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이화여대가 직장인 단과대학인 '미래라이프대학'을 설립하겠다고 밝히자, 이화여대 학생 수백여 명은 28일부터 대학본관 1층에서 반대 농성에 나섰습니다. 학생들은 '학위 장사'와 '학습권 침해, 학교 측의 독단적인 결정 등이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농성 사흘째인 30일에는 경찰 1600명이 교내에 투입돼 학생들을 건물 밖으로 끌어내리려고 시도하면서, 논란은 더 격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편집자말] |
1.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라는 말은 난센스다. 현실적으로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 아니라 재단이다. 이것은 명확하게 밝히고 넘어가자.
2. 재단이 학교의 주인이기 때문에, 학생은 재단이 제공하는 '교육 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다. 소비자라면 마땅히 존중되어야 할 소비자로서의 권리가 있다. 수업의 질, 쾌적한 학교 시설, 충분한 도서관 장서 등과 함께 무엇보다 존중되어야 하는 것은 '졸업장의 가치'다. 학생들이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대학교를 다니는 것은, 그 결과로 얻는 '졸업장'이 취업시장은 물론 향후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을 여러 과정에 있어 하나의 유용한 "신호(Signal)"가 되기 때문이다.
2001년 조지 애컬로프(George Akerlof), 조셉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와 함께 "정보 비대칭 시장의 분석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경제학상을 받는 마이클 스펜스(Michael Spence)는 '잡 마켓 시그날링 (Job Market Signaling)(1973, QJE)"에서 왜 '좋은 대학교'의 졸업장이 기업 및 구직자에 의해 선호되는지 밝힌 바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구직시장은 전형적인 정보 비대칭 시장인데, 구직자는 자신의 역량을 잘 알고 있으며 블러핑(허풍)을 할 유인이 있는데 반해, 기업 및 인사담당자는 구직자의 역량을 100% 확실하게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기업은 지원자의 역량을 확신할 수 있는 신호가 필요한데, 좋은 대학교의 좋은 학점과 졸업장은 그 지원자의 역량을 확신시켜주는 좋은 신호가 된다. 물론 이러한 메커니즘에 대해 학벌만능주의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정보비대칭 상황에서 시장이 붕괴되는 것보다는 이게 낫고, 자기소개서보다 학력과 학점이 더 검증되고 신뢰성 높은 자료임이 실증분석을 통해 밝혀진 바 있다.
그렇다면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재학생들의 시위는 이러한 맥락에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행위가 된다. 대학의 교육 서비스를 비싼 돈을 주고 구매하는 소비자로서 자신들이 구입하는 상품의 가치를 판매자가 앞장서서 떨어뜨리는 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3. 이런 맥락에서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재학생들의 싸움은 아쉽지만 방향을 살짝 잘못 잡았다. '졸업장의 가치'와 '교육 서비스의 가치'로 방향을 설정해 졸업생들을 이에 동참시키는 것이 좋을 듯하다.
4. 이와는 별개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추진하고 있는 신설 미래라이프대학은 명백하게 잘못된 행위다. 이에 대해서는 내가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내 선생님이신 독고윤 교수님께서 2012년 5월 14일 정년퇴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하신 글을 언급하는 것이 더 나을 듯하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Alfred North Withehead)의 대학교육관을 정리한 이 글은 대학교육이 지향하고 목표로 해야 하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대학에서 교육시켜 사회로 내보내는 인재는 단순히 초기 몇 년간 '잘 써먹을 노동력'이 아니라 수년 혹은 수십 년이 지난 후에 어떠한 과업을 맡기더라도 잘해낼 수 있는 '역량과 상상력을 지닌 인재'다.
