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제주 송악산에서 자살추정 실종사건이 발생했다. 송악산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인 연합군에 대항해 고속정으로 자살 폭탄테러를 하기 위해 배를 숨겨두었던 곳이다. 세계적으로 흔치 않은, 이중분화구로 된 화산지형이라 제주의 비경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풍경 어딘가에서 며칠 전 한 사람이 사라졌다. 한 30대 남성이 송악산에서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를 보낸 후 9일부터 연락이 두절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13일 서귀포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9일 오전 6시 51분경에 산책로를 걷던 한 관광객이 산책로를 따라 설치된 난간에 걸린 가방을 발견하고 신고했다고 한다. 이곳 경찰이 수색 중인 상태다. 그의 생사는 아직 모른다.
날씨가 안 좋아 사람들이 나오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니 모슬포항의 장사치들의 입말로 "가파도 좋고 마라도 좋다"는 옛말도 유래했던 송악산 어딘가에서 마음의 날씨가 좋지 않은 그가 살아 돌아오기만 한다면 얼마나 다행인 일일까. 분명 그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해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저 시신으로 발견되는 것이 최악의 상황이길 바라는 마음. 그를 모르는 이들이나 그를 아는 이들이나 한 생명의 삶이 포기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마음에 담고 있을 것이다.
그가 살아 돌아오기만 한다면 그를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의 근심도 덜어진다면 슬픔의 비극을 이겨낸 그의 또 다른 삶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해안 동굴이 15개나 된다는 일오동굴, 이곳에 또 한 사람이 생을 포기하고 마는 비극의 추가 대신 '자살을 살자'로, 그래도 살아가는 소소한 재미가 있는 순간을 떠올리며 돌아오는 기적이 있기를 바란다.
이곳 송악산에는 일본인들이 불태워 군사기지를 만든 장소가 있다. 불태워지기 전 동백나무와 느릅나무와 소나무의 잎사귀들이 어우러져 있던 곳이다. 지금은 풀만 무성히 남아 있지만 멀리 백록담과 산방산, 가파도, 마라도 그리고 형제섬이 보인다. 이 잠잠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남겨두고 가버리는 생이 대한민국에는 왜 이리도 많을까.
투신자살하는 사람에 치여 사망한 곡성 공무원 사건을 봐도 그렇다. 자살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 이젠 자살하려고 떨어진 한 생명에게 부딪혀 또 다른 한 생명이 원치 않는 죽음을 맞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죽음 후에 남겨진 가족의 아픈 가슴과 상처가 안타깝다.
자살하려는 사람의 징후는 인터넷만 검색해 봐도 금방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려졌지만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타인이 자살하려는 원인에 대한 관심이 더 그러하다. 자살은 분명 나쁜 것이지만 그저 유약한 사람이라며 나무라기만 하면 더 악화될 수도 있는 것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일상 활동에서 흥미와 즐거움을 상실해 활기가 없는 모습을 보인다든지 외모 관리에 지나치게 무관심해진다든지 행동이 지체되어 매우 느리고 둔해지거나 반대로 안절부절못하며 초조해하는 등 자살의 징후는 매우 일상적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다. 특히나 대부분 사람들이 우울을 앓고 있으므로 그것이 '보통'이 되어버린 현실인 것. 그렇다고 '그냥 활력이 없어 보이네, 약간 우울해 보이네'라고 생각하고 그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가는 것이 자살을 불러올 수도 있다.
대인관계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고립되어 있으며 일상적인 대화조차도 회피되며 침울해 있던 사람이 이유 없이 갑자기 평화스럽게 보이거나 즐거워 보인다면 그 또한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한 사람이 위축된 것이 보이는데도 그저 스스로 웃으려 노력하지 않은 사람으로 간주해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가족 몰래 약을 사 모으거나 위험한 물건을 감추어 두었을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그 또한 자살이 자행된 후에 발견될 수도 있다. 타인의 슬픔에는 자조적 절망이 이미 넘쳐 다 쏟아져 버린 후에야 관심을 두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 좋은 것만 보려고 한 적은 없었나. 자살률 1위이면서도 우울증 치료는 꼴찌인 한국이니만큼 '정신과 치료'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도 여실히 드러난다.
우울증은 조롱받아야 할 광기가 아니다. 그저 마음의 작은 생채기다. 감기를 방치하면 폐렴이 와서 심하면 사망을 하게 될 수도 있듯 우울증 또한 시작은 가벼운 감기와도 같다. 국가별 평균 자살률은 10만 명당 12.1명, 대한민국의 평균 자살률 10만 명당 28.5명이며 연간 자살자는 약 1만 5000명으로 OECD 국가 중 1위를 11년째 갱신하고 있다. 자살 생각이나 계획하는 사람이 약 700만 명이며 자살 시도한 사람들은 15만 명에서 30만 명에 달한다. 그러니 웃을 힘도 없이 우울해져 버린 사람에게는 마음의 치료자가 분명 필요하다.
자살에 관한 통계는 그저 성인에게만 해당하는 내용은 아니다. 2014년 청소년 사망원인으로 가장 높은 집계를 나타낸 것은 고의적 자해(자살)과 운수사고(세월호)로 나타났다. 어른이든 아니든 대상과 상관없이 자살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우울의 흔적이 동반한다. 자살 작심 이유에 조사한 결과 성인의 경우 '경제적 어려움'으로 밝혀졌고 10대의 경우는 '가정 불화'가 가장 많았다.
'경제적 어려움'과 '가정 불화' 그리고 '우울'의 상관관계는 밀접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인식 속에서 가난은 단지 불편이라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가난으로 겪어야 할 것이 단지 불편의 문제에서 끝나기만 한다고 해도, 그렇게 인식이 변한다고만 해도 그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 이웃을 돕고 사는 문화가 더 발전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저 수단에 불과한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불쌍한 인식에도 모두 안타까워 통감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미 병들어 버린 대한민국, 지금이라도 서둘러 마음을 치료해야 할 사람들이 많다. 스스로 마음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기 어려울 땐 도움을 받아야 한다. 마음도 건강해지려 노력해야 한다. '나는 정신이 완벽하다'고 자부하며 강인함을 자랑하지만, 그것이 무너졌을 때 그것을 감추려고만 든다면 마음은 이내 병들기 마련이고 한순간이다.
한국의 하루 평균 항우울제 소비량은 1000명당 20DDD에 불과하다. 이는 OECD 국가 중 칠레와 함께 최하위. 항우울제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감기로 여러 날을 앓게 되었다면 동네 병원에 가보아야 하듯 마음이 아프면 스스로 정신과에 가거나 심리 상담가를 찾아가 마음을 치료하는 시간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언급했던 모든 일은 알 만한 사람은 모두 다 아는 일이다. 일상에서의 적용이 중요하다. 나의 입장에서만이 아닌, 타인을 방관하는 시선만이 아닌 '또 다른 나'로 감정을 이입해 입장을 생각하는 한 사회의 타인으로써의 책임도 중요하다. 작은 관심이 모여 한국을 변화시키는 것은 마음만 달리 먹는다면 '자살'을 뒤집어 '살자'로 바꾸듯, 끝과 시작이 이어져 있듯 더 빠르게 이뤄질 수도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