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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100만명의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외쳤다. 법원은 이례적으로 청와대 100미터 앞까지 행진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경찰은 경복궁역 교차로에 차벽을 설치했다. 이에 시민들은 "비켜라" 라며 소리쳤다.

이 외침은 이내 "경찰들도 동참하라"라는 회유로 바뀌었다. 시위 막바지, 집회 참가자들을 해산시키는 경찰 병력에 "너희들도 시민 아니냐"라고 훈계하는 이들도 있었다. 역사의 현장에서 경찰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12일 집회 현장에서 방패를 들었던 한 의경은 "대한민국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작금의 사태에 분노할 것"이라며 "말은 못해도 많은 의경들 역시 동참하고 싶어한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시위 때 복무했던 한 의경 전역자 역시 "눈물을 흘리며 절규하는 유가족을 막는 마음이 마음이었겠냐"라며 "평생의 죄책감이다"라고 말했다.

100만 촛불집회 당일, 많은 시민들은 경찰들에게 동참하라고 외쳤다. 몇몇은 방패를 돌리는 경찰들과 청와대로 행진하는 극적 장면을 기대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민 앞의 경찰들은 하나의 돌산같았다. 경찰들은 동참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경찰들은 "정치적 중립의 의무 때문"이라며 입을 모았다. 대한민국 남성들은 모두 약 2년간 국방의 의무를 진다. 이때,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공적·사적 공간에서 밝힐 경우 군법 또는 경찰법을 위반하게 되어 처벌받는다. 뿐만 아니라 의무경찰들은 '교양'이라는 재교육 과정을 통해 '정치적 중립'을 내면화하는 과정을 겪는다.

군·경이 정치적 중립의 의무를 강제하는 이유는 그들이 합법적인 국가폭력의 수단이라는 것에 있다. 군경은 대내외적으로 존재하는 위험에 물리력을 행사해 치안을 유지한다. 이때 상명하복식의 의사전달이 이루어지지 않고, 개인이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움직인다면 효율적인 임무 수행을 할 수 없다.

 학생과 시민, 노동자들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하야하라! 3차 범국민행동 촛불문화제'에서 '최순실 게이트'로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학생과 시민, 노동자들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하야하라! 3차 범국민행동 촛불문화제'에서 '최순실 게이트'로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그런데 문제는 이 '정치성'이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며 존재의 근본을 정치성에서 찾기도 했다. 토론을 통해 생각을 교환하는 '정치성'을 뺏는 것은 명백한 기본권 침해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모병제가 아닌 징병제이다. 군경 조직의 '탈정치'라는 특수성을 알고도 이를 직업으로 선택한 모병제 국가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전자는 자발적 선택의 결과이지만 후자는 강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본권 침해가 인정되는 이유는 바로 '휴전상태'라는 우리의 특수한 상황 때문이다. 예외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기본권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비단 정치적인 중립을 강요당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시민들은 폭언, 구타 등의 부조리를 예외상태이기 때문에 참아왔다. 그런데 이러한 예외상태는 5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고, 긴 세월속에서 이는 더 이상 예외상황이 아닌 일반상황이 되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이러한 부조리를 견뎌왔기 때문에, 이에 대해 의문을 품고 질문하는 것은 '부적응자'란 낙인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예외의 일상화는 정치적 거세로, 탈정치의 내면화로 이어졌다.

역사적으로 부당한 권력자는 질문을 무서워했다.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우리 사회가 정상인가', '우리 사회는 정의로운가' 따위의 성찰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질문의 가장 강력한 동기는 이성적인 판단이 아닌 수치심, 분노와 같은 감정이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 사회가 뭔가 잘못된 것 같고, 이에 대해 화가 나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신이 부끄럽다면 시민들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12일, 무려 백만명의 시민들은 분노했고, 부끄러웠고 하나된 목소리는 뜨거웠다.

그런데 광장에서 분노하고, 부끄러웠던 사람은 청와대를 향해 서있던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청와대를 등지고 서있던 경찰도 부끄러웠다. 분노했다. 다만 대한민국의 일상화된 예외상태로 인해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정치적 중립의 의무' 아래, 그들은 '평생을 함께할 죄책감'을 지고 목소리를 삼켰다. 어쩌면 그들이 속으로 삼켰던 눈물의 목소리가 우리의 것보다 컸으리라. 평상복의 시민과 제복속의 시민이 '평화시위'라는 이름 아래 정의에 대해 질문했다. 우리의 부정의한 권력자는 필히 무서웠으리라.

카를 포퍼에 따르면, 어떤 국가가 민주주의 체제인지를 판단하는 방법은 "다수 국민이 마음을 먹었을 때 정권을 평화적으로 교체할 수 있는지"에 있다고 했다. 경찰을 포함한 다수 국민이 마음을 먹었고, 평화적이었다. 이제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증명 받을 차례이다.


#민중총궐기#박근혜#의경#경찰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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