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19일 국민의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그가 3번 당선된 전주 덕진 출마를 공식화 했다. 많은 정치인들이 국민의당에 입당했지만 유독 정동영 전 장관의 입당에 대한 평가가 많이 회자되고 있다.
그 이유는 정풍운동의 주역이였으며, 참여정부의 실세였고, DY계라는 자신의 이름을 딴 정파를 만들 정도로 영향력이 있던 정치인 정동영이 지난날에 보여주었던 많은 '변신'들 때문일 것이다.
1.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정치적 성장
그는 MBC 정치부 기자와 뉴스데스크 앵커 활동을 통해 명성을 얻었고 15대 총선에 당선되며 여의도 정계로 입성했다. 그는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과 총재 특보를 맡으며 일약 스타 정치인 반열에 올랐다. 그가 15대, 16대 전주 덕진 총선에서 얻은 득표율이 각기 89.9%, 88.2%였던 점이 이를 증명한다. 그는 분명히 성장하고 있는 '차세대' 정치지도자였다.
그는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선대위원장직을 맡으며 대권가도를 밟았다. 그러나 '60대,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다'라는 노인폄하 실언으로 그는 정치적으로 매우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노인인구 증가와 세대별 투표율을 보았을 때, 그의 발언은 매우 큰 실언이었다. 그는 선대위원장직과 비례대표 모두를 포기했다.
2. 17대 대선 이후 '정치 낭인'으로
이후 그는 참여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다. 2006년에는 열린우리당 당의장이 되어 지방선거를 이끌었으나 대패한다. 그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선을 부정하며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으로 17대 재보궐 선거 출마하였으나 압도적인 표차이로 패배한다. 1년 후에 치러진 18대 총선에서는 서울 동작을 지역구에서 정몽준 전 의원에게 패배한다.
그의 천로역정(天路歷程, 갖은 고난을 겪고 결국 천국에 이른다는 뜻)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이때부터 민주당 계 정당의 복잡한 정당재편 과정에서 무게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정풍운동을 이끌었던 중심축이었고, 참여정부 당시 정부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에서 DY계라는 자기 계파까지 만들었던 그이지만 위 과정에서 그는 사라졌다.
그는 공천에 반발해 2009년 4.29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주 덕진에 출마하여 당선된다. 그리고 당시 민주통합당으로 복당 후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서울 강남을로 출마를 결심한다. 정치적 재기의 기회였다. 그러나 정 전 장관은 39.3% 득표를 얻으며 패배한다.
3. 정치적 재기의 발판, '현장 진보'
19대 총선 이후 정 전 장관은 정치생명마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지나친 이미지 소비와 부정적 사건의 연속은 그의 정치적 생명마저 위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 전 장관은 기존 정치인들과 다른 행보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진보' 색채를 강화했다. 노동, 환경, 통일 문제와 관련된 모든 현장에 그는 직접 찾아갔다. 단순히 얼굴만 비추고 언론용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 현장에서 당사자들과 함께했다. 세대교체의 대상이 되었던 그는 다시 살아나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 번 정치적 도전을 한다.
김세균 교수를 비롯한 진보적 학자와 문화인, 그리고 현장 운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고 있던 '국민모임'에 그가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제1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도 아니고 진보정당 중 최대 세력인 정의당도 아닌, 신생 진보정당에 대선후보까지 올랐던 정동영 전 장관이 합류하기로 한 것이었다.
물론 당시 선거 결과는 야권 분열로 인한 패배였다. 그러나 많은 진보정당 지지자들과 진보 정치인들에게 그의 결심은 대단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가 19대 총선 이후 수많은 현장에서 보였던 모습들은 과거 '구태' 정치인이었던 정동영의 그것과는 다른 모습이며, 지금의 정동영이라면 기대를 걸어도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4. 국민의당 그리고 정동영의 천로역정
2015년 4.29 재보궐선거 이후 국민모임은 정의당에 합류하게 된다. 그러나 정동영 전 장관은 정의당에 합류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다. 매우 의아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었던 현장 중심 정치와 국민모임 합류 등을 보았을 때 정동영 전 장관은 여전히 진보진영의 작은 희망 중 하나였다.
정동영 전 장관의 행보는 국민의당이었다. 중도보수로 평가되는 국민의당 입당에 대해 정 전 장관은 자신은 여전히 진보이며,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국민의당에 입당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다시 전주 덕진에 출마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많은 이들이 혹평을 쏟아냈다. 정치적 신념조차 없는 철새 정치인, 국회의원 배지에 눈먼 구태 정치인 등이 그에게 쏟아지고 있는 비판이다. 위와 같은 평가가 혹독하다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국민의당 입당 결정은 지난 날 그가 보여주었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적확하게는 2012년 이전의 그의 모습으로 회귀였기에 더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정리하자면 그는 정치계의 신성이었고, 한 때 당 내 1인자였으며, 대권주자였다. 이후 정치적 무능을 보여주었지만 현장 정치를 통해 진보적 색채를 보이며 기존 양당구조에 염증을 느끼던 사람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그는 확실히 '희소한' 정치인이었고, 큰 지지를 받는 정치인이었다.
정 전 장관은 전주 덕진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과 대결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성주 의원에 대한 지역 내 평가는 매우 우호적이지만, 호남의 반문재인 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국민의당 지지율과 정동영 전 장관 개인의 경쟁력이 더해진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정 전 장관이 패배한다면, 그에게 '다음'은 없다는 사실이다.
혹자는 정동영 전 장관의 정치 행보를 천로역정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천로역정'은 영국의 한 소설가가 고난 끝에 천국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 소설 제목이다. 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통합민주당-무소속-민주통합당-새정치민주연합-무소속-국민모임-무소속-국민의당으로 이어지는 그의 천로역정의 끝은 과연 '천국'일까. 그 결과는 이번 20대 총선 결과에서 나타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지난해 재보궐 선거에서 국민모임으로 출마를 선언했을 때 한 팟캐스트에서 한 발언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장소(정당)으로만 따지면 철새라는 비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동(당적 변경)이 초점이 아니라, 정치의 가장 기본인 노선을 가지고 이야기 하자면 가장 정확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새가 바로 정동영이다." 그가 말한 정확한 방향의 결과가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