<대학의 역할>대학은 어떤 사람이 경영해야 하는가? 대학의 의사결정 구조가 바람직해지려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한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대학의 역할이 무엇인가부터 이야기하는 것이 순서에 맞을 것입니다. 흔히 대학은 '가르치고 연구하는' 곳이라 말하지만, Whitehead(1932)를 통해 대학의 역할에 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Alfred Whitehead가 1932년에 쓴 'The Aims of Education and Other Essays" 제7장 'Universities and Their Function.'과 그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릴 건데요, 이 글은 Harvard에서 경영대학원을 신설한 후 경영대학원이 대학의 역할에 부합하느냐에 관한 논란을 잠재운 글로도 유명합니다.그의 대학역할론은 대학은 학생들에게 단순한 지식을 전달하거나 교수들에게 연구하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명제로부터 출발합니다. 대학은 반드시 상상력을 동원(consideration of imagination)하게끔 가르쳐야 하며, 그렇지 못하다면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상력은 사람으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에 대한 지적(知的)인 비전을 갖게 하는데, 상상력을 동원해서 습득한 사실은 더 이상 하나의 사실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온갖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입니다. 상상력은 무조건적인 기억을 강요하는 부담이 아니라, 우리의 꿈을 노래하는 시인처럼, 우리의 목표를 설계하는 건축가처럼 삶의 활력소가 된다는 것이죠. 지식을 전달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이 거의 미미한 작금의 정보화·인터넷 시대에서 뒤돌아보면 단순한 지식의 전달을 위해 대학이 필요하지 않다는 화이트헤드의 생각은 매우 선각적인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대학의 역할을 지식의 전달에서 찾는다면 굳이 비용을 많이 소요하는 대학은 불필요해질 수도 있거든요.이처럼 상상력을 동원해서 배우게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고등교육이라는 Whitehead의 주장에 대해 제가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동의하는 이유는 특별히 아주대학교에서 직접 경험을 했기, 즉 재확인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주대학교에 부임하고 나서부터 어떻게 하면 우리 대학이 일류가 되는 거냐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도 한때는 어느 학교를 나오면 일류라고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대학원에 가서 그때까지 자라고 배운 환경이 다른 여러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일류가 아닌 과거를 가진 것처럼 생각되는 여러 동료들이 일류에 있는 거예요.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라는 질문을 참 많이 했어요. 제가 보기에 일류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의 공통점을 보면 항상 무언가 왜 그런가, 아니면 무언가 뒤집어 보거나, 예컨대, 학교에서는 지적으로 반항하는 사람이 우수한 거예요. 일류 학교에서 순종적으로 자란 내 친구들이 실패하는 경우를 참 많이 보았어요. 이와 같은 저의 경험과 믿음을 한마디로 정리해 준 표현이 Whitehead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배우게 하는 교육'이라는 것입니다.상상력을 동원해서 배우게 하는 교육은 현대사회에서 커다란 조직의 말단에서부터 경력을 시작하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자면, 대기업에 갓 들어온 청년은 통상적으로 규칙과 지시를 따라 정해진 업무를 반복하는데, 그런 일은 비록 지루하더라도 훈련 과정이고, 업무에 관한 지식을 습득게 하며, 남들로부터 얻어야 할 신뢰를 쌓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경력 후반에 꼭 필요한 탁월한 기술이나 지식을 가지려면 경력 초기에 단순한 훈련을 반복해야만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장기간 판에 박힌 일을 반복하다 보면 상상력이 무뎌져 경력 후반에 필요한 소질이 초기에 소진될 위험이 내재합니다. 이런 불행을 예방하는 역할이 대학교육의 본질입니다. 젊은이들이 자신의 경력과 관련한 일반원리를 상상력을 동원해서 습득하면, 이들은 경력 초기에 다뤄야 하는 단순하고 세부적인 것들에 대해 상상력의 동원을 통해 습득한 일반원리로부터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하며, 맹목적인 주먹구구식인 노역에서 자신을 스스로 해방시키는 능력을 가질 것입니다. 그래서 대학의 올바른 역할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지식을 획득게 하는 데 있습니다.5. 이상의 논의에 따라 결론적으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학내 논의 없이 본부 독단으로 추진하는 신설 미래라이프대학은, 대학교육의 본질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교육 서비스를 구매한 소비자인 재학생 및 졸업생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로, 이에 대한 재학생 및 졸업생의 불만과 항의는 당연한 권리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정재웅씨의 페이스북과 PPSS에 중복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