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구경으로 양평 용문사 템플스테이에 함께 하기로 한 딸은 잔뜩 들떠 있습니다. 다행히 태풍이 스쳐 지나가 오후에는 비가 그쳐 무사히 갈수 있게 되었습니다. 태풍 덕분에 계곡의 물소리는 경쾌하고 낙엽이 떨어진 자리는 멋진 예술 작품이 됩니다. 다음날 아침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서 모든 힘을 합쳐 일을 한다는 '울력'으로 새벽에 모든 낙엽을 같이 치워야 한다는 사실을 모른채 마냥 낙엽사이를 뛰어다닙니다.
주차장에서 10여분 가량 걸어야 용문사 입구에 다다를수 있었습니다. 용문사 입구에 도착하니 비고 그치고 해가 다시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템플스테이 사무실 입구 뒤로는 계곡이 흐르고 코스모스와 구절초가 예쁘게 피어 있습니다.
용문사는 가을을 맞이해 가을 향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입구에 대형 철제물이 보였고, 이것의 중심을 받쳐주기 위해서 사방으로 와이어가 철치되어 있었습니다. 정말 미적감각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마음의 불편함을 뒤로 한채 템플스테이에는 70여명이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여행온 부부도 있었는데, 아이들은 금방 친구가 되는듯 합니다. 한두살 어린 여자 아이와 영어로 락, 시저, 페이퍼(가위, 바위, 보)를 하면서 돌쌓기 놀이를 합니다.
저녁 예불시간에는 절하는 방법도 배우고 공양후 설거지도 직접해보며 아이는 재미있다며 11월에도 또 왔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다음날 아침 새벽 108배를 마치고 울력으로 낙엽을 쓸며, 처음해보는 일이지만 보람있어하는 딸아이의 모습에서 다시 한번 함께 만들어가는 재미가 무엇인지, 어떻게 키워야 올바른길일지 고민해 보게 합니다.
오전 공양이후 은행나무에 매달 소원카드를 만들고 스님과 사찰 전체를 함께 걸으며 용문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 당상관(정3품)이란 품계를 받을 만큼 중히 여겨져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이며, 생물학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은행나무가 점점 젊어 지고 있다며 웃으십니다. 그 이유가 화장실이 정화시스템을 바꿔 (은행나무의) 자연비료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꼭 한번 화장실을 이용하라는 이야기에 모두 웃음을 터트립니다.
그리고 그 옆에 우뚝 솟아있는 첨탑에 대해 말씀을 하십니다. 은행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피뢰침이라는 말에 저는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어제 하루종일 차마 말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공사중인 용문사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었는데, 겉모습만 보고 모든것을 판단했던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만들어 지고 있는 대형석화를 위해 많은분들이 기부를 하고 옮기는데에도대형 크레인이 동원되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완성이 되면 용문사의 또 하나의 보물이 될것이라고 합니다. 완성되기까지 보이지 않은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된다는것을 알면서도 잠깐의 불편함을 마음속에 계속 담고 있었던 것이 다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나를 내세워 좋게 보이기 보다는 올바른 길을 위해 은행나무의 지킴이로 서 있는 첨탑을 보며 내려오는 길 자비와 사랑의 의미를 저 첨탑이 전파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
'나쁜 말을 하지마라 악담은 돌고 돌아 끝내는 내게로 돌아온다.'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미워하지 않는다.' '삶이란 한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다.' 법구경에 나오는 말씀이 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은행나무가 예쁘게 물들어 질때 다시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올땐 지금보다 조금 더 자비로워지길 바라며 소중했던 용문사 템플스테이 체험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