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차는 누가 준비하지?"
예전에 유행하던 개그 프로그램 대사가 떠오르는 말이다. "그럼 소는 누가 키우지?"와 같은. 옆 부서의 상사는 내 상사에게 와서 K씨가 휴가를 간다며 차를 준비할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차가 도대체 뭐라고. 아무나 준비하면 되는거 아니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회사에서 신입은 나서지 않는게 상책이라는 말이 떠올라서 가만히 있었다. 두 상사는 돌아가면서 차를 준비하자며 대화를 끝냈다. 다음 날, 실제로 차를 준비해 사장님과 전무님에게 가져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K씨가 휴가를 간 3일 내내.
한 번은 다 같이 김밥집에서 밥을 배달시켜 먹고 있는 중이었다. 새로 옮긴 김밥집의 음식이 너무 형편없다고 불평하는 중에 다른 회사 이야기가 나왔다. 다른 회사는 밥은 직접 하고 반찬만 배달시켜서 먹는다고 했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고 우리도 그렇게 해보는게 어떻냐는 말이 나왔다. 나도 적극 찬성했다. 정말 이번 김밥집은 먹을만한 음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정권을 가진 부장은 반대했다.
'여직원'이라는 직책
"밥하는 것도 일이야. K씨가 얼마나 싫어하겠어."
이해가 가지 않았다. K씨가 혼자서 힘들 일이 아니었다. 특히 K씨의 경우에는 회사에서 밥을 잘 먹지 않으니 우리가 할 문제였다. 내가 밥은 돌아가면서 하자고 말하니 다들 꺼려하는 눈빛이었다. 결국, 김밥집에서 계속 시켜먹기로 했다.
회사 내에는 '여직원'이라는 직책이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직원'의 업무 1순위는 사장님과 전무님이 출근하셨을 때 차를 타서 가져가는 일이었다. 때때로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 나가는 길에 출근하는 사장님과 전무님을 보고 발길을 돌려 차를 배달하고 나가는 날도 있었다. 퇴근 전에는 자연스럽게 탕비실로 향했다. 그 곳에는 사람들이 쓰고 난 컵 등이 놓여있었고 이를 설거지하는 것도 '여직원'의 일이었다.
K씨가 경리이기 때문에 그런걸까? K씨의 부서에는 2년 늦게 입사한 남자 직원이 있었다. 두 사람은 똑같은 경리 업무를 맡고 있었다. 오히려 입사한 지 1년도 되지 않는 남자 직원에 비해 K씨는 더 많은 일을 맡아서 처리해야 했다. 경리라서, 막내라서가 아니었다. 여자라는 이유였다. 차를 타주고 설거지를 한다고 조금의 급여라도 더 주는 것도 아니었다. 단순히 타고난 성별로 인해 남들보다 조금 더 일하고 있다.
본래 '돌봄노동'이란 사전적 의미로 '다른 사람에게 의존을 해야 하는 환자나, 노인, 어린이와 같은 사람을 돌보는 모든 활동을 이르는 말'이다. 나는 K씨가 하는 추가 노동이 이 '돌봄노동'과 다를 바 없다고 느꼈다. 여자라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먹을 것을 챙기고, 먹고 난 흔적을 치우는 등의 '돌봄'이 부여된 것이다. 이런 상황을 겪고 있는 것은 K씨만이 아니었다.
돌봄은 여자들의 몫?
"H야 선배님 오셨다 가서 술상무 해드려"
대학교 축제에는 주막이 빠지지 않았다. 특히 학생회를 하면서 매 축제마다 주막을 늦게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주막에서 역할을 나눌 때 음식, 서빙 등은 남녀 가릴 것 없이 골고루 분배가 됐지만 한 가지 역할은 주로 고정되어 있었다. 바로 고학번의 선배들이 왔을 때 술을 함께 마셔주는 일이었다.
여자 선배들, 소위 '싹싹한 성격'(상냥하고 다른 사람을 잘 챙기는 성격일 때 주로 사용한다)이라고 알려진 선배들이 이를 맡았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성인지 교육도 자주 진행했고,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도 활발히 이뤄졌다. 몇 번이고 여성 단체들을 초빙해 강연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신경 쓰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사람들은 술을 잘 마시고 결연하게 자신의 뜻을 밝히는 남자 선배들을 보며 동경했다. 반면, 마찬가지로 술을 잘 마시고 결연하게 자신의 뜻을 밝히는 여자 선배들을 어려워했다. 청소에 잘 참여하진 않지만 뚜렷한 신념을 가진 남자 선배를 보며 멋있다고들 했다. 청소를 잘 참여하지 않는 여자 선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게으름은 낡은 것이었고 타파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같은 지향을 가지고 함께 활동하는 우리들이었지만 누군가는 성별을 이유로 게을러서도 안됐고 남을 더 돌봐야했다. 그 과정에서 상처받는 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으레 별 것 아닌 일로 치부됐다.
'설거지'라는 저항을 시작했다
권력. 사전에는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이라고 나와 있다. 종종 남성들이 가진 권력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말을 보며, 사회초년생인 우리는 아무런 권력을 가진 적이 없다고 반발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엎어지고 깨지는 내가 권력을 갖고 있다는 말은 억울했다. 하지만, 여자 선배들은 정말로 싹싹하고 싶었을까? 매번 먼저 나서서 학생회실을 청소하고 밥을 챙겨먹이고 싶었을까? 그리고 K씨는 남의 차를 타주고 설거지를 하는 일이 즐거울까?
지금도 나는 내가 겪고 있는 일이 아니기에 한 걸음 물러서 말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어쩌면 남자인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갖고 태어난 권력은 아닐까. 오늘 나는 퇴근하기 10분 전 먼저 탕비실로 가 설거지를 했다. 얼마 전부터 해오고 있는 일이다.
어떤 이는 고작 설거지에 권력이라는 말을 붙인다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 권력이라도 내려놓기로 했다. 회사를 뒤집거나 큰 변화를 만들어내지는 못하지만 작은 것. 내 손이 닿는 설거지라도 해보기로 했다. 사소한 것은 사소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덧붙이는 글 | 다음 브런치와 네이버 블로그에 기재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