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이 출근해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점심시간이 아닐까요? 그런데 점심값이 만원에 육박하면서 마음은 무거워지고 지갑만 가벼워졌다는 푸념만 들립니다. 치솟는 물가 때문에 가정경제도 휘청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대로 괜찮은지, 대안은 없는지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봐야 할 때 입니다. '점심값 만원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목소리에 그 답이 있진 않을까요? [편집자말] |
"이제 밖에서 못 사먹겠어요."
회사원 김지원(26·서울 신촌동)씨는 순댓국 얘기를 꺼내며 투덜거렸다. 단골 식당이 순댓국 가격을 6천 원에서 7천 원으로 올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까지 줄었다. 순대와 고기, 각종 내장은 드문드문 보였다.
새해부터 햄버거, 떡볶이, 커피 등 주요 외식 프랜차이즈에서 줄줄이 메뉴 가격 인상에 나섰다. 대학생과 취업준비생, 사회초년생들이 겪는 밥값 고민은 기실 어제오늘 생긴 게 아니다. 지난 2015년 아르바이트 구직 포털 알바천국이 전국 대학생 92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들은 식료품 물가 상승이 피부에 가장 와닿는다고 꼽았다.
청년들은 한 푼이라도 아낄 요량으로 다양한 소비 노하우를 지니고 있다. 집에서 직접 음식을 지어 먹는 청년이 눈에 띄었다. 식사 대용 과자로 끼니를 잇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벤트에 응모하거나 '상품권깡'까지 활용해 밥을 사먹는 젊은이까지 있다.
'집밥' 만드는 청춘... '칼로리 바란스'로 연명하기도2년 반 넘게 자취를 하는 직장인 지원씨는 요즘 집 근처 대형마트에서 장을 본다. 매주 1만5천원 선에서 국거리, 반찬거리 몇 가지를 산다.
가령 일주일 내내 먹을 닭볶음탕과 냉이된장국을 요리해야겠다는 마음이 섰다면 6천원쯤 하는 1㎏ 닭고기, 1500원어치 냉이를 네댓 봉지 사는 식이다. 그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을 노릴 것을 귀띔했다. 마트에서 30% 할인 판매하는 경우가 다반사란다.
대형마트는 늘어나는 1인 가구를 겨냥해 소포장 신선식품을 내놨다. 하지만 이것이 식비를 아끼는데 별반 도움이 안 된다고 밝혔다. 지원씨는 "큼직한 대파 한 봉이 1500~2000원쯤 하는데, 혼자 요리하기 좋게 소포장된 것은 2500원~3000원쯤 되더라"며 "차라리 일반 야채를 구입해 다음에 요리하기 쉽게 잘라 냉장고에 넣어 얼려놓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지원씨는 곧잘 배달 음식을 먹었다. 일주일에 두 차례 정도 1만9천 원어치 치킨을 시켜 반찬 대용으로 먹었다. 분식집에서 백반을 시킬 적엔 '2인분 이상 주문해야 배달할 수 있다'는 제약 조건 때문에 저녁 끼니마다 1만5천 원 이상을 썼다. 그는 "작년에는 혼자 식사를 해결하는 데만 월평균 30만 원이 나갔다"며 "집에서 밥을 지어 먹으니 식대는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셈"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권용석(26·서울 정릉동)씨는 최근 자취방에 두 친구를 초대했다. 그는 감자튀김을 요리했다. 맥주와 곁들여 안주상을 냈다. 두런두런 이야기꽃이 폈다. 용석씨는 "바깥에서 술 한 잔 마신다고 해도 안주까지 포함해 1인당 1만 원은 들기 마련"이라며 "술집 갈 때보다 70%가량 금액을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도 '집밥 문화'가 확산돼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허경옥 성신여대 교수(생활문화소비자학)는 "예산 제약에 직면한 청년들은 소득 수준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외식을 일상화하고 있다"며 "외식하는 빈도를 줄이되,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월세 32만 원이 드는 셰어하우스에서 사는 임소희(20·서울 구로동)씨. 그는 밥을 지어 먹고픈 마음은 굴뚝이지만, 그럴 엄두조차 못 낸다.
"밥솥에 밥을 한 번 지으면 또 다른 사람이 쓰게 되니까, 밥을 재빨리 비워야 한단 말이에요. 눈치가 보이죠. 게다가 저는 방송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요. 새벽 5시 반까지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데, 아침밥을 준비할 시간이 없어요. 외식을 마냥 줄일 수는 없는 노릇이죠."소희씨는 월말 생활비가 떨어졌을 때 일주일 넘게 '칼로리 바란스' 과자로 연명한 적이 있다. 젊은 여성들 사이에선 저칼로리 간식으로 정평이 나 있단다. 소희씨는 "한 통에 막대과자가 4개 들어 있고, 그 막대는 세 칸으로 칼집이 나 있다"며 "한 조각씩 쪼개 먹으면 나흘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가 학식도 인상... "500원 공깃밥만 주문해요"
집밥으로 때우기에 버거운 대학생들 상당수가 학생식당에서 주린 배를 채운다. 그러나 학식 밥값도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각 대학마다 인건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그 책임을 '최저임금'에 돌린다.
