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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이하여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과 함께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1년간 <사람들>은 네 번의 프로젝트를 거치며 해고노동자, 농민, 세월호 유가족,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등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이번 <사람들>에서는 사회적 가치와 공익을 위해 조금은 '다른 삶'을 택한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20대의 청년활동가, 30대의 노동활동가, 40대의 공익 의료활동가를 모시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밝혀보고자 합니다. - 기자 말

"304명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제안자 용혜인씨를 경희대학교 청운관 카페에서 만났다.
▲ 대학 카페에서 만난 혜인씨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제안자 용혜인씨를 경희대학교 청운관 카페에서 만났다.
ⓒ 김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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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어요."

용혜인씨의 이 말은 두 가지 의미였다. 하나는 자기 삶의 변화를 상상하지 못했다는 의미였고, 다른 하나는 304명이 죽은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렇게 어려울지 몰랐다는 의미였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혜인씨는 '다른 삶'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오면서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두게 됐지만 당시 먹고 살길을 찾아 한창 공무원시험을 준비할 무렵이었다. 혜인씨는 안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고등학교 때까지 꼬박 20년을 살았다. 세월호가 잠기며 동생의 친구가, 중학교 때 선생님이 함께 사라졌다. 세월호 참사는 그저 '안타까운 남의 일' 같은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신에게만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참사 이후 2년 가까이 지난 최근도 혜인씨는 '잊지 않기' 위한 활동들을 해나가고 있다. 전국적으로 일어난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이후 줄곧 '세월호'를 우리 사회의 화두로서 던져왔다. 지난해 4월 서울에서 있었던 토크콘서트 <사람들>에선 기획과 사회를 맡았다.

용혜인씨는 세월호 가족과 함께 밀양 주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LG·SK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무대에 섰고 300명의 시민을 만났다. 토크콘서트는 대구와 부산으로 이어졌다. 그는 올해 대학에 입학하는 신입생들과 세월호 유가족이 함께하는 인권기행을 준비하는 중이라고 했다.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을 하던 2014년, 대학 신입생들과 얘기하면서 혜인씨는 그들이 갖는 어떤 '죄책감'에 놀랐다고 한다.

"저는 활동반경이 비교적 자유로울 때 세월호 참사를 경험했고, 나름대로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등을 하면서 직접 행동을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학생들은 공부를 이유로 다시 수업·야자(야간자율학습)·학원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더라고요. 언론이나 유가족에게 들어 우린 익숙한 이야기들도 '잘 몰랐다'며 놀랐다고 하고요."

올해 대학에 입학하는 신입생들은 2014년 당시 단원고 희생자들과 같은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학생들이다.

"적어도 동갑내기였던 학생들이 대학에 오는 올해까진 신입생들과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한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앞으로도 이런 활동을 이어갈 것이냐'라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제법 무거웠다. '304명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식상한 이유"였다. '가만히 있으라'는 화두는 기억을 위한 메시지이기도 했지만, 사람의 존재와 삶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는지 되묻는 질문이기도 했다.

"도대체 국가란 무엇이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왜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길거리에서 잠을 자야 하는 건지 의문이 들었어요. 사람들은 자꾸 죽는데, 목숨보다 이윤이 더 중요한 사회잖아요. 이제 그 죽음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식상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우리 세대가 다시 진지하게 '인권', 기본적인 것, 인간의 목숨과 삶에 대해, 누가 그걸 막으려고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같은 활동을 기획할 때부터 혜인씨가 이어온 고민은 '혼자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고 한다. 개인의 삶이 바뀌는 것을 넘어서 그 변화들이 모여서 어떻게 사회를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 자신이 잊지 않고 계속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기억만으로는 참사의 원인을 바꿀 수 없으니까요. 어떻게 개인들의 다른 삶이, 다른 사회를 꿈꿀 수 있는 것으로 한 번 더 바뀔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에요. 제가 만드는 활동들은 같이 해나가는 친구들과 그런 고민을 나눈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청년 문제에 진짜 청년이 없다"

혜인 씨는 지난 11월 여러 청년활동가들과 함께 대전에서 열린 토크쇼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눴다.
(좌 정의당 청년부대표 배준호, 우 신지예 녹색당 비례대표 예비후보)
▲ 대전 카페 잇수다에서 열린 토크쇼 혜인 씨는 지난 11월 여러 청년활동가들과 함께 대전에서 열린 토크쇼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눴다. (좌 정의당 청년부대표 배준호, 우 신지예 녹색당 비례대표 예비후보)
ⓒ 배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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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혜인씨의 경우처럼 청년이 직접 나서 사회문제에 대해 발화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사회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일상의 문제에서 이들 역시 자유롭지 않다. 입학경쟁부터 취업경쟁까지 청년기 대부분을 '노력'하면서 보내도 그만한 안정은 바랄 수 없다.

