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중환자실 전공의들도 파업에 동참한다고 한다.
문득 해와 구름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릴 때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해와 구름이 지나가는 나그네의 외투를 누가 먼저 벗기나 내기를 했다. 구름은 강한 바람으로 나그네의 외투를 날려버리려 했으나 강한 바람을 만들수록 나그네는 외투를 더 꽁꽁 여몄다. 반면에 해가 강한 빛을 내리쬐자 얼마 지나지 않아 나그네가 더운 날씨에 스스로 외투를 벗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것은 전공의들이 파업을 철회하고 진료 현장으로 와서 예전처럼 다시 일하게끔 하는 것이다. 단순히 전공의들을 처벌해야 하는 거라면 그건 아주 쉽다. 잡아서 가두면 되니까. 근데 그럴수록 우리가 원하는 바와는 점점 더 멀어지고 의료대란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전공의들을 진료 현장에서 일하게 해야 한다.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지만 평안감사 같은 좋은 보직도 아니고 최저시급으로 주당 88시간 일해야 하는 자리인데, 그 자리로 전공의들을 복귀시키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전공의들을 강제로 일하게 만들 방법이 있긴 있을까?
지금 상황을 보면 모두 구름과 같은 작전만 펼치고 있는 것 같다. 전공의들을 욕하고 비난하고 엄중하게 처벌하겠다고 협박해봤자, 그렇게 강한 바람으로 외투를 날리려고 해봤자, 절대 그 외투를 벗길 수 없다. 계속 강한 바람만 불어댔다가는 외투를 벗기기는커녕 강한 바람이 닿을 수조차 없는 동굴로 숨어버릴지 모른다.
환자나 의료진이 아닌, 병원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은 전공의 파업을 보고 괘씸한 마음에 갈 데까지 가보자는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라면 전공의들 보고 남의 생명을 담보로 파업하냐고 욕할 자격이 없다. 그들도 자기 생명이 걸린 일이 아니면서 환자들이 어떤 피해를 보든 말든 속 시원한 사이다 한방을 위해 계속 정부에게 강경 대응을 주문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의료대란 속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나 당장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에게는 인생이 달린 일이고 생명이 걸린 일이다. 어쩜 그렇게 쉽게 갈 데까지 가보자, 파업하는 것들한테 치료 안 받아도 된다, 면허 다 정지시켜라, 이런 말을 가볍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 중환자실엔 의사가 필요하다
지금 상황만 봐도 정부가 강경하게 대응하고 시민단체들이 연달아 비난 성명을 내서 해결될 기미가 보이는가? 의대생이나 전공의 가운데 겁을 먹고 '저희는 처벌이 두려우니까 빠질게요'라고 한 사람이 있었나?
오히려 불난 집에 기름 부은 것처럼 외부의 공격에 더 단단히 뭉치고 더 강한 반발이 일어났다. 하나도 해결된 것은 없고 파업 참여율만 대폭 올라갔다. 오늘부터는 중환자실 전공의들도 파업에 돌입한다고 한다. 그리고 파업을 안 하던 전임의들과 일부 교수들까지 가세했다.
처음부터 보건복지부가 접고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이유는 전공의들의 단체행동 참여율이나 수위가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어떤 집단의 90% 이상이 동의해서 단체행동을 하기까지 이르렀다면 그건 이미 그 집단 내부를 설득하는 강한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단순한 밥그릇 논리일까?
인간은 아주 복잡한 존재다. 우리 스스로를 생각해봐도 돈이 좋긴 좋지만 오로지 100% 돈이 최우선이고 돈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불사할 수 있는 사람인가?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겠으나 세상에 그런 사람이 90% 넘는 집단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의대생이나 전공의들도 마찬가지다. 전공의들의 싸움을 단순히 밥그릇 싸움으로만 치부해서는 문제를 영원히 해결할 수 없다. 본인들은 복잡한 존재이면서 왜 의대생이나 전공의들은 설탕물에 꼬이는 날파리같이 단순한 동물로 취급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뜯어보면 그들의 이익과도 당연히 관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100%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단순한 이유로 집단의 90% 이상에게 동의를 얻고 행동을 끌어낼 수는 없다. 복잡한 문제를 복잡하게 고민하고 복잡하게 해결해야 하는데, 단순하게 해결하려 하니 문제가 커지는 것이다.
지금에야 다들 파업을 한 전공의들을 비난하지만, 계속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끌다가 정말로 코로나 대유행과 겹쳐 의료대란이 일어나고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어 돌이킬 수 없는 사태로 번진다면 정부 역시 대체 뭘 한 거냐는 비판을 받을 것이다. 또한 사태에 대한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못하다.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갈등을 해소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 역시 정부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계속 전공의들을 밥그릇 싸움하는 돈벌레 취급하고, 생명을 볼모로 하냐고 비난해봤자 도돌이표다. 지금 중환자실엔 의사가 필요하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은 구름이 아니라는 걸 기억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