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민주주의 즉, 지방 정치와 자치 분권의 민주주의를 꿈꾼 지도 벌써 26년이 지났다. 하지만 지방의회에는 풀을 죽이는 농약이라도 뿌려진 걸까. 지방의원이 국회의원의 보좌관 노릇을 하고, 지역 살림을 내팽개친 채 정당 활동에만 힘쓴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에 제5대(2006년~2010년) 해운대구(좌 3,4동, 송정동) 구의원에 재임했던 신상현 전 의원(현 해운대구체육회 사무국장)을 지난 11월 19일에 만나 부산 지방의회의 현실을 다시 한번 짚고 대안을 들어봤다.
-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부산대학교 행정학과에 다니던 학부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꾸준히 가졌다. 잠시 연구소 근무를 하며 직장 생활을 했지만, 정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는 못했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고 부산으로 내려와 당시 해운대구 국회의원들의 보좌관 일을 했다. 그렇게 정치계에 들어와 정당 공천을 받은 후 2006 지방선거에 출마했고 처음이자 마지막 구의원 생활을 시작했다."
- 구의원으로서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하다.
"중앙 행정부와 권력 균형을 맞추며 지역의 살림살이를 챙긴다. 이를 위해 구의회에서 조례를 제정해 주민 편의나 지역 정책을 챙긴다. 그리고 행정 사무감사를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기도 한다. 물론 구민들과 계속 접촉하면서 여러 민원을 해결하는 일도 중요하다."
- 하지만 언급한 구의원 업무들에 집중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들었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업무 간섭이 심하다고 하던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당시 구의원의 현실은 거의 국회의원의 심부름꾼에 가까웠다. 우선 국회의원의 의전에 늘 감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예를 들어 정치 기부금이나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 당시 국회의원들은 지역별 산악회를 조직하고는 했다. 우리 지역구 같은 경우는 산에 가는 데 버스를 15대씩 빌려야 할 만큼 그 인원이 많았다. 말 그대로 국회의원의 지역 표심을 구의원이 늘 관리 해야 하는 것이다. 또 그들의 입맛에 맞춰서 지역의 소소한 민원성 예산까지 편성하는 건 기본이다. 정책 추진에 있어서도 구의원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 특별히 정책 추진을 하면서 안타까웠던 일이 있나.
"LCT 관련 건이다. 나는 꾸준히 해당 부지의 LCT 사업을 반대했다. 그곳에서 누릴 수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은 특정 업체나 거주민의 독점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 대신 모든 시민이 편히 접근할 수 있는, 예를 들어 원래 계획이었던 온천단지 조성 등의 계획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원래 하야리아 군부대 부지였던 부산 시민공원도 시민들의 공간으로 잘 만들어졌지 않나. LCT 부지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내 주장은 당연히 별 효과가 없었다. 당시 국회의원의 압박에 시장이나 구청장 모두 자연스럽게 LCT 추진에 눈을 돌렸다. 평소에도 국회의원과 정당의 말을 들어야 하는 지방의원들이 목소리를 내기는 불가능했다. 당시 70% 이상의 구의원이 나를 포함해 집권 여당이었고 다수가 동조했다."
- 구의원들이 그렇게까지 국회의원의 눈치를 보는 이유는 뭔가?
"공천 때문이다. 사실상 지방선거의 차기 공천권은 지역구 국회의원이 100% 지니고 있다. 앞으로도 정치계에 발을 붙이려면 어쩔 수 없이 그들이 부를 때마다 뛰어나가야 한다. 당시 지방 공천에는 일 잘한다거나 능력 있는 사람들이 뽑히지 않았다. 오히려 똑똑한 지방의원은 나중에 호랑이가 돼서 자기들을 잡아먹는다며 공천에서 제외하는 일도 파다했다. 특히 과거에는 조직 선거 개념이 강했다. 지방선거를 하고 싶어도 상상 이상의 돈이 들어가고,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국회의원이 주관하는 공천 헌금이나 지원이 없으며 사실상 선거판에 뛰어들기는 힘든 현실이었다."
- 그럼 지방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제가 폐지돼야 한다고 보는가?
"당연하다. 정당공천제가 유지되는 이상 이러한 병폐가 완전히 사라지기는 힘들다. 하지만 사실 폐지가 될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중앙정치권이 굳이 자기들한테 불리하도록 법을 건들지는 않는다."
- 또 이러한 상황이 구의원의 전반적인 능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비판도 있더라.
"맞는 말이다. 사실 국회의원에게 잘 보이고 공천받는 일이 최우선이다 보니 실제 정책 공부나 연구를 하는 이들은 드물었다. 자연스럽게 의회 기간에만 출근하고, 고정질의나 정책 발의를 보면 수준이 낮은 사람들도 많았다."
- 언급한 대로 지방의원들의 비상근 체제나 겸업 활동 등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비상근 때문에 일어나는 의원들의 능력 저하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의결하는 날 말고는 서로 얼굴 보기도 힘들다. 그리고 겸업에 대해 말하자면, 과거에는 지방의원 일이 무보수 명예직이었다. 그러면서 지자체의 힘을 키우고 행정부를 더 잘 견제하라는 의도에서 보수제로 변경됐다.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아 보인다."
- 구의원의 의정 수당이 적어 겸업이 어쩔 수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어느 정도 공감한다. 최소 생계를 보장할 만큼의 수당은 되지만 사실 의정활동을 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돈이 꽤 들어간다. 법으로 경조사비나 식사비 등을 규제하지만 지역에서는 여전히 다른 방식으로 축의나 부조 등을 하고 있다. 의정 수당 올려달라는 말이 계속 나오고는 있지만 안 되는 건 역시 의원들 탓도 있다. 일을 제대로 한다는 평가를 받고 의회의 신망이 두터워야 국민도 의정 수당 올리는 데 별 반대를 안 하지 않겠나."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인터뷰를 하면서 돌아보니 참 지금 와서도 말 못 할 부끄러운 일이 구의회에 가득했다. 하지만 희망적인 것은 최근 구의회가 점차 더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역에서 덕망 있거나, 전문적인 연구 활동을 한 사람들이 공천도 더 잘 받아 활동하더라. 인터넷도 발달하고 시민들의 수준도 굉장히 높아지면서 생기는 일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국민분들이 계속해서 지방의회에 관심을 가지고 지방 자치의 본분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