정치는 그런 청년들을 안타깝게만 본다. 정치의 한중간에서 '청년'은 언제나 호명되지만, 또 마찬가지로 언제나 외면받기도 한다. 혜인씨는 최근 한 진보정당에서 활동하고 있다. 청년 부문을 대표하는 자리에 출마하기도 했다. 그녀는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정치란 '청년들의 현실을 청년들의 이야기로 구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들이 힘들다고 모든 사람이 얘기해요.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청와대, 전경련, 경총, 민주노총 등등. 좌우와 분야를 막론하고 정말 많은 사람이 청년들이 힘들다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 중에 청년은 별로 없어요. 실제 청년들이 어떻게 사는지, 무엇이 힘든지에 대해서 청년들 스스로 말하는 얘기는 드러나지 않아요.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기존 정치인들과 단체들에 의해서만 언급되죠."

덧붙여 혜인씨는 "청년 문제에 진짜 청년이 없다"고 말했다. 청년 스스로가 정치의 주체로 나서는 것이 청년 정치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그녀가 생각하는 가장 시급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청년들의 경제적 조건'이다.

"'헬조선', '흙수저', '이망생' 등 요즘 이야기되는 청년 담론들이 '절망'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부모가 가난해도 내가 노력하면 지금보다 나아질 거라고 '언젠가'를 꿈꾸며 살았지만, 지금 청년들에게는 언젠가 올 '그 날'이 없거든요. 출발선 자체가 다르고 뒤집히지도 않으니 당연히 가난하고, 내가 '노오-력'해봤자 내 삶이 더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에서 오는 '절망'이요."

정치인들에게 청년의 삶은 '체험'이지만, 청년들에게 청년의 삶은 '절망'이라는 말이었다. 최근 팟캐스트 '절망라디오' 진행에 참여한 이유도 스스로 청년들의 절망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고 그녀는 말했다.

최근 혜인씨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과 같은 '사회적 이슈'에 개입하는 사회운동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자신이 참여하는 정당에서 '청년정책'과 '청년정치인'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청년들의 현실이 언론에서 다뤄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분명한 온도 차이가 있다는 게 혜인씨의 생각이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온도의 차이만큼이나 시간의 차이도 존재한다. 현실의 청년들은 더 빠르게 무너져가고 있다는 말이다.

"기존 정치권에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 진짜 청년들의 현실에 대해 알리고 의제화하고 싶어요. 단순하게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없으니까 비정규직 일자리를 만들어주겠다는 말이 아니라, 청년들이 왜 '흙수저'니 '이생망' 같은 말을 하는지, 청년들의 절망이 어디서 생겨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해결책을 만들고 싶어요."

팟캐스트에서 청년의 자살에 대한 뉴스를 소개할 때나, 선거철에 알바나 고시원 생활을 일일 체험하는 기사를 읽을 때 특히 그런 차이를 실감한다고 한다.

"실제 정치권에서 얘기되는 '청년'이라는 말이 실제 청년들의 현실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해하지 못한 채로 '청년', '청년' 이야기하다가 선거철이 되면 비례대표에서 몇 명의 '청년 정치인'을 채우는 수준이거든요. 그 청년도 대개 40대까지를 포함하는 청년이어서, 실제 사회적으로 이야기되는 청년실업이나 청년빈곤 문제의 당사자와는 차이도 존재하고요. 실제로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위원장을 하셨던 분이 이번에 총선에 출마하는데 88학번이세요."

"저는 정치에 참여하는 청년의 연령대가 확 낮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할 제도들이 당장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녀는 '여성 할당'처럼 국회나 정당에서 청년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청년 할당' 제도의 도입이나 1500만 원이나 되는 '국회의원 후보등록 기탁금 제도 폐지' 등을 예로 들었다.

"기존의 국회의원들이 청년들을 대변하는 것 또한 당연히 강화되어야 하겠죠. 하지만 우선적으로는 당사자들의 참여가 많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회의원 하려고 저런다'는 말도 들었다"

지난해 11월 혜인씨는 노동개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당 전국순회투쟁에 참여했다. (왼쪽부터 노동당 김한울 부대표, 이해림 부대표, 구교현 대표)
▲ 노동당 순회투쟁 기자회견 지난해 11월 혜인씨는 노동개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당 전국순회투쟁에 참여했다. (왼쪽부터 노동당 김한울 부대표, 이해림 부대표, 구교현 대표)
ⓒ 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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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주변의 시선이나 반응이 제법 힘들었다고 한다.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기획 때부터 그랬지만 최근 진보정당 활동을 시작하면서도 '국회의원 하려고 저런다'는 말을 더러 들었다고 했다.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이 '순수하지 않다'는 당시 비판 역시 이런 물음과 맞닿아있었다.

"순수성 중요하죠. 근데 그 '순수성'이 그 사람이 현실정치에 뛰어들고, 선거에 출마하는 것이 기준이 아니면 좋겠어요. 오히려 어떤 정책을 펴고, 어떤 삶을 살아왔고,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순수성이라는 것이 그 사람이 정당과 관련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 정치인이 얼마나 일관성 있게 자기 소신을 얘기하고, 신념을 바탕으로 정치하느냐로 평가하면 좋겠어요."

