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참사가 9주기,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삶의 터전에서 내 몰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용산 남일당 옥상에 올랐던 사람들과 다르지 않는 평범한 우리의 이웃들이다.
70년대를 대표하는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아래 난쏘공)에는 난쟁이 아버지를 중심으로 삶의 터전을 지키려 분투하는 철거민 가족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철거반원들이 집으로 들이닥쳐 벽을 부수는 와중에 가족들은 마당에 펴놓은 작은 평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그 장면은 70년대를 상징하는 처절하고 슬픈 한 컷의 기록사진이기도 하다.
40년의 훨씬 지난 지금 현실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불과 9년 전 용산 남일당 건물옥상에 올랐던 사람들은 <난쏘공>의 난쟁이가족과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9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현실은 용산 남일당 옥상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9년 전 용산과 다르지 않은 오늘 이야기 <이타적 유전자가 온다>
난쏘공 가족들이 겪었던 일을 40여 년이 지난 지금 <이타적 유전자가 온다>의 이다네 가족들이 똑같이 마주하고 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기표가 법이라면 힘없는 난장이의 기표는 맨주먹뿐이지. 법은 국가에 의해 정당화되지만 맨주먹으론 아무리 정의를 외쳐도 정당한 기표로 인정받을 수 없어." "참 더럽네요."
이다가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은 '참 좆같네요'였지만 순화된 표현으로 바꾸어 말했다. ……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난장이의 키가 단 1센티미터도 자라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덕훈의 장편소설 <이타적 유전자가 온다>는 서울의 한 재개발 지역 소시민들의 삶을 통해 한국사회의 자화상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반석연립 302호에는 콩가루 집안 피씨네가 산다. 두 삼촌, 할머니, 엄마 할 것 없이 재개발 문제를 두고 서로를 위하는 척하며 속으론 이기심이 작동한다.
작가는 이런 어른들의 모습을 고등학생 이다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이다는 인문놀이방에서<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기적 유전자> <장미의 이름> 등의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며 재개발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삶의 모습들을 요목조목 다시 살펴보게 된다.
주변을 보고 있노라면 욕지기가 치밀어 오를 정도로 이기적인 모습들이지만, 이런 이기적인 인간에게도 이타적 유전자는 있다. 재개발에 맞서 삶을 지켜내기 위해 이기적 인간들의 이타적 유전자가 꿈틀대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담고 있지만 <이타적 유전자가 온다>는 해학과 위트가 넘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진지한 고민이 아니라 배꼽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하하하! 이다 어머니가 말씀을 너무 재밌게 하시네요." "호호호! 최 샘도 참!"
두 사람은 허파에 헛바람이라도 들었는지 전혀 우습지 않은 얘기에 뭐가 그리 좋은지 하하하 호호호 야시꺼운 웃음꽃을 피웠다.
"엄마! 최 샘이 아니라 체 샘이거든." "얘는! 최·게·바·라 선생님이잖니."
이다의 목소리가 다소 까칠하게 느껴졌는지 피일자 씨가 정색을 하고 나섰다.
"체 게바라야!"
피일자씨가 게바라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음표를 찍었다.
"그…그게 보통은 '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발음하기에 따라서는 '최'가 될 수도 있죠." "그렇죠? 최 샘. 거 봐. 지집애야."
피일자 씨의 혀가 조금씩 꼬여가고 있었다. (p121)
소설의 첫 문장부터 독자를 사로잡는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웃고 또 웃다보면 어느새 묵직한 주제의식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의 삶 또한 그렇지 않을까? 일상에서 사소한 일로 웃고 떠드는 사이에 현실의 난관이 그림자처럼 스며드는... 이 소설이 우리의 현실을 '빼박' 닮을 수 있었던 것은 인물들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 덕분이기도 하다.
<이타적 유전자가 온다>의 인물들은 우리시대의 갈등과 모순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서로를 '종북좌빨', '보수꼴통'이라 칭하며 사사건건 부딪히는 일남, 이남 형제를 통해 사상의 대립을, 가게를 빼앗기고 쫓겨날 처지의 이다의 엄마 피일자와 부동산 졸부 진우의 아빠를 통해 빈부의 대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양은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단속반을 피해 숨바꼭질하듯 시장통을 누비며 홀로 애 넷을 키운 할머니가 겨우 일군 보금자리를 재개발이란 이름으로 철거하려는 장면에선 1970년대부터 '난장이'의 키가 한 뼘도 자라지 않았음을 깨닫게 한다. <이타적 유전자가 온다>의 각 인물들의 삶의 모습이 모여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그린다.
만일 9년 전 그날 우리의 이타성유전자가 작동했다면
경찰특공대와 포클레인이 반석연립을 향해 다가온다. 그때 십대 청소년 예은이가 SNS를 통해 상황을 전하자 순식간에 수만 명의 사람들이 이 메시지를 퍼 나르기 시작한다. 그들의 몸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이타적 유전자가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침묵하지 않고 많은 사람이 목소리를 낼 때 이 사건의 결말은 달라질 것이다. 작가는 그런 해피엔딩을 꿈꾸기 때문에 저마다의 이타적 유전자가 꿈틀대길 바라며 제목을 '이타적 유전자가 온다'라고 지었는지도 모른다.
"경찰특공대야! 간신히 따돌리고 올라왔어."
진우가 상황을 전했다. 중간에 짐을 잔뜩 싣고 올라오던 택시와 트럭 기사 그리고 아주머니 두 분이 경찰에 끌려가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진우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탐조등의 환한 빛기둥이 하늘로 솟았다. 굵은 빗줄기가 사선을 그으며 환한 조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빛기둥은 허공을 두 바퀴 돌더니 곧바로 반석연립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지축을 흔들며 천천히 반석연립 전체를 핥아 대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옥상 바닥에서 피자가 빗물에 젖고 있었다.
"같이 있을 거야?"
진우는 대답 대신 헬멧을 벗어 이다에게 씌워 주었다. 탐조등이 옥상에 있는 사람들을 정조준했다. 반석연립 옥상에는 여섯 명이 있었다. 그들은 아주 오랫동안 그곳에 남아 있을 것이었다. 땅이 울기 시작했다. (p263)
만약 9년 전 그날 새벽, 우리가 조금만 달랐다면?, 이기심을 넘어 조금씩만 이타적으로 연대할 수 있었다면? 저자는 소설의 첫머리에서 용산 남일당 옥상을 지켰던 영혼들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소설은 대통령 선거 발표로부터 시작한다. 우리의 일상적 삶을 붕괴시키고, 계급 간 대립을 심화시킨 사건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사건과 그걸 바라보는 일상적인 캐릭터들의 대립은 소설 첫머리부터 무엇이 우리가 고민해야 할 영역인지를 보여준다.
이 소설이 용산의 비극을 넘어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지는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저자 안덕훈은 '작가의 말'에서 그 실마리를 넌지시 흘려놓는다.
거기에 사람이 있었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용산 남일당 건물 옥상. ……
소설 속 반석연립 옥상에 사람이 있다. 그곳에 있는 여섯 명의 운명이 어찌될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지난해 겨울을 보내며 우리들 속에 꿈틀거리던 이타적 유전자를 확인했기에 이 소설은 해피엔딩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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