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찬 토요 수영을 마치고 수영장을 박차고 나오는 길에 고양이와 마주쳤다(뭔 인생 자체가 고양이로 도배되어 가는 듯한...) 토실하게 살이 쪄서 건강해 보였으나 털의 빛깔을 보아하니 씻은지 한참인게 길고양이가 확실했다.
나에게 눈길 두 세 번을 주며 껌뻑껌뻑 하더니 여유 있는 걸음으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려나 발길을 따라가다 보니 아현시장 도로변 노점상 중 한 곳으로 쏙 들어갔다. 채소를 파는 상점이었는데 새하얀 파마머리를 동그랗게 얹은 할머님이 주인이셨다. 곧 쫓겨나려니 했는데 앞서 들어간 녀석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안을 들여다보니 가게 한가운데 있는 방석 위에 떡하니 자리 잡고 앉아 주인행세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신기해 가던 걸음을 멈추고 가게 앞에 서 있으니 할머님께서 밖으로 나오셨다.
"할머님, 이 고구마가 밤 고구마인가요?"예정에 없던 고구마 쇼핑이 시작되었다.
"호박 고구마예요. 호박 고구마. 맛이 괜찮아요."
"3천 원치만 주세요."
검정 비닐봉지에 흙 묻은 고구마를 주워 담는 할머니의 어깨너머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도했다.
"어르신, 저 고양이는 길고양이 아닌가요?"
"새끼 때 와서 계속 밥 달라고 하더라고. 처음에는 쥐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고양이야. 나는 못 키우니까 저리 가라고 해도 계속와. 그런 게 벌써 10년이야."고양이 나이 10년이면 사람 나이 50~60세 정도다. 묘생 전부를 할머니와 함께했다는 이야기다.
"고양이가 말을 못해서 그러지 사람이 말하면 다 알아듣는다니께. 여기 와서 쉬고 먹고 하다가 어디 또 싸돌아 다니다가 와서 저러고 있지 뭐…"
할머니와의 고양이 이야기가 무르익던 와중에 가던 길을 멈춘 채 곁길로 대화를 듣던 아주머니 한 분이 합류했다.
"아이고~ 나도 집에 고양이 키우는데, 러시안 블루인데 얘는 아주 시크해요 걔가. 평소에는 지 할 일만 하다가 그래도 또 마음이 생기면 와서 얼마나 안기고 하는지…"
"저도 코숏 한 마리 키우거든요. 지나가다가 저 고양이 보고 신기해서요."
"아이고~ 그러게. 저 고양이도 참 이쁘네요."아주머니와의 이야기를 마칠 때쯤 할머니께서 호박 고구마가 한가득 담긴 검정 봉지를 내게 건네주었다.
"호박 고구마 사게?"고양이를 응시하던 아주머니를 향해 할머니가 물었다.
"아…어…예~~ 주세요. 맛있어 보이네~."아주머니와 할머니는 호박 고구마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할머니와 아주머니께 인사를 하고 가던 길을 이어갔다. 3천 원치의 호박 고구마가 든 비닐봉지가 꽤 묵직했다.
아현시장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맞이하던 노점상들은 재개발로 들어선 아파트 입주민들의 민원으로 그 자리에서 쓸려나고 있다. 2016년 6월. 자진철거 명령으로 인해 40년간 자리를 지키던 아현포차는 화분이 놓인 꽃길로 변했다.
할머니가 운영하시고(버티고) 있는 이 채소 가게도 곧 무엇인가로 변할 것이다. 그러면 10년을 함께 해온 저 고양이, 더욱 오랜 기간 장사를 하며 삶을 이어가던 할머니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그렇게 일구어진 꽃길을 아름답다 할 수 있을까. 아현포차가 사라진 자리. 그 꽃길이 더욱 황량해 보인다.
사람과 생명을 보살피지 않는 것. 그것이 사람 사는 인생, '삶'이라 할 수 있을까. 할머니, 아주머니, 나, 고양이, 호박 고구마. 다 쓸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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