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던 일을 모두 접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학원을 2개월, 스터디 그룹을 조직하여 취업공부를 2개월, 토익공부 2개월 빠듯하게 시간을 보냈다.
토익시험 한 번 치러보지 못하고 얼떨결에 들어가게 된 회사에서 다시 2개월. 그렇게 나는 사표를 내고 나왔다. 허술한 기둥은 금방 무너지기 마련이다. 한 번 들어가면 최소 2년은 버티겠다던 다짐은 사상누각이었다. 갈대처럼 누워버린 의지를 다시금 곧추 세우고 싶었다.
2016년 병신년 1월 1일 캄캄한 새벽 5시. 새해 첫 일출을 보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제대로 된 계획도 없이 무작정 출발부터 했다. 가는 도중에 지난해에 올랐던 '인왕산'이 떠올랐다. 검색을 해보니 서울 시내 일출 명소로 뽑히는 산이기도 했다. 오르는 산길에 불빛은 있을까 걱정됐지만 일단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무악재 전철 입구에서 바라본 인왕산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도심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희미하게 오솔길을 비춰줬지만, 가파른 오솔길을 오르기엔 어둠은 무거웠다. 간밤에 내린 오금이 시리도록 차가운 서리가 땅 위로 피어올랐다. 발은 미끌미끌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그나마 전철역 앞 편의점에서 구입한 목장갑이 큰 도움을 줬다. 내 뒤를 따라오는 친구 놈의 라이더용 손전등이 없었으면 나는 중턱에서 포기하지 않았을까.
낮에 다니던 산길과는 너무나 달랐다. 올라본 경험이 있었지만 첫 갈림길부터 어디로 가야할지 갈팡질팡했다. 나만 믿고 따라온 친구의 표정은 어둠속에서도 당황한 역력이었다. 뒤 따라오던 50대 부부의 우측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 아니었으면 나는 친구를 좌측 오솔길 어둠속 황천길로 이끌었으리라.
급경사를 지나 산에 오르니 새벽의 푸른빛이 어스름하게 기어 올라왔다. 서울 시내에는 차가운 새벽공기 때문인지 짙게 안개가 깔려 있었고, 구름 한 점 없길 바랐던 하늘은 두터운 구름층이 새해의 빛을 안간힘으로 가리고 있었다. 구름 사이 갈라진 틈으로 희미하게 빛이 새어나올 뿐이었다.
우리가 인왕산 정상에 도착했을 무렵, 이미 해돋이를 보러온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7시 40분이면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예측과는 다르게 해는 오전 8시가 다 되도록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차츰 일출 보기를 포기하고 하산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는 늦어지더라도 반드시 해를 보고 내려가기로 했다. 친구와 나는 한해 지나온 이야기를 나누며, 일출을 보러 온 사람들을 구경하며, 새해의 다짐과 목표 등을 늘어놓으며 산마루에 불어오는 찬바람을 오돌오돌 즐겼다.
오전 8시 30분경 동쪽 하늘이 점점 붉어왔다. 걷히지 않을 것 같던 구름도 붉은 새해의 빛에 증발이라도 하는 듯 흩어졌다.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도 멀리 동쪽을 응시했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새해의 빛은 결국 구름 사이로 앳된 얼굴을 드러냈다.
새해의 모든 소망이 이루어질 바라며, 새해의 얼굴을 사진에 담았다. 새해의 빛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냈다. 새해에는 더 밝은 한 해가 되길 바라며, 내게 도전은 짧은 2개월이 아닌 2년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