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이명박과 증인 원세훈이 처음으로 법정에서 마주했다.
15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110억 원대 뇌물수수 혐의 등을 받는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공판을 열었다. 이날 이 전 대통령은 오후 1시 59분 법정에 도착해 피고인석에 앉았다. 구속돼 따로 재판을 받고 있는 원 전 원장은 오후 2시 13분 체크셔츠에 남색 정장차림으로 법정에 들어섰다. 원 전 원장은 증인석에 선 채로 이 전 대통령을 향해 고개를 숙였고, 이 전 대통령 또한 인사를 건넸다.
이 전 대통령은 2010년 7~8월 청와대 특활비가 부족하다며 원 전 원장에게 국정원 돈 2억 원을 받고, 그해 9~10월 원장직에 대한 보답 등으로 10만 달러를 추가로 건네받은 혐의를 받는다. 1심은 10만 달러는 뇌물죄로, 2억 원은 국고손실죄로 인정했다. 원 전 원장 또한 이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과 변호인단은 초반부터 재판 공개 여부를 두고 공방을 벌였다. 변호인단은 원 전 원장의 신문 내용 일부가 국가 안보와 연관돼 신문을 비공개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공개재판이 원칙이며 추후 증거능력 등을 따져봤을 때 증인신문을 공개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우선 공개할 부분은 공개한 뒤 나중에 결정하겠다며 재판을 진행했다.
"대통령이 그런 지시하겠나"라면서도 횡설수설
이 전 대통령 쪽 증인 신청으로 나온 원 전 원장은 줄곧 이 전 대통령을 감쌌다. 그는 청와대에 특활비 2억 원을 건넸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 전 대통령이 요구했다는 혐의를 두고는 "대통령이 그런 지시를 하겠냐"며 부인했다. 자신은 전화로도 그런 요청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도 강조했다.
또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을 거쳐 이 전 대통령에게 특활비 10만 달러가 전해졌다는 부분은 "정부의 대북 접촉 비용으로 제가 직접 줬다"고 했다. 검찰 기소와 달리 뇌물이 아니라는 얘기다.
김희중 전 실장은 검찰 조사 때 이 10만 달러가 이 전 대통령의 해외순방에 쓰였다고 진술했다. 그는 "원 전 원장이 '대통령은 해외순방병'이라면서 돈을 줬다"고 검찰은 밝혔다. 하지만 원 전 원장은 "해외순방에 (돈을) 보낸다는 건 그렇고..."라며 사실상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이 돈을 건넨 시기에 특별한 국가 안보 사항이 없었다는 점을 문제 삼자, 원 전 원장은 횡설수설하다 "(그때는) 2011년"이라고 답했다. 검찰 측이 "언론이 보도한 2010년 개성에서 있던 남북 비밀접촉을 말하는 것이냐"라고 재차 묻자, 원 전 원장은 "저는 모르는 상황"이라며 "제 기억으로만 말씀드린다"라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불만이 있는 듯 웅얼거려 검사의 항의에 따라 재판부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법정에서 두 사람의 주장은 엇갈리기도 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로 친한 원세훈 전 원장과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사이에 특활비 2억 원이 오갔다고 주장한다. 반면 원 전 원장은 법정에서 "김백준과 그런 사이가 아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