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경, 날아오르다
애정하는 먹방 프로그램 <맛있는 녀석들>에서 '운동뚱'이라는 단어가 언급되기 시작했다. 뚱뚱한 코미디언들 데리고 운동해서 살 빼는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말았구나.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길 바랐던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이 '근수저' 김민경의 활약으로 날개를 달아버렸다.
김민경의 운동능력은 흡사 20세기 무술영화의 '도장 깨기'를 연상시킨다. 성별과 체중을 떠나 압도적으로 강한 힘, 유연함을 통한 넓은 가동 범위, 몸을 쓸 줄 아는 이해력. 삼박자를 갖춘 운동 천재다. 나도 몰랐던 내 능력을 깨우치고 급속도로 성장하는 히어로물이나 성장영화의 유튜브 판을 보는 것 같다.
심지어 운동을 잘하는 자신을 발견한 이후 개그나 멘트를 던질 때 눈치를 보거나 망설이던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다방면에서 자신감을 얻은 모습은 통쾌함을 넘어서 대리만족까지 느끼게 만든다.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이 아니라 건강하게 더 잘 먹기 위한 운동이라는 프로그램 의도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악플이 가득했던 댓글창은 선플로 바뀌고, '운동=다이어트라는 공식을 깨줘서 고맙다'거나, '운동이 하고 싶어졌다'는 반응들이 터져 나왔다.
코로나19와 함께 운동 휴면기에 접어들었던 나도 김민경이 헬스장에서 무게를 치는 모습을 보면서 오랜만에 운동 욕구가 상승했다. 그러나 곧 현실 세계의 '머글'(평범한 사람)은 걱정되기 시작한다.
나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살이 찐 것과 상관 없이 '좋아서' 운동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 유튜브 세계 '운동뚱'들의 유명세 때문에 나까지 '운동뚱'으로 지칭되고 주변으로부터 더 주목받진 않을까? (정말이지 운동하면서 주목받고 싶지 않단 말이다.)
'괜한 콤플렉스나 기우 아니냐', '요즘은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는데 운동하기 싫어서 핑계 대는 거 아니냐'라고 반응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의외의' 운동 천재 김민경에 대한 온라인상의 긍정적 반응과 현실 세계의 온도 차는 여전히 크다고 본다. 이 뜨거운 반응이 오히려 정반대에 있는 현실을 개탄하는 반대 급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카페에서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옆 테이블에 앉은 정상 체중의 여성들은 한 시간째 '다이어트' 이야기를 나눴다. 전 국민이 체중 감량 스트레스를 받는 대한민국에서 다이어트는 너무 흔한 대화 주제가 아니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봐도 체격이 크고 상대적으로 살이 쪄 보이는 '여성'들이라면 이런 경험이 유독 내 옆에서 너무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는 데 공감할 것이다.
그들의 대화는 '더 빡센 운동'과 '식단 노력' 배틀을 오갔다. '지금은 안 맞는 옷을 입어보고 싶고, 못나 보이기 싫어서 살 빼고 싶다', '헬스장에서 핏(fit) 되게 옷 입은 사람들을 보고 자극받으려고 운동 간다'는 이야기까지 듣고 나서야, 나는 음악을 플레이하는 척 이어폰을 꼈다. 그들의 대화 주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몸을 떠나 다른 일상으로 옮겨간다.
그들이 나를 의식하고 일부러 그런 대화를 나눴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의식 중이든 무의식 중이든, 그들은 날씬하지 않은 상태나 날씬하지 않은 사람들을 비난하는 방법 말고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찾는 방법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사회가 열망하는 '정상 범위'를 벗어난 사람들을 타자화함으로써 자신은 '정상'에 속하고 싶어하는 심리인 걸까.
'어머 저거 봐'... 헬스장에서의 수군거림
이런 일들은 체격이 크거나 살이 찐 사람들(특히 여성)이 운동을 할 때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 166cm 정도의 보통 키지만 뼈대와 골격이 큰 편인 데다 유전적 '선뚱'인 필자는 20대 때부터 체중이 쉽게 100kg을 넘나들었다. '적게 먹고 유산소 운동하기 다이어트'를 반복했지만 요요 또한 반복되던 시절이었다.
지긋지긋했던 요요의 악순환을 끊어준 1등 공신은 운동 중에서도 근력 운동이었다. 필자가 처음 전문가로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을 배웠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의 일이다. 그때만 해도 여성들은 헬스장에서 주로 자전거나 런닝머신 위에서 운동을 했는데, PT(퍼스널 트레이닝)라는 개념이 막 시장에 소개되던 시기(지방 도시 기준)였다.
