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한 카페가 아니라도 공간은 사람을 닮는다. '더치킨'도 그렇다. 더치킨은 낙성대에 있는 테이크아웃 치킨집이다. 인헌동 삼거리 골목에서 10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켰다.
이곳에 치킨집이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제법 된다. 처음 들어오기가 어렵지, 아는 사람은 여기만 온다. 근처 시장에 5000원짜리 치킨집이 많지만 비교 대상이 아니다. 먹어보면 다르다. 바게트도 아닌데 치킨이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이다.
치킨을 한 입 베어 물면 안이 살로만 꽉 차 있다. 씹으면 치킨이 살결을 따라 부드럽게 찢어지는데 겉껍질은 바삭하고 속살은 촉촉하다. 둘의 조화가 부드럽고 담백하다. 조화는 중요하다. 튀김옷이 너무 딱딱하면 입천장이 까지고, 두꺼우면 느글거리기 때문이다.
이 집 치킨은 먹고 나면 속이 편하다. 살코기로만 꽉꽉 차서 반 마리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가격은 한 마리 1만2000원. 맛 좋고 양 많은데 가격이 말도 안 되니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프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이 가게의 진짜 매력은 주인아주머니다.
내가 아주머니의 매력을 알아차린 순간은, 더치킨에 '스댕볼'을 내밀었을 때다. 치킨 포장 박스를 쓰레기통에 욱여넣느라 스트레스를 받던 나는, 큰맘 먹고 이곳에 스댕볼을 가져갔다. '여기에 치킨을 포장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아주머니가 흔쾌히 받아주셨다. 나는 그만 아주머니의 포용력에 반하고 말았다.
나는 '재밌는 손님'으로 남았고, 그 이후로 치킨을 사며 종종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관련 기사 :
'스댕볼 치킨' 덕분에 제 신념을 지켰습니다).
"사장님은 뭔 사장님이야? 그냥 아줌마라고 불러"
원래는 문구점을 12년 운영하셨다고 한다.
"재밌었어. 내가 워낙 애들을 좋아해. 애들 눈높이 맞춰서 얘기도 해주고, 또 애들이 와서 속상한 것도 얘기하고 그러면 그게 너무 재밌는 거야."
그래서일까?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니"라고 답하신다.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아줌마에게 '사장님' 하고 부를 일은 없을 것 같다.
"난 아줌마가 참 좋아. 왠지 모르게 그냥 그래. 친근감 있고 좋잖아?"
아주머니 말투는 적당히 익은 복숭아 같다. 말이 둥글고 달다. 양념치킨에 파를 얹어달라, 치킨무를 소스로 바꿔 달라고 해도 친절하게 맞춰주시는 아주머니지만, 푹 찔러보면 속이 단단하다.
이 곳에 처음 오는 손님은 전부 비슷한 말을 한다. "시장은 싼데 여기는 왜 비싸요?" 툭 던지는 말에 아주머니는 복숭아씨만큼 단호하게 답한다. "고기가 달라요. 우리는 그 가격에 못 드려요. 거기 거 드세요." 누가 뭐라든 치킨 가격만큼은 타협 대상이 아니다.
"내 양심에 꺼리는 거는 안 하니까"
이 집 프라이드 치킨 한 조각의 모양은 독특하다. 아주머니가 직접 통닭을 자르기 때문이다. 닭 손질은 가게 문 열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이다.
"나 닭 손질하는 거 보여줄게. 내가 하나 보여줄라고 남겨 놨어."
냉장고에서 생닭이 나왔다. 아주머니는 익숙하게 살점을 들어 올렸다.
"이건 순살(용 생닭)이야. 요게 다리 하나야. 이거 봐. 여기 기름 있지? 본사에서 올 적에 이거 푹덕푹덕 짤라서 그냥 오거든? 이거를 내가 다 잘라내."
난생 처음 닭 고관절에 낀 지방을 봤다. 껍질만 기름진 줄 알았는데, 이렇게 구석구석 지방이 붙어있는 줄 몰랐다.
"이게 싫어서 통으로 달라고 그래. 이거를 손질 안 하면 손님이 다 먹는 거거든."
