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기, 영국 대영박물관에서는 버추얼 투어를 하고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온라인 전시회를 한다. 한국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온라인 뮤지엄을 열고 있다. 하지만 대형 갤러리에서만 디지털 전시회를 하는 것은 아니다. 대구 두류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클릭 몇 번만으로 노란 배경에 거미줄을 치고 있는 거미와 푸른 코끼리를 만날 수 있다.
도서관의 디지털 원화 전시를 기획한 주인공은 바로 '책숲놀이터'다. 책숲놀이터는 책을 만드는 출판사이자 출판과 관련된 모든 콘텐츠를 다루는 플랫폼이다. 수락산 밑자락, 그림책으로 둘러싸인 오붓한 공간에서 책숲놀이터를 꾸려가는 이들을 만나러 갔다.
-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디지털 원화 전시를 열고 있습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이정욱 : "최근 코로나19로 많은 도서관이 문을 닫으면서 독자가 도서관에 직접 가서 책을 보기 힘들어졌잖아요. 당연히 도서관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전시나 행사도 접하기 힘들어졌고요. 각 도서관마다 비대면 서비스를 고민하는 시점이에요.
책숲놀이터와 도서관이 이런 고민을 함께하면서 온라인으로 콘텐츠를 전달할 수 있는 '디지털 원화 전시'를 먼저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도서관에서 그림책의 원화를 액자에 넣어 전시하던 방식을 웹상에서 그림책의 원화를 볼 수 있는 디지털 전시 형식으로 바꾼 것이지요. 대구 두류도서관에서 8월부터 시범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 책숲놀이터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요?
이정욱 : "책숲놀이터는 출판과 관련된 모든 콘텐츠를 도서관에 전달하는 플랫폼입니다. 주로 도서관에 각종 도서 정보를 전달하고, 작가 강연을 연결하고, 원화 전시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기획하여 제안합니다.
기본적으로는 저희 회원사인 출판사에서 신간 도서가 나올 때마다 책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정리해 도서관에 제공해 드리고 있어요. 지금까지 저희가 모은 도서 데이터베이스가 약 3만 종입니다. 이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한 달에 두 번 도서관에 큐레이션도 해드립니다. 예를 들어 5월이면 '가정의 달'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도서 큐레이션 정보를 제공해 드리지요."
이은영 :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프로젝트로서 강연을 요청하는 기관에 작가들도 연결해 드리고 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원화 전시와 다양한 체험 강연,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양질의 기획 전시도 제안하고 있고요. 작년에는 문학잡지 'Axt'를 작가 중심으로 콘셉트를 잡아 전국 도서관에 순회 전시를 했습니다."
- 어떻게 책숲놀이터를 만들게 되셨나요?
이정욱 : "저는 출판 마케터로 근무하면서 전국의 도서관을 15년 넘게 다녔어요. 도서관을 다니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이 바로 도서 정보의 부족이었죠. 도서관의 사서분들이 끝도 없이 쏟아지는 도서 정보를 모두 섭렵하는 건 현실적으로 힘든 일이니까요. 또 강연이나 원화전시를 위해 일일이 출판사나 작가에게 연락을 취하는 일도 쉽지 않고요. 출판사와 도서관의 플랫폼 역할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꼈고, 책숲놀이터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은영 : "저는 출판 경력 26년으로 책을 만드는 일에 올인하며 살아왔어요. 저 역시 출판 못지 않게 도서 문화의 저변을 확대하는 일이 꼭 필요하고 그 중심에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을 오래 전부터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 대표님께서 콘텐츠를 직접 생산하는 출판이 필요하다고 하셔서 도서 콘텐츠 플랫폼과 출판을 일원화하게 되었고요. 작년부터 공동대표로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콩'이 되고 '점'이 되는 책을 만듭니다
- 책숲놀이터는 도서관과 출판사의 플랫폼 역할을 하면서 직접 책을 만들기도 합니다. 어떤 책을 만드나요?
이은영 : "저희는 도서관 관련 책을 내는 '책숲놀이터', 어린이 책을 내는 '빨간콩', 성인 책을 내는 '도트북', 이렇게 3개의 브랜드로 책을 출간하거나 준비 중입니다. '책숲놀이터'의 첫 책은 전국의 작은도서관 탐방기이자 현실 상황을 짚어 낸 <우리 동네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습니다>입니다.
이정욱 : "'빨간콩'과 '도트북'은 씨앗(콩), 점(도트)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데요, 출판의 기본을 '시작'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를 책에 담아내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아이들이 빨간콩 책으로 삶의 가치를 배우고, 성인들이 도트북의 책으로 새로운 시작을 도모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아요."
- 책을 만드는 출판사로서 책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은영 : "먼저 그림책 이야기를 하면요. 일단 저희가 그림책을 엄청 좋아해요. 완전 '볼매'죠. 어려서부터 아이들이 접하는 그림책은 작은 미술관이기도 하고요. 프랑스에서는 5살에 보았던 작가의 그림책을 할머니가 되어서도 찾아 읽어요. 독자가 작가와 함께 늙어가는 거예요. 그림책은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어요."
이정욱 : "책은 무궁무진하게 활용할 수 있는 소스를 담은 유형물이에요. 오디오북으로, 유튜브 영상으로, 또 연극이나 영화 등 다른 2차 창작물로도 만들어질 수 있어요. 하나의 소스, 즉 하나의 콘텐츠로 여러 상품 유형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원소스 멀티유즈(one-source multi-use)가 가능하다는 거죠. 이렇게 생산된 콘텐츠를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도서관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지요."
출판사가 동네책방을 연 이유
- 책숲놀이터 사무실 옆에 많은 그림책으로 둘러싸인 책방 '브론테살롱'이 있습니다. 이 공간은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요?
이정욱 : "노원구 수락산 밑에 사무실을 얻고 보니, 이 지역에 문화를 향유하거나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더라고요. 마침 사무실 옆에 공간이 하나 더 있어서 동네책방을 열어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지요.
이은영 : "왜 이름이 브론테살롱이냐는 질문을 꽤 받아요. 살롱은 신분과 직위를 막론하고 문인 · 정치인 · 예술가 등이 드나들었던 '사교의 장'이었고 '대화의 장'이었어요. 마찬가지로 지역문화의 거점으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거예요. 또 저희가 브론테 자매의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 붙이게 되었습니다."
- 브론테살롱이 앞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공간으로 남기를 바라시나요?
이은영 : "책방을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을 가던 선생님 한 분이 간판을 보고 들어오셨어요. 알고보니 노원초등학교에서 그림책 모임을 하는 분이었죠. 그날 이후 책방으로 동료 선생님들을 불러 모으시더라고요. 그렇게 거짓말처럼 그림책 모임이 이곳에서 이루어졌어요."
이정욱 : "저희는 이곳이 이 지역의 친근한 커뮤니티 공간이면서 동시에 책의 콘텐츠를 활용한 다양한 기획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좀 욕심을 부리자면 지역 문화 조성의 전진기지가 되고 싶달까요? 지금은 코로나로 잠시 중단되었지만, 정기적인 그림책 모임과 마을 독서동아리 모임 등이 이 공간에서 진행되고 있고요. 앞으로는 작가 강연이나 다양한 잡화들을 판매하는 프리마켓도 열 생각이에요."
인터뷰를 마치고 잠시 브론테살롱 곳곳을 눈에 담았다. 두 분이 직접 설치한 조명과 프로젝터, 갖가지 소품들이 이 공간을 빛내고 있었다. 노원구 수락산 밑자락에는 오늘도 책에 대한 믿음으로 책을 만들고, 알리고,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실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새 어두워진 바깥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