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현의 팔로군 129 사령부 구지
하루 임대한 택시는 운두저촌(雲頭底村)에서 섭현의 팔로군129사령부구지(八路军一二九师司令部旧址)를 향해 40여 km를 달렸다. 섭현 시내에 멀리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앞에 강물이 흐르고 뒤에는 산이 감싸고 있는 지역이었다.
이곳에 활동했던 등소평을 비롯한 장군들의 동상이 서 있고 팔로군 들이 생활했던 주거지 등이 잘 보전되어 있었다. 현재도 주거지와 상점 등으로 활동되고 있었다. 이곳에 많은 건물들이 있었지만 설명해주는 안내원이 없으니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마을 전체가 팔로군 사령부로 쓰인 듯 보였다.
큰 건물 벽면에는 항일활동을 한 큰 사진들을 붙여 놓아서 항일전쟁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해 주었다. 특히 '조선의용군 총부, 조선독립동맹 구지 겸 무정 구지, 조선의용군 겸 독립동맹 중국 대본영'이라고 쓰인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큰 건물 3채의 사진으로 규모가 가장 큰 건물은 사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건물 규모로 봐서 상당한 규모의 조선의용군이 머룰 수 있었을 것으로 보였다.
중조한 우의 기념비129 사령부 구지에서 좀 떨어진 곳에 남장촌 마을이 있었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마을의 한가운데로 들어가자 운동장이 나타났다. 운동장 앞에서는 공연을 할 수 있는 시멘트로 지어진 야외무대가 엉성하게 서 있었다. 그 위에는 마오쩌둥의 커다란 사진이 걸려 있고 南莊文化活動中心(남장문화활동중심)'이라고 쓴 글자가 한문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 글자들 중간에 한글로 '중조한우의기념대'라고 새겨져 있었다.
중한이나 한중 기념비 등은 익히 보아 왔는데 '중조한 우의 기념대'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우의 기념대'는 '우정을 기념한다는 뜻으로' 이해가 되지만 한글로 쓰여진 '중조한'은 무슨 뜻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한문으로 되어 있다면 쉽게 그 뜻을 알 수 있을 텐데 한글로 쓴 '중조한'의 뜻은 끝내 해석할 수 없었다.
다만 중조한은 중국, 조선, 한국일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중국과 조선과 한국이 힘을 모아서 이런 오지에 함께 기념대를 세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곳에서 활동했던 조선의용군을 추모하면서 이 3나라가 함께 기념 무대를 세웠다면 획기적이고 역사적인 일일 것이다.
하여간 중국, 조선, 한국 3나라가 평화롭게 왕래하고 교류하는 우의를 갖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3나라가 공통의 관심과 이해를 갖고 만날 수 있는 공통분모가 조선의용군일 것이다. 조선의용군에 대한 추모 사업을 이 3나라가 진행하면 서로 이해하는 화합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섭현의 남장촌이라는 작은 시골 동네 운동장에 걸린 '중조한우의기념대'라는 뜻이 중국 대륙과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평화의 단어가 되길 바랄 뿐이다.
어린이집이 된 남장촌의 조선의용군총부 남장촌 운동장 옆에 낡고 오래된 3층 건물 하나가 당당하게 서 있었다. 벽면은 하얀 타일이 붙어 있고 커다란 창문이 층마다 6개씩 가지런히 난 것으로 봐서 숙소 등으로 쓰인 건물 같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朝鮮義勇軍總部舊址'(조선의용군총부구지)라는 푯말과 간단한 설명이 건물에 붙어 있다. 그 내용을 해석해 보았다.
"1943년 4월, 조선의용군사령 무정이 조선의용군을 인솔하여 남장촌에 들어왔다. 이 시기에 조선의용군은 삼일상점, 태양 방직창, 대협 의원, 사진관 등을 만들어 운영했다. 중국의 항전 승리를 위해 공헌을 했다. 1945년 8월 동북으로 이동했다."
독립운동을 하던 조선의용군들은 군자금과 생업을 스스로 책임졌던 듯하다. 농사할 수 있는 곳에는 농사도 짓고, 산을 개간하는 등 식량을 스스로 자급했을 것이다. 위의 글귀로 봐서 단순한 식량 조달에 그친 것이 아니라 상점을 열고, 옷감을 생산하는 방직공장을 돌리고, 의원과 사진관 등을 운영한 것을 알 수 있다. 주변의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스스로 자족하면서 독립을 위한 고단한 투쟁을 위해 오고갔던 조선의용군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방치되고 잊혀져가는 조선의용군의 유적지들이 건물은 항일 운동을 위한 조선청년들을 교육하던 학교 겸 조선의용군 총부로 쓰였다. 항일 독립운동의 영웅인 무장 장군과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하신 정율성 선생 등이 교장으로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흔적은 희미하고 현재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어린이집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필자가 방문했을 시간에는 아무도 없고 문이 잠겨 있었으나 문에는 어린이 들이 좋아하는 해와 달과 별과 숫자들이 그려져 있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한 항쟁의 근거지들이 퇴락하고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중국당국에서 이 건물에 '조선의용군 구지'라고 푯말을 붙여서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조국을 위한 전사들을 양성하던 교육장이 지금은 미래 세대를 위한 어린이집으로 활용되고 있으니 감사할 일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쟁하던 수많은 유적지들은 애국을 위한 좋은 교육 자료가 될 수 있는데 그냥 방치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지금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며 개발되고 있다. 독립운동의 유적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다른 용도로 쓰이지 않도록 중국 내에 방치되고 있는 독립운동 유적들을 찾아내고 보존하는 일이 시급하다.
