 부끄럽거나 어줍 잖을 수도 있을 건데, 전혀 그렇게 여겨 지지 않았다. 나는 많이 기뻐서 "고맙습니다"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잠시나마 나누었다.
나는 주책 할배가 되어 간다. 이렇게 기사에 다 까발리기도 하고…. 그래도 손자가 사랑스러우니 혹여 누가 욕하는 소리를 들어도 '너는 말해라'라는 식으로 넘긴. 씩씩하게 자랄수록 할매는 더 힘이 들겠지. 그러나 힘들어도 개구쟁이로 자라다오. 할매도 즐거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