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자전거도로를 이용한 국토대장정은 쉽지 않았다. 서울 광나루에서 부산 해운대까지 자전거도로 위주로 코스를 구성하면 총 550km인데, 숙식을 위해 중간에 한 번씩 시내까지 이동하는 거리도 더해야 한다. 그러면 총 이동거리는 610km가 된다.
긴 거리에도 불구하고 이운영씨는 자전거도로 국토대장정을 택했고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1. 소수 인원으로 진행하는 국토대장정은 '안전'이 최우선
이운영씨 일행도 자전거도로가 끊긴 지점에서 잠시 국도를 경유한 적이 있다. 그는 뒤에서 차량이 빠른 속도로 지나갈 때마다 섬뜩함을 느꼈다고 말한다. 어쩔 수 없이 국도로 이동할 때에는 눈에 잘 보이는 배낭 커버를 씌우고 갔다.
특히 여름철 국토대장정은 무더운 낮 시간대를 피해 새벽과 저녁시간에 주로 이동하게 되는데 빠른 일몰과 안개등으로 인해 사고에 대한 우려는 커진다. 이운영씨는 "특별히 빠른 완주가 목표가 아니라 국토대장정 자체에 의의를 둔 일정이라면 자전거도로를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조언했다.
2. 이왕이면 다홍치마, 원래부터 아름다운 '4대강'4대강 공사 이후로 주변에 자전거도로가 조성되면서 자전거 이용자들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4대강의 아름다움은 예전부터 알려져 있으므로 자전거도로로 이동하면 그 경치를 만끽할 수 있다. 이운영씨는 "4대강의 경치 덕분에 걷는 길이 좀 더 재밌고 쉬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그는 4대강 주변의 자전거도로는 국도로 연결되지 않고 거의 끊김 없이 이어져있어 안전을 우선시하는 국토대장정이라면 추천한다고 했다. 또 매번 뉴스에서 회자되는 4대강 공사 논란이 무엇 때문인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직접 눈으로 점검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자전거도로가 길지만 쉬운 코스? 방심하지 말 것이운영씨가 앞으로 자전거도로를 이용한 국토대장정을 따라하실 분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팁이 있다고 했다.
첫 번째, 계절을 잘 선택하라. 자전거도로는 4대강 줄기를 따라가는데 강변에 그늘을 제공할 수 있는 나무가 거의 없다. 그는 "한창 해가 중천에 떠있을 때에는 햇빛을 피할 수가 없어 고통스러웠다"며 여름을 피해 국토대장정을 계획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한다.
두 번째, 함부로 비박(bivouac, 아영)할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농촌이라고 해서 누가 쉽사리 잘 곳을 제공해줄 것이라 생각하는 건 도박이다. 그는 반드시 정상적인 숙소를 이용할 것을 당부했다. 그는 "하루에 일정한 거리를 꼭 이동하려 하지 말고 숙소를 미리 정해 거리를 완급 조절하는 것도 좋다. 숙면을 취하면 5km 정도 더 걷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세 번째, 짐은 파격적으로 줄여라. 필요한 생필품은 편의점에서도 수급이 가능하다. 지난 에피소드를 보면 이운영씨 일행은 4일차 종주 전 택배로 불필요한 짐을 모두 집으로 보냈다. 비박시 요긴하게 사용하려고 가져온 해먹(hammock, 그물침대)도 과감히 포기했다. 그러자 배낭의 무게가 20kg에서 5kg으로 줄었다. 덕분에 그 후부터 하루 이동거리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두 남자의 15일간의 에피소드(아래의 이동거리는 대략의 직선거리입니다.)
- 국토대장정 '아름다운 동행' 9일차 이동거리 : 구미 ☞ 대구 40km (아침) 9일째 걷고 있다. 이제 이번 국토대장정의 반절이 지나갔다. 오늘은 멀리 돌아가는 자전거길이 아닌 국도를 선택했다. 숙식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여전히 지나가는 차들은 무섭다.
(저녁) 국도를 택한 덕분에 예정보다 일찍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이번 국토대장정의 후원자 중 현지에 사는 분이 마중을 나오셨는데 힘내라며 한우를 대접 받았다. 이래서야 완주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큼도 들지 않는다.
- 국토대장정 '아름다운 동행' 10일차 이동거리 : 대구 ☞ 창녕 39km(아침) 드디어 부산에 점점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다. 마주치는 많은 분들이 우리에게 어디까지 가는지 묻는다. 국토대장정을 하는 이유와 부산을 향해서 10일째 걷고 있다고 얘기하면 다들 놀란다. 왠지 기분이 뿌듯하다.
