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공급 중단하면 진짜 전쟁 난다 했습니다. 중국 당국자의 말입니다.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최소한의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중국정부가 하고 있다는 거예요. 전쟁 나면 제일 큰 피해를 입을 나라는 한국이지만, 중국이 한반도전쟁의 저지선에 있다는 거죠. 북한의 숨통을 계속 조여 버리면 선택은 하나. 너 죽고 나 죽자. 전쟁뿐이라는 겁니다."문재인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날로 격화하는 한반도 위기 앞에 민족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우리 정부의 현명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일갈했다. 보수층의 반발을 의식해 원유공급 중단 등 대북제재 중심으로 북한을 압박한들, 또 정치권이 앞장서서 중국 책임론을 거론하며 세컨더리 보이콧을 주장한들, 해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이 박근혜 정부와 확실히 달라야 하는 것 아니냐"며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통일부 장관도, 외교부 장관도 안 보인다, 전부 그림자 모드"라고 비판했다. 이어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전형적인 '순둥이 관료'처럼 행동하고 있"으며 "강경화 장관은 스스로 나는 다자외교 전문가이니 남북관계는 청와대 안보실장의 몫이라고 판단해 미 국무장관과 통화조차 안 하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의 지적처럼 "현재 문재인 정부 안에 남북관계의 그랜드 디자인이 없다"고 각을 세웠다.
이 고위 관계자는 "세계사에서 전쟁은 합리적 이성적 상황에서 벌어지지 않았다"며 "일촉즉발의 위기 앞에서 우리 정부는 즉각적으로 북한과 중국에 고위 특사를 파견하고 보다 적극적인 해법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북정책은 국민의 동의를 얻어서 추진하는 것이 아니고 대북정책의 성과를 놓고 국민의 동의를 받는 절차로 움직여야 한다"며 "지금은 외교의 공간을 한미동맹에 가둘 때가 아니라 유럽 정상들로까지 넓혀야 하고, 그들에게 북한 제제에 동참해달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해 함께 해달라고 호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 북핵 외교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북한과 중국에 고위 특사 즉각 파견해야"또한 이 관계자는 "지금 우리 정부가 해야 할 것은 한반도에서 핵전쟁은 안 된다, 무력으로 인한 북핵해결은 절대 반대라고 선언한 뒤 더 이상 트럼프가 '뻘짓' 하지 못하도록 '한미동맹+알파' 외교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평화를 중점에 두고, 중국 역할론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핵실험에 대한 중국 책임론을 제기하기보다는 이 사태의 해법을 위한 중국 역할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할 때라는 것이다.
이 고위 관계자는 "원유공급 중단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해왔던 주장"이라며 "중국 정부 관료들도 북한의 원유공급 송유관을 잠그면 그때는 진짜 전쟁 난다고 우려하는데 우리가 MB와 같은 주장을 되풀이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송영무 국방장관의 전술핵 배치 공감 발언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송 장관은 지난 4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전술핵 배치를 깊이 검토해봐야 할 사안이라고 주장해 청와대와 엇박자가 나고 있다.
이 고위 관계자는 4가지 문제점을 들어 전술핵 배치를 반대했다.
첫째, 한반도에 전술핵을 배치하는 순간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를 포기해야 하고 북한을 핵보유국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미국의 핵우산(전략자산)의 보호를 받고 있고 필요하면 언제든 B1B폭격기가 배치되는 마당에 전술핵을 배치해서 국지전 도발을 불러올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셋째, 한반도에 엄청난 위험이 초래된다는 것이다. 북한이 현재까지는 전술핵에 큰 관심이 없지만 전술핵까지 관심을 갖으면 그 뒤로는 '행동 대 행동'으로 나올 텐데 그것을 어떻게 하려는 것이냐고 개탄했다. 이를테면 연평도 포격에서 핵이 날아온다는 상상을 해보라고 가정했다. 단거리 국지전이 핵포탄으로, 핵지뢰로, 핵배낭으로, 때로는 핵미사일로 날라 온다고 생각을 해보라는 게다.
