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가까우면서도 조용하고 맑은 공기를 자랑하는 청정 하남. 이곳에 산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요즘은 자고 나면 변하는 세상이라, 하남시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처음 지하철역과 스타필드가 내 집 앞 5분 거리에 들어선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만나는 이마다 부러워했다.
"거기 벌써 집값 많이 올랐다던데 좋겠다~"
"이사 갈 것도 아닌데 오르면 뭐해. 재산세만 더 내지."사실 언제 얼마나 오를지 모르는 전셋값이 두려워 은행 빚을 얻어 마련한 소형아파트다. 혹시 집을 판다고 해도 은행 빚 갚고 남은 돈으로는 전세도 얻을 수 없다. 이사는 나의 선택지에 없다. 재개발이나 안 하면 다행이지. 게다가 쇼핑을 즐기는 것도 아니어서 스타필드에 자주 갈 것 같지도 않다.
기대감도 설렘도 없는 그 거대한 건물은 하루 하루 다른 모습을 보이더니 9월 초 공개되었다. 그날 어른들 손마다 들려있는 꾸러미와 아이들 손에 쥐어진 풍선이 B 아파트 앞 조그마한 인도를 메웠다. 10년 넘게 살면서 단지 내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과 차를 본 적이 없다. 신기했다. 베란다를 내다보고 있자니 축제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오후 10시가 훌쩍 넘어 여느 때보다 1시간 이상 늦게 퇴근한 신랑은 현관에 들어서면서부터 볼멘소리다.
"오늘 무슨 일 있어? 하남시 전체가 다 막히던데. 주차할 자리도 없고!""오늘 스타필드 오픈했대. 며칠 지나면 괜찮겠지."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순진한 나만의 생각이었다. 신랑은 며칠째 하남시 입구에서부터 차가 막히고 주차는 아슬아슬한 코너에 겨우 한다며 툴툴거렸다. 나 역시 신랑만큼이나 외부 차량에 대해 슬슬 예민해져 갔다.
스타필드로 오는 차로 가득... 주변이 다 막혔다
B 아파트 주차장은 더는 거주자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스타필드 전용 주차장이 됐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마디 한다.
"B 아파트 사람들 힘들겠다." 아파트값이 오르기는커녕 이렇게 막히고 외부인들이 제집 주차장처럼 이용하는 상황이니, 살기 불편해서 집값 떨어질 판이다. 우리의 불편함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견디다 못해 아파트 관리실에 전화를 했다. 그쪽도 이미 여러 차례 항의 전화를 받아 상황을 알고 있으며 경비 아저씨들도 온종일 주차 딱지를 붙이느라 힘들다고 했다. 아저씨들이 무슨 죄야.
"거기 스타필드죠? 여기 근처 B 아파튼데요. 주차장에 외부 차량 때문에 저희가 주차를 할 수가 없어요. 10대 가운데 6~7대는 외부 차량입니다. 이게 말이 되냐고요? 정작 주민들은 갓길 주차를 하는 실정인데 이러다 사고 나면 저희는 누구에게 하소연합니까? (차량) 차단기 없이도 조용히 잘만 살았는데..."
"...죄송합니다. 고객님..."
"10시 넘어 있는 외부 차량들은 스타필드 직원 차량이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정말인가요? 스타필드에서 마련중인 대책이라도 있나요?"
"저희도 대책 마련중입니다."
"심지어 주차 자리 못 찾고 나가시는 분들 가운데는 신경질적으로 속도 올려 후진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러다 아이라도 다치면 스타필드에서 책임지나요? 도대체 왜 준비도 안 끝난 상태에서 오픈을 하는지..."
대책을 마련 중이며 위에 전달하겠단다. 게다가 공식적으로 직원들 주차장은 따로 있다는데, 그럼 사람들이 스타필드가 문 닫는 10시 넘어서까지 쇼핑을 한다는 말인가? 혹시 비공식적으로 '현재 주차장에 자리가 없으니 주변 아파트에 주차하라'고 권유한 것은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고객센터 직원들은 매뉴얼대로 중간중간 죄송하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온종일 같은 말을 듣고 죄송하단 말을 해야 하니 직원들도 힘들겠다. 시원한 대답도 듣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만 더 무거워졌다.