개인이 바뀌는 것만으로는 세상을 바꾸기 어렵다는 고민은 이러한 의심들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참여해야겠다는 바탕이 되었다.

"제가 앞으로 혼자 평생 세월호를 매일 기억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기는 어려우니까요. 그리고 작년 세월호 특별법 제정 때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당시 국회에서 여당, 제1야당, 유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국민을 대표한다'는 여당의 대표가 국민인 유가족에게 '야당대표에게 협상의 전권을 주시라'며 거들먹거리던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혜인씨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유가족을 국민으로 여기지 않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법을 만들고 나라를 운영하는 건 결국 현실 정치의 몫인데,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나 청년실업 문제 등 국회의원들이 진짜 '국민'들의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고 느꼈다는 얘기다.

"지금 국회의원들에게 누구는 국민이고 누구는 국민이 아니라고 한다면, 국민이 아니라는 우리는 스스로 현실 정치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원래 선거 때마다 진보정당을 지지해오긴 했지만 스스로 나서볼 용기는 없었어요. 최근에 정당 활동을 적극적으로 결심한 이유가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해요."

최근 들어 청년들이 직접 정당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나고 있다. 총선 시즌을 맞아 신문 사설·도서·인터뷰 등 각계각층에서 청년들의 정당 참여를 얘기하고 있다. 청년 후보를 걸고 출마하는 정치인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20대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고 혜인씨는 말한다.

"정당에 청년들이 참여하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것이 마치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 투표를 안 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시작되진 않았으면 해요. 이전에는 대학 다닐 때 4년 내내 시위해도 졸업할 때쯤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질 수 있었어요. 대기업 고연봉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정도였던 거죠. 지금은 대학에 오면 토익에, 어학연수에, 스펙에 취준만 해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기 어려워요. 미래를 계획할 수 없어지는 거죠."

정치에 관심을 두고 참여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패배감도 이에 한몫한다는 게 혜인 씨의 생각이다.

"2008년 촛불 때 100만 명이 매일같이 거리에 나와서 밤새도록 시위했고, 대통령이 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지만 하나도 변하지 않았잖아요."

20년 전 20대와, 지금의 20대가 처한 사회경제적 조건과 경험이 지닌 차이가 지금 20대를 바라보는 정치의 차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서 있는 곳이 달라지만 풍경도 달라진다고 하잖아요. 물론 저도 20대가 정치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조건에 대한 이해 없이 무조건 '20대가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이야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20대에 선택한 '조금은 다른 삶'

지난해 4월 혜인씨는 세월호 1주기를 맞아 진행하는 토크콘서트 <사람들>의 기획과 사회를 맡았다.
▲ 토크콘서트 사회 지난해 4월 혜인씨는 세월호 1주기를 맞아 진행하는 토크콘서트 <사람들>의 기획과 사회를 맡았다.
ⓒ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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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를 절반쯤 지나가는 지금 혜인씨의 삶은 제법 많이 바뀌었다. 사회적 가치나 공익을 위한 삶을 선택한다는 건 한편으로는 개인적인 부나 욕망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혜인씨는 사실 생계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다고 말하면서도,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혼자 좀 부족하게 살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지금의 자신에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지금까지 대학 보내랴, 생활 챙기랴 지원하며 고생한 부모님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집에 가서 부모님 얼굴을 볼 때 민망함과 죄송함을 함께 느낀다고 말하며 멋쩍게 웃기도 했다.

지금 사회가 우리의 권리를 충분히 지켜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누군가는 변화를 위해 공익적이고 사회적인 일을 해나가야 한다. 청년들은 제법 자주 '정치'라는 벽에 부딪히지만, 누구나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조금은 '다른 삶'이라고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혜인씨는 지금의 삶이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삶이 아니냐는 질문에 손을 내저었다.

"저는 그냥 제가 살고 싶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시민사회운동을 하다 보면 많은 돈을 벌고, 조금 더 넓은 집에서, 조금 더 비싼 차를 타긴 어렵겠죠. 하지만 조금 덜 벌고, 조금 좁은 집에서, 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살아도 제가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누군가에겐 미술이, 누군가에겐 음악이, 누군가에겐 편안함이, 누군가에겐 운동이 자기 삶에 만족을 주죠. 그렇듯이 저도 아주 느리겠지만 조금씩 저의 손으로 바뀌어나가는 사회를 보면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혜인씨는 "특별함보다는 각자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고, 그 삶들이 모두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이 중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 존엄한 삶은 보장되어야 하는데 최저임금 수준의 생계비로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죠."

"결국에는 '다른 삶'을 살면서 이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일들이 나의 삶을 바꾸는 일과 맞닿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들을 만들고 사회의 공공성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 제가 계속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겠죠."

덧붙이는 글 | 김영길 기자는 <사람들> 기획단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기획 '2040 조금은 다른 삶'은 총 3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태그:#용혜인, #사람들, #가만히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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