일일이 손을 보면 모양은 좀 투박해도 맛은 기가 막힌다. 저렴한 치킨집 대다수가 후처리된 닭고기를 튀기기만 해서 바로 쓴다. 아주머니는 통닭을 들여와 일일이 상태를 확인하고 손을 본다. 가게 시작했을 때부터 지켜온 원칙이다.
아주머니, 아저씨는 닭 손질 문제로 자주 싸웠다고 했다. 아저씨는 '당신 몸도 아픈데, 가격에 비해 고생을 너무 많이 한다'고 했고, 아주머니는 '굳이 비싸게 받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 집은 오픈 이래로 치킨값에 큰 변화가 없다. 프라이드치킨 한 마리에 7500원을 받았는데 지금은 1만2000원이니, 11년 통틀어 겨우 4500원 올랐다.
그냥 먹어도 맛있는 프라이드 치킨을 양념 소스가 거든다. 양념 소스에는 다진 마늘이 들어가 있다.
"이 (소스) 집은 생 거(마늘)를 넣어. 먹다 보면 씁쓸하니 그런 게 있잖아."
"아, 맞아요! 그게 다진 마늘 맛이었구나."
"응. 그래서 이런 거는 마늘이 숙성이 돼서 나중에 맛있어."
소스집에서 한 마디 했다고 한다. '이 치킨 가격에 우리 소스 쓰시는 게 말이 안 된다'라고. 안 바꾸는 이유는 오로지 손님 때문이다.
"내 입에 맛있는 게 손님 줘야 자신 있게 팔지. 맛없는 걸 맛있다고 팔 수는 없잖아."
"이 집이 맛이 변했네?... 소리는 안 듣고 싶어서"
한창 장사가 잘될 무렵엔 아침 8시에 나와 새벽 1시에 문을 닫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프라이드 치킨 한 마리가 7500원인데 하루 매출이 100만 원을 호가하던 때였다. 닭 120마리를 하루 두 번 손질했다. 쉬는 날도 없이 매일 그렇게 일했다. 그러다 몸이 고장 났다. 당시에는 장사가 잘 되니까 마냥 기분이 좋으셨다고 했다.
"문구점 할 적에는 만질 수도 없는 돈을, 치킨 하면서 통장에다 넣어놓고. 애들 하고 싶은 거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해주고. 대학교 다 보내고. 걱정 안 하고 잘 지냈지."
아주머니가 계속 같은 자리를 지킬 동안, 단골손님들은 하나둘 이사 갔다. 아는 얼굴이 뜸해졌다. 해를 거듭할수록 손님도 조금씩 줄었다. 치킨 배달로 버텼는데, 올해 배달을 맡던 남편에게 큰 사고가 났다. 코로나19까지 겹쳤다.
지금은 오후 2시쯤 열고 밤 11시에 문을 닫는다. 영업시간이 줄어서 하소연을 하실 법도 한데, 아주머니는 "우리 아저씨랑 같이 밤 산책 갈 수 있어서 좋아"라고만 하신다. 손님이 줄어도 닭 손질은 한결같다.
"솔직히 귀찮고 싫어. 근데 한번 해 버릇하면 못 관둬. 이 집이 맛이 변했네? 그럴까봐. 우리가 장사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치킨을 시켜 먹어봤는데 그 집이 맛이 변했더라고. 그러고서 생각한 게 '우리는 치킨집 하면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
(닭 손질이) 일이다 생각 안 하고, 습관적으로. 당연히 하는 걸로 생각하고. (전에 운영하던) 까치문구도 그렇고, 치킨집도 그렇고 재밌어. 음식 해 가지고 남을 맛있게 먹이면 그게 기분이 좋아. 그러니깐 나와서 이렇게 있지. 장사가 안 되두."
아주머니를 근사한 사장님으로 불러드리고 싶었다. 인터뷰가 끝나니 '아줌마'가 적절하다고 느꼈다. 아니, 호칭이 중요하지 않았다. 이곳에 이윤 따지고 대접받기 좋아하는 사장님은 없다. 손님 생각해서 맛도 가격도 지키려고 애쓰시는 아주머니만 계신다.
말랑한 말투로 "어서 와, 뭐로 해줄까?" 반겨주시지만, 치킨에 한해서는 쉽게 휘둘리지 않는 이곳. 세상에서 제일 작은 치킨집이지만, 그 안 구석구석 녹아든 아주머니의 신념은 누구와 크기를 견줄 만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