동북공정으로 우리의 고구려나 발해의 역사도 빼앗기고 있는 실정인데 일제에 항거하던 독립운동의 흔적들이라도 찾아서 보존하고 순례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 절실하다. 상해 지역, 만주지역, 중국 중원 등 한국인이 참여한 독립운동의 유적들이 얼마나 많은가? 중국의 지방정부와 자매 결연을 맺으면서 한중 우호도 쌓고 독립운동의 유적을 보전하는 등 실질적인 작업이 필요하다.
또한 독립운동의 유적지에 의미를 부여하고 많은 한국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독립운동 역사기행 등 여행 상품을 만들어도 좋을 듯하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각 지역의 독립운동 유적지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현장을 안내할 가이드가 절실함을 느꼈다.
중국인들은 나라를 위해 희생당한 분들을 위해 많은 시민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시의 한복판에 대규모 열사능원을 만들어서 추모하고 있다. 중국은 항일 근거지마다 기념관을 세우고 그 유적들을 보존하고 수많은 중국인이 찾아와서 항일과 해방정신을 되새기면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해외에 있는 우리의 독립운동의 유적지가 잊혀지고 사라지기 전에 보존과 기념을 위한 특별한 국가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대륙에서 바라본 한반도는 답답했다. 넓고 광활한 중국대륙을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꼈다. 그러나 더 그립고 생각나는 것은 나의 조국 한반도였다. 밖에 나가 있으면 고향이 그립고 고국을 떠나 있으면 자기 조국이 더 생각나는 법이다. 광활한 중국 대륙에서 한반도를 바라보면 그냥 답답해진다.
나라가 작고 인구가 적어서가 아니다. 분단되어서 서로 막혀있기 때문에 답답하고 질식할 듯하다. 좁고 작은 나라일지라도 막혀있지 않으면 답답할 것이 뭐 있겠는가? 휴전선 아래 절벽으로 갇힌 남한은 대륙으로 뻗어나갈 수 없게 막혀 있으니 답답할 수밖에 없다. 같은 민족으로 유구한 역사를 같이 해온 사람들이 서로 담을 쌓고 분단되어서 70여 년간 갈등하고 싸우고 있으니 한심하고 답답하다.
휴전선이라는 절벽으로 꽉 막힌 남한은 교류에 있어서 대륙의 중국이나 섬나라 일본보다 불리하다. 남북이 하나로 연결된다면 대륙과 해양으로 확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는 데 분단의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남북한이 같은 민족으로 번영을 누리는 것은 교류하고 소통하고 하나로 연결되는 것뿐이다. 한반도가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물류의 허브가 될 수 있고 경제 발전과 교통의 중심 축 역할을 할 수 있는데 분단이 저주스럽기만 하다. 남북이 꽉 막힌 조국을 생각하면 마음에 울화가 치밀고 숨이 꽉꽉 조여 온다.
배낭 메고 휴전선을 넘는 여행은 언제쯤? 다음에 중국을 여행하고 올 때에는 압록강을 넘어서 북한 땅을 밟으면서 왔으면 좋겠다. 그런 날이 멀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아니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가야 한다. 여행자들은 장벽이 싫다. 가로막는 장벽은 단호히 거부되어야 한다. 강이라는 장벽이 있으면 다리를 놓아서 건너가야 한다. 다리를 놓을 형편이 안 되면 배를 저어가던지 수영을 해서든지 무슨 방법을 쓰던지 강을 넘어가는 것이 여행이다. 막혀 있고 머물러 있으면 여행이 아니다.
여행을 가로막는 자연적인 걸림돌이나 물리적인 장벽을 허물고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러나 이념의 절벽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넘을 수가 없다. 반도를 동강낸 휴전선에 걸쳐 있는 가시 돋친 이념의 절벽 때문에 여행자는 답답하고 가슴이 막힌다.
남북을 가로 막은 철망을 넘어가는 배낭여행을 하고 싶다. 여행이 별 것인가? 길이 있으면 가는 것이고 길이 없으면 그냥 밟고 지나가는 것이다. 사람이 있으면 만나는 것이고 걸림돌이 있으면 치우면서 가는 것이다. 고단하면 쉬었다가 가는 것이고 신나면 춤추면서 가는 것이다. 동행이 있으면 같이 가는 것이고 아무도 없으면 낯선 풍경을 눈에 넣으며 혼자라도 가는 것이다.
두만강을 건너 개마고원 거친 땅을 지나 휴전선 분단의 철조망을 통과하여 남쪽 바다가 보이는 거제도 포로수용소 자리까지 걷고 또 걷고 싶다. 언젠가 올 그날을 기다린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여행은 미완성이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