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학문이지만, 그만큼 이해하기 힘든 분야이기도 하다. 관심을 가지고 신문 경제면을 읽으려 하면 알 수 없는 용어들이 매 문장마다 잔뜩 박혀있기 일쑤고, 따로 공부를 해보려고 하면 현실의 경제와는 전혀 동떨어진 수식과 그래프의 나열이 금방 진이 빠지기 때문이다.
<홍훈 교수의 행동경제학 강의>는 그런 어려움을 털어버리기에 알맞은 책이다. '행동경제학'이라는 생경한, 그러나 여느 경제학 이론들보다도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깊게 연결돼 있는 경제학의 한 분야를 쉽게 한 바퀴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행동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왜 탄생했는지부터 이 학문이 우리의 일상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앞으로 어떤 분야들이 행동경제학의 이름으로 연구될 것인지 등 흥미로운 주제들이 담겨 있다. 노(老)교수가 자신이 관심을 갖고 연구한 내용을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듯 편안하면서도 세밀한 문체로 전개한다.
일상의 경제학, 행동경제학
우선, '행동경제학'이란 무엇일까. 저자인 홍훈 교수에 따르면 행동경제학은 1980년께부터 태동한 경제학의 한 분과로서 기존의 주류 경제학의 한계를 지적하며 그들과는 다른 방식의 논리와 연구 방법을 채택한 분야다. 따라서 행동경제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경제학이 도대체 무슨 특징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복잡한 수식과 그래프들이 잔뜩 메워진 경제학 전공 서적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도 미시학, 거시학이라는 단순한 분류부터 국제무역, 국제금융, 화폐금융 등에 이르기까지 분야들도 다양하다. 이러한 기존의 경제학은 흔히 신고전파 경제학, 혹은 '표준이론'이라고 명명된다고 한다.
이들의 특징은 '합리적 인간'과 '시장의 가격기구'라는 두 가치 축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세상을 분석하는 것이다. 분석의 대상이 되는 선택 대안들이 '효용'이라는 공통된 단위로 얼마든지 자유롭게 분해, 대체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추가적인 전제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에 깔아두고 있기에 주류 경제학자들은 자연스럽게 수학과 통계를 활용한 다양한 이론들을 발전시켜올 수 있었다. 합리적 인간, 효율적인 시장 그리고 동질한 미세 단위로 분해 가능한 선택지라는 전제가 있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합리적 인간들이 수학적 계산을 통해 자신들에게 '최적'이 되는 경제적 판단을 내린다고 생각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수리 모델을 개발하면 됐던 것이다.
그러나 홍훈 교수에 따르면 행동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전제들 전반에 대해 의문과 반발을 던진다. 현실의 인간과 시장 그리고 상품들은 경제학자들의 머릿속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다. 가령 현실의 인간은 제대로 확률적인 계산을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여러 상품들은 쉽게 서로 역할을 대체할 수 없으며, 시장에도 법과 정책, 도덕과 윤리 등 많은 제약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바라보는 데에는 행동경제학이 더 타당하게 다가오는 부분들이 많이 존재한다. 가령 '이자율'을 대하는 데에 있어, 기존의 경제학에서는 할인효용모형(discounted utility model)을 내세운다. 이는 시점이나 자금의 규모에 관계없이 할인율이 일정하게 유지된다고 가정하는 모형이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에서는 쌍곡형 할인(hyperbolic discounting)이라는 개념을 내세워 시점이 달라지면서 사람들의 할인율도 바뀐다고 주장한다.
실제 현실에서 의사결정을 내릴 때,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판단이 쉽게 바뀌는 것을 생각해보면 전자보다 후자의 입장이 더 옳게 느껴진다. 책에 제시된 예로는, 미래에 금연을 할 것이라는 계획을 세웠는데 막상 그 시점에 가니 금연을 하기 싫어진 경우가 등장한다. 이것은 결심할 당시에는 현재보다 미래를 더 중시하는(그래서 '낮은 할인율'을 채택하는) 판단을 내렸으나 막상 그 시점에 가니 판단이 뒤집혀버린(그래서 '높은 할인율'을 채택하는) 상황이다.
굳이 어려운 개념까지 동원해 설명해야 하는 건가 싶은 일상적인 예시들이 이 책에 잔뜩 등장한다. 하지만 그러한 예시들을 통해서 독자들은 행동경제학이 왜 필요했고, 급속히 부상한 것인지 빠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만큼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현실을 '이론'의 틀로 보여주는 데에 기존의 경제학보다 행동경제학이 더 탁월하다는 느낌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두 차례의 노벨상 수상, 경제학의 중심을 향해 행동경제학은 제대로 된 경제학이 아니라는 한 때의 편견은 채 한 세대가 지나지 않아 완전히 깨지게 됐다. 지난 2013년,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기반한 주류 경제학자인 유진 파마 교수가 자산 가격 결정에 대한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할 때 그 옆에는 대표적인 행동경제학자인 로버트 실러 교수가 함께 있었다. 그리고 2017년에는 시카고 대학의 리처드 탈러 교수가 단독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거머쥐었다. 그는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라고도 불리우는 인물이다.
홍훈 교수 역시 이 사실들을 책에서 언급한다. 그리고 행동경제학이 금융재무이론과 같은 몇몇 분야에서는 이미 기존의 신고전학파 주류 경제학에 버금가거나 심지어 넘어선 지위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만큼 경제학의 중심을 향해 행동경제학이 발전해온 것이다.
사실 그러한 중요성을 차치하고서라도,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다루고 있는 행동경제학 주제들의 상당 부분들이 일상 속의 내용들을 경제학으로 풀어낸 것이기에, 그만큼 일상을 경제학적 관점으로 제대로 설명해 내는 게 가능하다는 놀라움과 흥미로움이 함께 몰려온다.
그러니 <홍훈 교수의 행동경제학 강의>는 경제학에 생경한 사람도, 경제학을 이미 학문으로서 공부해봤던 사람들도 각자 색다른 내용들을 배울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전자의 경우 경제학의 '핫'한 분야를 전반적으로 접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누리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 자신이 배워온 경제학의 시야를 더 확장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