전술핵 반대 4가지 이유이 고위 관계자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과연 전술핵을 알고 배치하자고 하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전술핵의 용도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면 전술핵 배치를 쉽게 꺼낼 수가 없다"고 갑갑증을 토로했다. 전술핵과 전략핵을 구분하지 못한 채 함부로 꺼낸 주장 아니냐는 비판이다.
그는 "한반도에 전술핵 시대가 도래하면 걷잡을 수 없는 모험이 진행된다"며 "국지전에 사용되는 전술핵 배치 얘기는 함부로 꺼내는 것이 아니"라고 일갈했다.
마지막 네 번째는 핵무기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1990년대 냉전체제가 붕괴되면서 탈냉전을 할 때 각국은 전술핵을 폐기했고 진영간 대결을 하지 않기로 했다. 전략핵은 장거리에서 적의 심장부를 가격할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지만 전술핵은 국지전에 얼마든지 동원가능하기 때문에 각국이 내린 조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우리가 나서서 "핵전쟁 발발 가능성을 열자? 국제사회는 지금 핵으로부터 안전한 사회 건설인데, 우리가?"라고 거듭 우려했다.
그는 "우리가 전술핵을 배치하는 것은 북한에게 전술핵 배치까지 개발할 명분을 주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으로 가자는 것"이라며 "우발적 상황이 전면전으로 간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고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며 "북한이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주겠지…, 그러나 북한은 자신들의 손에 확실한 카드를 쥐지 않는 한 그 어떤 정부의 주장도 말로만 믿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은 여당 안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5일 열린 시민단체 토론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김동엽 교수 "조건 없는 남북대화 시작해야"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정교한 로드맵 하에서 '마이 웨이(My Way)'를 추구하고 있다"며 "북한이 새로운 우리 정부에 대한 기대감에 속도 조절을 할 것이라는 자기희망과 최면에 빠져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고 대북전략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걱정했다.
이어 김 교수는 "북핵 능력 고도화에 따라 동결입구론을 앞세운 동결-비핵화라는 단계론만으로는 북핵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며 "트럼프의 '최대압박과 관여'라는 모순에 동조하고 미국을 설득한다는 한미관계를 우선 고려한 정치적 판단으로 실제 북한을 유인해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북한의 핵무장이 현실화된 조건에서 비핵화라는 최종목표에 과도하게 함몰되기보다는 군사적, 외교적, 정치적 대응을 동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통치권적 차원의 결단을 통해 근본적인 북핵 문제 해결과는 별도로 조건 없는 남북대화 개시로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유예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남주 교수 "북 도발에 감성적 반응 영합은 사태를 더 악화시킨다"이남주 성공회대 중국어과 교수도 같은 우려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이 교수는 "북한에게는 현재 단순히 대화를 재개하는 것은 결코 매력적인 대안이 아니"라며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행동 논리를 변화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은 없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논리로 북한을 대화로 끌어들이기 위한 시도를 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또 "북한의 도발에 대해 강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일단 국내 여론을 관리해가자는 접근은 결과적으로 대북정책에서 자신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며 "북한의 행동변화는 이끌어내지 못하고 단순히 북의 도발에 감성적 반응에만 영합하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이라고 일갈했다.
무엇보다 이 교수는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멀지 않아 수구세력에 의해 하이재킹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런 상태에서 사회개혁이 순조롭게 추진될 리도 만무하다"고 우려했다.
그는 "북한과의 대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한다고 하더라도 단기간에 평화협정이라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데 있다"며 "당장 시급한 것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강화 속도를 늦추고, 이를 통해 마련된 초보적 신뢰를 다양한 교류와 협력 사업을 통해 확대시켜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촛불혁명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국내정치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에서 대전환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한반도 위기의 딜레마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미 동맹 일극주의를 버리고 유럽의 정상들과 손잡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호소하라는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문재인 정부가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