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거주하는 이곳, 호주는 요즘 제2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75년)으로 지자체나 학교 등에서 기념식이 열리기도 하고 뉴스로 거론되기도 한다. 거의 백만 명의 호주인이 참전했던 전쟁이며, 일본에 의해 북부를 침략 당하고 시드니 하버가 공격 당하면서 처음으로 외국의 위협을 경험했던 전쟁이기 때문이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는 아니지만, 전쟁에 대해 최근 진지하게 생각하게 했던 여정이 있었다. 바로 호찌민 시티에서였다. '전쟁 박물관(War Memorial)'이라는 단어는 그다지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곳은 아니다. 아마도 호찌민을 찾는 많은 관광객이 그렇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전쟁은 호기심보다는 참혹함의 이미지가 앞선다. 그러니 굳이 전쟁 박물관이라는 곳을 여정에 추가해 감정적인 소용돌이를 겪고 싶지는 않았다. 특히나 특히나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들이면 더욱더 그러할 것이다.
2019년 10월의 호찌민은 여전히 습하고 무더웠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는 상황에서 굳이 그랩(Grab,우버와 같은 콜택시 시스템)을 불러 전쟁 박물관에 갈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여느 나라와는 다른 베트남이 가진 전쟁 역사에 대한 특별함이 호기심을 더 자극했던 것은 사실이다. 무려 미국을 승전국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은 나라가 아닌가.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날, 한가함을 전쟁 박물관에서 보내기로 하고 그 날의 여정을 시작했다.
'War Remnants Museum'은 3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이었다. 습하고 뜨끈한 공기를 뚫고 도착한 박물관의 건물은 냉방이 되지 않았다. 곳곳에 선풍기가 있었지만 호찌민의 후덥지근함을 식히기엔 턱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모든 전시물 관람을 끝낼 수 있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많은 사진과 스크랩한 기사들이 있었다. 아마 그 내용이 베트남에서 벌어진 무자비한 학살과 전쟁의 참상만을 알렸다면 모든 것이 예상대로였을 것이다. 아마 감정적으로 체했을 것이며, 역시나 '전쟁 기념관이 그렇지… 전쟁은 비극이야'라고 생각하고 끝났을 것이다.
박물관의 모든 전시물은 '미국이 벌인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이냐'라고 관람객들에게 소리치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전쟁을 반대했으며, 어떠한 이유로 반대를 했고, 그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어떤 활동들을 했으며 같은 뜻의 전 세계인들이 어떻게 연대를 했는지, 그래서 그 영향력이 어떻게 번져나갔는지에 많은 게시물을 할애하고 있었다.
미국 군인들이 전쟁의 참혹함을 겪고 나서 어떻게 대중들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는지에 대한 전시물도 상당수였다. 단순히 미국 내의 반응뿐 아니라 그 영향력이 국경을 넘어 세계로 번져나간 것에 관해서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신선한 접근이었다. 이젠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그 시간을 현재의 관람객으로서, 그 시대의 전쟁을 반대하던 이들에게 공감하게 하는 영리한 접근이었다. 그러나 물론 전쟁 박물관에 걸맞게 감정을 억제할 수 없어서 눈물이 나는 게시물도 있었다.
베트남 전쟁 이후로 미국의 저널리즘은 바뀌었다. 여론을 형성하기 쉬운, 쏟아지는 부정적인 기사 및 사진들로 인해 정부는 베트남 전쟁 이후에 기자들의 전쟁터 출입을 제한하였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일들이 부지기수이다. 인류애를 가진 인간으로서 '전쟁은 너무 참혹하지'라고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 마음으로 공감하기엔 너무나 먼일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호찌민의 전쟁 박물관(War Remnants Museum)은 그 당시 일반 시민들의 시점을 투영하여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왜 이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을 반대했을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