국민대 생활협동조합은 신학기 교내 식당 판매가를 최대 10% 올린다고 22일 밝혔다. 아침식사 등을 제외한 대부분 메뉴 가격이 100~500원 올랐다. 인천대 생활협동조합도 새달부터 사범대 식당 정식과 학생식당 라면을 각각 500원 올려 5천 원, 2천 원에 팔기로 결정했다.
용석씨가 소소한 '꿀팁'을 알려줬다. 지갑이 얇을 때면 그는 학생식당에서 500원을 내고 공깃밥만 주문한단다. 국과 김치는 기본 메뉴로 누구나 먹을 수 있게끔 제공되기 때문에 세 가지 음식만 있어도 굶주릴 염려는 없다는 것.
서윤진(가명·25·서울 북가좌동)씨는 지난해 '청년도시락' 사업의 덕을 톡톡히 봤다. 사업 수혜자로 선발된 윤진씨는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에 식권과 결제 영수증을 제시해 식비를 지원받았다. 식비 지원을 신청한 배경에 대해 윤진씨는 "가정 형편이 매우 좋지 않은 까닭에 학기 중에 늘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며 "오전 9시에 수업이 있는 날엔 도시락을 쌀 여유도 없어서 밖에서 사먹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기아대책은 올해 1학기, 2학기, 계절학기 등 세 차례에 걸쳐 식비 지원 신청을 받을 계획이다. 이번 학기 신청자 접수는 2월 28일 마감됐다. 수혜자 30명이 뽑힐 예정이다. 소득 분위를 위시한 경제적 상황과 지원 동기가 주된 선발 기준이다. 기아대책은 청년도시락 사업 대상자로 선발된 학생들에게 앞으로 넉 달 동안 매일 한 끼 식대와 외식상품권을 지원한다.
강창훈 기아대책 국내사업본부장은 "청년도시락 사업을 신청하는 학생들은 물가가 오르기 전이나 지금이나 식사를 해결하기 어려운 이들"이라며 "빈곤 아동들이 19세 이상 성인이 되면 정부나 민간단체의 지원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다는 점에 착안해 사업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페북 이벤트·'문상 신공'도... "싼값 집착하다 지출 늘릴 수도"최근 청년들의 식품 구매 문화는 '온라인'과 '실속형 소비'의 결합으로 요약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플랫폼 페이스북에서 진행하는 경품 이벤트를 집대성해 안내하는 웹사이트 E사도 젊은이들 사이에서 주목 받고 있다.
2월 28일 오후 2시를 기준으로 E사 홈페이지엔 234건의 식품 분야 이벤트가 소개됐다. 댓글을 쓰거나 팔로우를 하고, '좋아요'를 누르면 자동 응모되는 방식이다. 대개 유명 카페 프랜차이즈의 아메리카노 기프티콘이 경품으로 내걸린다. 때때로 쌀, 통조림, 치킨 상품권 등을 지급한다.
박형준(가명·24·서울 진관동)씨는 "페이스북 댓글에 지인들의 이름을 태그하라는 이벤트도 있다"며 "실제 친구들을 태그하면 민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계정을 대여섯 개 열어 그 계정들을 댓글에 단다"고 말했다.
옥션, 11번가, 티몬 등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 문화상품권을 액면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사들여 이를 식비로 쓰는 사례도 있었다. 상품권 가맹점 상당수가 외식 프랜차이즈라는 점이 한몫 한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이러한 수법을 '문상 신공'으로 부른다. 실제로 한 업체에서는 해피머니 온라인상품권 1만원권을 9700원에 팔고 있었다. 다른 업체에선 컬처랜드 문화상품권 1만원권을 9200원에 판매 중이다.
온라인 수단을 활용한 정보 검색에 능숙한 20대들은 각 프랜차이즈 업체의 할인 정보를 즉각 활용한다. 매달 초 포털 뉴스 검색을 통해 각 프랜차이즈 업계 소식을 확인한다. 업체마다 어떤 프로모션(판촉 행사)을 실시하는지 살피는 것이다.
형준씨는 카카오톡의 '플러스 친구' 기능을 활용하는 것도 추천했다. 그는 "이를테면 롯데리아에서 2월 27일 '리아데이' 이벤트를 한다는 안내 메시지를 보내왔다"며 "그 덕분에 핫크리스피버거 2개를 평소보다 싼 값에 먹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턱대고 기업들이 내거는 '알뜰' '할인' '1+1' 등에 현혹돼선 안 된다는 충고가 뒤따른다. 허경옥 성신여대 교수의 설명이다.
"몇 퍼센트 물건값 깎자고 나서는 행동들이 결국 전반적인 지출을 늘리게 돼요. 그게 기업들이 수행하는 마케팅의 목표입니다. 그렇게 하루 지출하는 태도가 365일, 5년, 10년 반복되면 여러분의 곳간은 '티끌 모아 모래'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