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물수능' 논란으로 변별력을 의심받던 수능은 올해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난이도가 껑충 뛰어 학생들을 당황케 했다. 덕분에 올해도 어김없이 수험생들은 수능 출제위원회와 대학 입학사정관들의 '실험쥐'가 되고 말았으며, 12년간의 학창시절을 평가받는 시험에서 한순간에 그동안의 노력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을 당황시키는 것은 수능뿐만이 아니다. 대입 전형과 모집 인원은 매년 달라지고, 대학별 지원율과 경쟁률은 사회적 이슈 등에 영향을 받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학생들은 골머리를 썩는다. 모자라는 점수를 받아들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아직도 수험생들은 고군분투 중이다.
같은 수능 점수를 받았더라도 영역별 점수 조합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입시설명회를 찾아다니며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또한 논술 전형에 대비하기 위한 학원이나 과외 역시 붐빈다. 결국 수능이 끝났다고 해서 대학 입시가 전부 마무리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입시가 자칫 실패로 끝이 난다면 그 학생은 어쩔 수 없이 1년을 다시 기다려야만 하기 때문에 수험생들은 남은 입시에 총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매년 이 시기가 되면 과연 한 해에 단 한 번 치르는 시험으로 학생들을 줄 세우고 우열을 가리는 것이 올바른 방법인지 의문이 든다.
이처럼 수능의 평가 지표로서의 역할에 부족함을 느낀 대학들은 정시 모집 비율을 줄이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올해 전국 4년제 대학 197곳이 발표한 정시 모집 인원은 11만 6162명으로, 이는 전체 모집 인원의 32.5%를 차지한다. 전년도 12만 7569명(34.8%) 대비 1만 1407명(2.3%) 줄어든 수치다.
나머지 67.5%는 내신 성적이나 비교과 활동 평가, 논술이나 면접 등을 거치는 '수시 전형'으로 뽑기로 하였다. 전체 대입 모집 인원 중 정시 선발 비율은 2002년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정시 축소'는 앞으로 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처럼 요즘의 대학 입시에서는 정시보다 수시의 비중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그에 따른 학생들의 입시 전략도 많이 변화하고 있다.
우선 탄탄한 내신 점수는 기본이며, 동아리활동과 봉사활동, 진로활동 등의 비교과 활동 역시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학기마다 치르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서 매번 좋은 성적을 받으며 수능 준비도 하고, 개인별 포트폴리오도 마련하려면 학생들은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
교육부는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계속 교육 정책을 바꿔오고 있지만, 이런 시도 때도 없는 일방적인 변화는 학생들의 장기 계획을 처참히 짓밟아버리며 도대체 어떻게 대입을 준비해야 할지 헷갈리게 만들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대학 입시 제도가 언제나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교육제도나 입시제도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정의론(A Theory of Justice, 1971)>을 집필한 존 롤즈의 절차적 정의관에 따르면, 정의를 위해서는 원초적 입장과 무지의 베일 상태를 전제로 평등한 자유의 원칙과 차등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원초적 입장과 무지의 베일은 롤즈가 정의의 원칙을 도출하기 위해 설정한 가상의 상황으로, 합의 당사자들이 사회에 대한 일반적 사실 외에 자신의 신분, 지위, 능력, 재산 등에 대해 알지 못하게 하는 가상의 장치를 의미한다. 이는 합의 당사자들의 자연적·사회적 우연성을 배제하는 작업이다.
바로 이 부분이 문제가 된다. 우리는 이미 각자의 조건이 모두 정립되어 있는 상황에서 제도를 맞이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애초에 무지의 베일이 드리워진 원초적 입장에서 제도를 바라보고 진정으로 평가의 공정성이나 적절성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모두'를 두고 보았을 때 그 제도가 합당한지 보다는 각자의 조건에 맞춰 바라보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제도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여 결정되는 방식이 아닌, 교육부와 대학 부처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통보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 역시 하나의 이유로 들 수 있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제도가 도출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하다. 그저 여론에 따라 이 방식, 저 방식을 시험해보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의 입시 제도는 수립 절차에 있어 '정의'가 실현되지 못한 결과로, 우리가 해결하여야 할 문제임이 분명하다.
물론 현재의 입시 제도에도 '정의'를 위한 장치는 마련되어 있다. 일반전형 외의 '지역균형선발전형'과 '기회균형선발전형' 등의 특별 전형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정책은 존 롤즈의 <정의론>에 입각해 보았을 때 '차등의 원칙(사회적·경제적 불평등에서의 가장 불리한 여건에 있는 최소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이 되도록 제도를 정립하거나 그들에게 혜택을 주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따르고 있으므로 정의에 가까운 행태라고 볼 수 있겠다.
또한, 수시 전형과 정시 전형이 나뉘고 그 안에서도 학생부종합전형, 논술전형, 특기자전형 등의 여러 가지 전형이 존재한다는 점을 감안해 보았을 때, 현재의 입시 제도는 학생들이 각자의 재능을 최대한 살려 각자에게 맞는 전형으로 입시를 치를 수 있도록 많이 배려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렇듯 현재 한국의 대학 입시 제도에는 장단점이 있으며, 정의로운 부분과 불공정한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은 교육과 입시 문제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인생을 결정짓는 것이기 때문에 특히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결점을 보완하고 최선의 해결책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활발하고도 진지한 담론이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