그렇게 주말이 왔다. 더위가 누그러지고 바람도 살랑인다.
"날씨도 좋은데 바람이라도 쐬러 갈까?"
"주변이 다 막혔는데 어디를 가? 스타필드 덕분에 온종일 집에 있게 됐네. 저게 생겨서 뭐가 좋다는 거야!"심드렁하게 누워 있던 신랑은 스타필드 방향을 째려본다. 하긴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5분이면 시청에 갔는데, 지금은 40분이 넘어야 도착하는 실정이다. 일단 어찌어찌 나갔다 온다고 해도 주차가 문제다.
"혹시 모르니까 잠깐 보고 올게."오픈 때 행렬보다 더 많은 인파가 열을 지어 가고 집 앞 2차선 도로는 주차장이다. 빵빵거리며 엉켜선 차들은 도대체 움직일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주차 딱지 붙이는 것으로는 문제 해결이 안 되었는지 경비 아저씨들이 차단기를 대신한다. 아파트 정문과 후문에 각각 두 분씩 서서 차량마다 주차 스티커를 확인하고 들여보내는 듣도 보도 못한 진풍경이었다.
이 못할 짓을 온종일 하는 아저씨들 마음은 어떨까?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아저씨들을 비웃듯이 간단한 거짓말 몇 마디로 주차 스티커를 대신한다. "000동 000호 왔어요." 거주민들은 차와 사람들에게 포위당했다. 앞으로 주말을 이렇게 보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
동네에서 만나는 이들은 이제 '집값 올라 좋겠다'는 말 대신 다른 말을 한다.
"이제 하남시는 살 곳이 못 되는 것 같아. 우리 다른 데로 이사 가야 하는 것 아냐? 옛날엔 조용하고 좋았는데."
"하긴 단지 내에 외부 사람들이 좀 많이 돌아다녀야지. 무섭긴 하더라."
"그런데 그거 알아? 요기 호텔 들어온다는 말도 있더라. 그럼 OO 관광객들도 많이 오겠지?"
"아유 그게 말이 돼? 여기 주택단지에 어떻게 호텔이 들어와? 소문이겠지."답답하고 불편하던 마음을 넘어서 무서움이 몰려온다.
도대체 저 스타필드에 안에 뭐가 있기에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드는 걸까? 집에서 입던 허름한 옷차림에 삼선슬리퍼를 신은 채로 혼자서 사람들을 따라 걸었다. 먹통인 신호등,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정신없는 도로, 그 길 위에 불법으로 주차된 차들, 스타필드 내부가 금연이라 길에서 너구리 잡는 직원들, 도로를 메우기 시작한 노점상들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내게 계속 의문을 던졌다.
도대체 시는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오픈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본 걸까. 왜 불법주차 단속은 안 하는 거지? 만약 했다면 도대체 하루에 몇 번 정도 하는 걸까? 한 번? 두 번? 우리가 알던 깨끗하고 조용하던 하남시는 어디로 갔을까? 앞으로 나아지기는 할까?
의자 위를 점령한 쓰레기를 보며 6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쓰레기도 팔아요?" 이 기막힌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부끄럽고 난감하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하남시청과 스타필드에 여러 차례 민원을 제기했다. 그리고 얼마 전 차량정체 및 주차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신규도로가 포함되어 있는 내비게이션 업그레이드와 주차장 유료화를 발표했다(그러나 초기보다 방문객이 줄어들면서 주차장 유료화는 사실상 무산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와 맞물려 오픈 특수가 끝나자 조금 한산해졌다.
최근까지 겪은 크고 작은 사건들을 보며 안타까움과 씁쓸함을 느낀다. 스타필드 개장을 준비하던 신세계나 하남시가 정작 근처에서 생활하는 우리를 배려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남시에서 발표한 내비게이션 업그레이드와 같은 사항은 오픈 전에 미리 진행됐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쓰레기 문제와 노점상의 난입 역시 예측 가능한 문제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 믿고 싶다. 믿고 싶다. 정말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