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충청권 소재 대학의 입학처장 보직을 맡고 있는 어느 한 교수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그는 통화를 하는 서두부터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등교를 하지 않고 온라인 수업을 하다 보니 대학에 등록만 해놓고는 학생들이 실상 학원에 가서 재수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즉, 지방대학 신입생은 수도권대 진입을 위해, 수도권대 신입생은 인서울을 위해, 서울에 위치한 대학의 신입생은 더 나은 상위권 대학으로의 입학을 위해 반수를 불사하는 모양이었다.
한국의 대학 서열화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 및 병폐는 비단 하루·이틀 얘기가 아니다. 특히 이 사회의 과도한 경쟁의 온상이 교육문제에서 비롯되고 있고, 따라서 대학의 서열화를 부셔버리지 않고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경쟁을 줄일 수 없다. 이 점에서 우선 국립대학교의 서열부터 무너뜨릴 것을 강력히 권하고 싶다.
주지하다시피, 대한민국의 최고 명문대학은 서울대학교라는 국립대법인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다수의 우수한 학자들은 서울대학교에 적을 두고 있고, 이로 인해 수능에서 고득점을 받는 학생들은 가장 먼저 서울대학교 진학을 인생의 목표로 설정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국립대학들 간 서열화를 종식시킬 수 있을까?
국립대학 교수 순환제와 지방 분산 이전
생각해볼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으로는, 국립대학들 간 재직하는 교수들을 순환근무 시키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우수한 교원이 서울대에 있어 이것이 우수한 학생을 유인하는 주요 도화선이 되기에, 국립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교수들 간 교류와 (이를테면, 서울대에서 제주대로, 제주대에서 경북대로 순환되는 식의) 순환근무의 활성화만 이루어져도 국립대학들의 서열화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대학 서열화의 파괴가 비단 국립대학에 국한되어져서는 곤란하다.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전술했듯이 대개) 우리나라는 서울에 소재하고 있는 사립대학 밑에 수도권 소재 대학, 그 밑에 지방 사립대학이라는 사립대학들 간 완연한 서열화가 존재하고 있다. 즉, 단순히 '대학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느냐'라는 한 가지 이유에 의해 사립대학의 서열이 고착되어져 있다. 이래서는 건강한 경쟁이 저해될 뿐만 아니라 지방대학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필자는 지방대학이 건전하게 육성되어져야 지방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수직적으로 확연히 고착되어져 있는 대학 간 서열화가 진정 폐지되기를 원한다면, 서울과 수도권에 소재하고 있는 대학들을 지방으로 분산 이전토록 함으로써 대학이 지방 간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하는 초석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그 지방을 대표하는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영국에는 주요 도시마다 대표적인 대학이 존재한다. 이를 테면, 맨체스터의 가장 좋은 대학은 맨체스터 대학교이며, 버밍햄을 대표하는 가장 우수한 대학은 버밍햄 대학교인 식이다. 특히 영국은 런던을 제외하고 전 국토가 비교적 이상적이고 균형 있게 발전되어져 있으며, 이에 대학이 큰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의견에 이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역정을 낼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대학 서열화의 파괴가 곧 우수한 대학을 없애는 것이나 하향평준화 시키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분들은 앞서 언급한 영국의 예에서도 옥스퍼드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이라는 세계적인 대학이 있음을 지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옥스퍼드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은 대한민국과 달리 런던에 소재한 대학이 아니다. 옥스퍼드 대학은 옥스퍼드라는 도시에, 케임브리지 대학은 케임브리지라는 지방도시에 위치한 대학들일 뿐이다.
필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대학들을 하향평준화 시키자는 게 아니며, 특정 지역마다 대표성을 갖는 우수한 대학들을 계획적으로 대폭 육성하자는 목소리를 내고자 함이다. 즉, 예를 들어 서울에는 특수목적을 갖는 소수 일부 대학만을 남겨두고, 부산에는 부산을 상징하는 대학을, 행정도시인 세종시에는 세종시를 대표하는 대학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각 대학들은 자신들 고유의 강점에 특화하여 특정 전문 학문 분야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 더불어 교육부는 각 도시에 소재한 이들 대표 대학들을 우량대학으로 균등하게 육성 지원할 때 그동안 무슨 계급처럼 대학들 사이에 존재해 왔던 대학 간 서열은 사라질 것이다.
명문대학 진학 위한 과도한 경쟁 차단 효과도
무엇보다도 이러한 개혁조치는 피라미드처럼 되어있는 대학서열 중 소위 스카이라고 불리는 명문대학 진학을 위해 초등학교부터 과도한 경쟁에 내몰리는 폐해를 조기에 차단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이 땅에 불필요하고 과도하게 존재해 왔던 경쟁을 상당부분 완화시키는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초기에는 대학이전에 따른 심각한 갈등이 있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대학개혁이 서울 및 수도권 집중화를 어느 정도 억제함과 아울러,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도 간접적으로 촉진시킬 수 있는 부수적인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한편 고졸자가 학력을 미국 유명대학 경영학 석사출신이라고 속여 삼성의 부장급으로 취업했다가 발각되어 사표를 냈다는 웃지 못 할 기사를 몇 년 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 그는 왜 그랬을까? 왜 떳떳하게 고졸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사실을 숨겼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학력을 위조했을까? 아마도 그는 우리나라가 실력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치열한 경쟁 속으로 내몰면서도 실상은 제대로 된 경쟁의 게임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과도한 경쟁을 완화시키고, 경쟁을 하되 공정한 경쟁을, 공정한 게임 룰에 의해, 공정하게 장기적으로 펼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학의 서열화가 사라져야 한다.
대학의 서열화 폐지와 함께 우리는 대학을 가지 않아도 성실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조성해야 한다. 공부에 흥미가 있고, 특정 전공이 적성에 맞는 사람은 대학에 진학해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까지 억지로 대학에 진학시켜서는 곤란하다. 대한민국은 어쩌면 대학교육을 받아야만 사람취급을 받을 수 있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그로 인해 무슨 필수코스처럼 너나 할 것 없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사회적 낭비일 뿐이다.
대학과정을 이수해야 사람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술을 배우고 특정분야의 전문가가 되거나 어렵고 궂은일을 함으로써도 충분히 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무직에 종사했을 때 받는 급여와 기술자가 받는 급여, 그리고 궂은일을 했을 때 받는 급여의 차이가 줄어야만 한다. 아니 오히려 남이 하고자 하지 않는 궂은일을 직업으로 선택했을 때 그에 대한 사회적인 존중과 충분한 보상이 뒤따라야 하며, 그 직업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본 글은 필자가 쓴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건설'이라는 책에서 일부 인용하였음을 밝힌다.
글쓴이 박병일 한국외대 교수는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영국 리즈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영국 브래드포드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 및 기업의 국제화, 그리고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과 관련된 연구에 관심이 많으며, 이와 같은 주제의 논문들을 다수의 국내외 저명저널에 발표하였습니다. 또한 공정한 국가와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제언들을 꾸준히 제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