(저녁) 3일 연속 40km 정도를 이동했다. 속도가 붙었다. 계산해보니 15일 안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 듯하다.
- 국토대장정 '아름다운 동행' 11일차 이동거리 : 창녕에서 고립(아침) 복병이 나타났다. 태풍 '고니'를 변수에 넣지 않았던 것이 실수였다. 이곳 창녕지역에는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오늘은 고립되어 움직일 수 없을 것 같다.
(저녁) 강제로 얻게 된 휴식시간. 많은 분들께서 휴식하는 동안 배불리 먹으라고, 서울에서 이곳 창녕까지 배달 어플리케이션으로 점심과 저녁을 보내주었다. 오늘 하루는 영양 보충을 하는데 집중했다.
- 국토대장정 '아름다운 동행' 12일차 이동거리 : 창녕 ☞ 밀양 43km (아침) 다행히 태풍 고니는 새벽에 동해로 빠져나갔다. 태풍이 지나가서인지 하늘이 유난히 청명하다. 근처에 식당이 없고 비상식량마저 떨어져 공복상태로 2시간 정도 이동했다. 겨우 마을에 있는 식당을 찾았는데, 이번에는 식당 주인이 밥이 없어서 라면밖에 안 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라면을 먹고 다시 행군을 시작했다. 오늘은 아침밥하고 인연이 없는 것 같다.
(저녁) 점심은 장어탕을 먹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분이 기억에 남는다. 한 아주머니였는데 예전부터 우리처럼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이 소원이라며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우리 국토대장정의 과정과 그 목적을 말씀드렸는데 아주머니는 본인의 일처럼 즐거워한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새삼스레 자랑스럽다.
- 국토대장정 '아름다운 동행' 13일차 이동거리 : 밀양 ☞ 양산 41km (아침) 오늘 낮은 여름 더위가 뒤늦게 기승을 부린다. 오랜만에 물이 상당히 간절하게 느껴진다.
(저녁) 앞이 안 보이던 국토대장정이 거의 막바지다. 내일이면 부산에 입성한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이젠 행군 자체가 익숙해져 버렸다. 지나가버린 오늘의 기억은 상당히 단편적이다. 대신 마지막 순간에 대한 기대는 몹시 켜졌다.
- 국토대장정 '아름다운 동행' 마지막 14일차 이동거리 : 양산 ☞ 부산 광안리 38km (아침) 결국은 국토대장정의 끝이 보인다. 처음 서울을 출발하면서 설렘과 두려움이 반반이었던 종주길에, 포기라는 녀석과 매일 싸우기도 했다. 결국은 이겨낸 것이 뿌듯하다.
(저녁) 최종 목적지인 해운대와 멀지 않은 광안리에서 국토대장정의 마지막 밤을 청한다. 11일차에 태풍으로 움직이지 못한 것을 고려해 국도를 몇 차례 택하고 하루 이동거리를 늘린 덕분에 예상보다 하루 더 빨리 도착했다. 오히려 우리가 일행들을 기다리게 생겼다.
결국 마주친 여정의 끝, 하지만 희망나눔은 계속된다
지난 8월 29일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희망나눔 프로젝트 '아름다운 동행' 국토대장정의 완주를 기념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국토대장정의 참여자인 이운영씨와 권용욱씨, 그리고 그들의 성공을 간절히 염원했던 가족과 지인들, 그리고 백혈병환우회 상근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국토대장정의 성공을 자축했다.
이운영씨는 "부산에 진입했을 때 정말 이날이 안 오는 줄 알았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 같다. 인생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지금의 쾌감은 직접 국토대장정을 완주했기에 느낄 수 있는 것 같다"고 완주 소감을 밝혔다.
또 그는 향후 계획으로 "희망나눔 프로젝트의 다음 편을 준비하겠다. 백혈병 투병 당시 완치자들을 보고 희망을 얻었다. 나 역시 백혈병 투병자분들에게 백혈병이 싸우면 이겨낼 수 있는 병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며 의지에 찬 모습을 보였다.
※ 희망나눔 프로젝트 '아름다운 동행' 국토대장정 중 태풍으로 고립된 기간이 있어 일부 구간은 원래 계획한 자전거도로가 아닌 국도를 이용해 진행되었습니다. 총 이동거리는 610km에서 일부 단축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국토대장정의 기사는 국토대장정 주최자인 이운영씨가 아닌, 제3자인 기자가 현장 동행 및 전화 인터뷰 등 밀접한 취재를 통해 작성했습니다. 에피소드 부분은 인터뷰를 참고해 이운영씨의 시점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