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역과 서강대역의 중간쯤, 어느 좁은 오래된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노란 줄무늬의 차양이 반겨주는 디저트 카페 '릴리 우드'가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다. 골목은 신촌의 유명한 터줏대감인 펠트 커피의 본점이 위치한 곳. 펠트 커피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음파 피아노' 간판이 보일 때쯤이면 릴리 우드가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다.
하얀 커튼이 쳐진 창문과 노란 꽃이 피어있는 화분, 나무로 만든 입간판은 깔끔하면서도, 디저트 상점만의 포근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 이중으로 된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생각보다 더 아담한 내부를 만날 수 있는데, 세 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창가의 바 테이블과 사각형의 2인 테이블이 두 개 그리고 오른쪽 벽에 붙은 반원형의 독특한 2인석까지 총 네 테이블 정도가 전부인 공간이다.
하얀 벽에 식물을 걸고 사진을 붙여 포인트를 준 심플한 분위기. 아이보리색 나무 테이블과 밝은 갈색의 나무 의지가 만들어내는 조화는 백합 색을 가진 나무가 있다면 바로 이렇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다.
카운터의 귀여운 손 글씨로 적은 메뉴판에는 간단한 커피와 티 종류, 에이드가 보인다. 에이드와 티의 종류가 적지 않은 것이 나름의 특징. 그리고 메인이 되는 디저트는 케이크류 2종과 스콘 그리고 레몬 위크앤드(파운드케이크와 비슷한 디저트)의 구성이었는데, 디저트는 주기적으로 조금씩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프랑스식 디저트를 파는 카페, 디저트에 들어간 재료 설명을 읽다 보면 스타일이 확 느껴진다. 스콘에 곁들여지는 잼 중 이스파한(장미향 + 산딸기 + 리치가 들어간 피에르 에르메의 조합) 잼을 선택할 수 있는 것도 나에겐 독특했던 요소.
주문을 마치고 자리에 앉으니 새삼 차분한 곳이구나 하는 게 더욱더 실감된다. 조용하게 흐르는 음악, 밝을 때는 켜놓지 않는 조명, 커튼을 쳐서 햇살을 은은하게 가려주는 부분까지, 오롯이 디저트를 즐기며 나만의 휴식을 즐기다 가기에 좋은 공간이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잠시 기다리자, 차와 함께 예쁘게 식용 장미 꽃잎을 올린 하얀 무스케이크인 포그 블랑과 패션후르츠 콤포트와 코코넛 휩 가나슈가 꽃잎 모양을 만들어낸 타르트 데이지를 가져다주신다. 물씬 묻어나는 특유의 감성이 이제 20대 중반이 되셨을까 싶은 앳된 얼굴의 사장님과도 퍽 닮아있는 느낌.
포그 블랑은 꽃잎이 눈길을 사로잡는 로즈 샹티 크림 아래로 프로마쥬 블랑 무스가 동그랗게 자리 잡은 디저트. 반을 갈라 보면 더블베리 콤포트(과일에 설탕을 넣어 조린 잼과 비슷한 것)가 들어가 있고, 바닥은 피스타치오 비스퀴(머랭을 사용한 케이크 시트)로 구성돼 있다.
부드럽고 촉촉 말랑한 무스는 끝에 살짝 새콤한 치즈맛이 나고, 거기에 산딸기류의 상큼한 맛이 주를 이룬다. 크림에선 장미향이 은은하게 올라와 이국적인 매력을 더하고, 살짝 밀도 있고 촉촉한 시트에선 견과류의 고소한 맛이 느껴졌던, 전체적으로 많이 자극적이지 않았던 케이크.
데이지는 가운데 노랗게 패션후르츠 콤포트가 올라가고 그 주변을 코코넛 휩 가나슈(초콜릿이 들어간 크림)가 감싼 디저트. 속에는 레몬커드가 들어가 있고, 해바라기씨 프랄린(캐러멜을 입힌 견과류)도 깔려 고소함을 더해준다.
타르트 쉘은 파트 사브레. 전체적으로 코코넛의 달큰한 맛과 레몬, 패션후르츠의 상큼한 맛이 확 튀어 입맛을 사로잡아주는 타르트였다. 이게 맛이 더 강해서 포그 블랑 다음에 먹기를 추천해주셨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던 느낌. 겉의 사브레는 아주 단단 바삭하고 고소한 버터맛의 쿠키였다.
스콘은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포슬하고 가벼운 식감을 가진 타입. 담백하면서 은은한 고소함이 있는 맛이었다. 거기에 더해지는 이스파한 잼은 장미 특유의 향이 제법 돌고, 달달 상큼한 맛도 있어 가장 쉽게 설명하자면 장미향 딸기잼 같은 맛이라고 해야 하려나? 물론 그보단 훨씬 고급지지만 말이지. 가볍고 단맛 적은 마스카포네 크림까지 더하면 참 잘 어울린다.
곁들이는 음료로는 개인적으로 티를 마시는 선택을 했는데 가게의 분위기와도, 디저트와도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티는 티팟에 나오지 않는 대신 한 잔 더 리필이 가능하니 오래 머물다가 가시는 분들에게 더욱 추천드리고 싶다. 커피의 쓴 맛보다는 티의 맑은 맛이 어울리는 무겁지 않은 디저트들이기도 했었고.
오픈 두 번째 손님으로 들어가 한 참 머물다 나온 릴리 우드. 신촌에 또 가볼만한 웰메이드 디저트 카페가 생겼구나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곳이었다. 화려하게 인테리어나 음식의 모양에만 집중한 가게들이 많이 생겨나는 요즘, 그런 흐름과 조금 다르게 소박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트렌디함을 잃지 않은 공간이라 더욱 반가웠다.
덧붙이는 글 | 아직 가오픈 중이니 http://instagram.com/___lilly.wood를 참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