운 좋게 훌륭한 트레이너 선생님을 만나 근력운동을 시작했다. 남녀 할 것 없이 무게를 들 수 있는 힘만 있으면 '삼대운동(스쿼트, 데드리프트, 벤치프레스)'을 시키는 분이었다. 운동신경이 좋고 유연하다는 (어쩌면 누구에게나 주셨을) 칭찬을 받았고 금방 운동에 재미를 붙일 수 있었다. 문제는 시선, 수군거림, 과도한 관심도 함께 따라붙었다는 것이다.
유산소 운동만 할 때는 따가운 '시선'만 느끼면 됐는데, 근력 운동을 할 때는 달랐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나를 주제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는 게 일상이었다. 꽤 무거운 중량을 치는 날에는 대놓고 내 옆에 와서 대화를 나눴다. '어머, 저거 봐'로 시작해서 '몸 더 커진다'로 끝나는 얘기를 나누는 청중들과 함께해야 했다.
요요의 악순환이 끊겼다는 표현이 오해를 살 것 같아 부연하자면, 10년이 지난 후 30대 중반이 된 내 몸은 여전히 정상체중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확찐자'의 대열에 들어선 관계로 어느 정도 체중 조절을 계획하고는 있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날씬하거나 마르거나 정상 체중인 몸을 열망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요요의 악순환이라는 표현에서 나를 해방시켰다는 말이 더 맞겠다.
'아프지 않고, 생활하는 데 불편하지 않으면서, 내가 보기에 좋은 정도의 몸'이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내 스스로 아프거나 불편하지도 않은데 남들이 봤을 때 좋은 몸이 되기 위해 스트레스 받으면서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짓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자주 다짐한다. 운동은 그냥 그 자체로 나에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자 더 건강하게 먹고 마시게끔 도와주는 조력자일 뿐이다.
운동을 하면서 나는 오히려 '살만 빼기 위한 다이어트'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렇다고 주변 시선이나 수군거림까지 나를 놔준 것은 아니었다. 예전만큼 몸이 크거나 체중이 나가지 않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운동을 할 때 대놓고 오랜 시간 쳐다보거나 한 마디씩 참견하기 위해 접근하는 건 여전했다.
마치 내가 들으라는 듯, 친구들끼리 수군대며 '난 저렇게 근육 커질까 봐 근력운동 하기 싫다'고 말하는 여자 사람들(나에겐 그런 큰 근육이 없다), 어깨에 무게만 올리면 '자기 장미란이야? 대회 나갈 거야?' 하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대회 나갈 만큼 무게 들어본 적도 없다), 볼 때마다 '자기 살 빠졌네' 혹은 '살 빼려면'으로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살 빼려고 하는 운동도 아니지만 체중은 거의 비슷했다)까지. 레퍼토리는 다양하다.
2020년은 '운동뚱'이 아닌 '체육인'
고무적인 것은 매년 쓸데없이 접근하는 참견러들의 시선과 수군거림이 줄어들고 있다는 데 있다. 여전히 고도비만이나 초고도비만 여성이 혼자 근력 운동을 하는 모습을 찾아보기는 힘들지만(작년 내 기준), 변화는 꽤 큰 폭으로 감지되고 있다. 헬스장에서 근력 운동을 하는 여성들의 비율이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바뀐 점이다.
김민경은 잠들어 있던 나의 운동 욕망을 뒤흔들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운동욕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천재적인 운동 능력이 아니었다면 김민경 신드롬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지만, 그가 우리 '머글'들에게 내린 희망의 메시지는 확실하다.
어쩌면 2020년에는 크고 살찐 몸이라고 해서, 혹은 작고 마른 몸이라고 해서, 남들과 운동할 때 주변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는 희망이자 바람 말이다. 단지 몸의 형태뿐 아니라 성별이나 운동 능력에 있어서도 누구든지 서슴없이 운동을 시작하고 자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
이 바람이 '예상'이 아니라 '희망'인 이유는 현실 세계에서 이런 분위기가 쉽게 조성될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꽤 많은 사람들이 살찐 사람들을 향해 살찌는 데는 다 이유(나태함, 식욕 등등등등)가 있다고 힐난하면서, 자신은 굉장한 '노오력'과 '자기관리'를 통해 체중을 유지하는 '부지런하고 더 나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고자 한다.
자신의 존재와 노력을 강조하기 위해 타인을 비난하고 낮추는 행동은 정말이지 유치하고 비겁하다. 나의 몸은 나의 몸이고 너의 몸은 너의 몸일 뿐, 서로 다른 우리들의 몸을 좀 그만 인정하고 놓아주자. 내 몸의 생긴 바는 너의 의견 및 노력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무엇보다 나는 네가 원하는 그런 삶과 몸을 원하지 않는다.
연예인을 향한 시선뿐 아니라 본인 주변에서부터 '다른 몸'을 가진 사람들, '다른 욕망'을 가진 사람들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대할 줄 아는 '마음 공부'가 선행되기를, 누구나 어디에서든지 마음껏 운동하는 '행복한 생활형 체육인'들이 넘쳐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