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년(庚子年)에 역병이 돌았다. 누군가는 가족을 잃었고, 누군가는 삶이 무너졌다. 삼십 년 넘게 지켜온 가게 문을 닫은 고용인에게도, 전세 대출을 남겨두고 직장을 잃은 피고용인에게도 2020년은 고통스러운 한 해였다. 남은 사람들은 집 안에서 모진 한 해를 견뎌냈다.
멈춰버린 시대를 탓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의 아버지는 62세의 나이에 회사와의 계약을 1년 연장했고, 과거 취재차 만났던 중소기업 대표는 실패를 딛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5년간 디자이너 생활을 마감하고 약전원 편입에 성공한 지인도 있었다.
우리는 생계를 위해,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미래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야만 했다. 최근 빌보드 핫 100차트 1위에 오른 BTS의 'Life goes on'의 가사처럼 어느 날 세상이 멈췄지만 우리의 삶은 계속되고 있다.
얼마 전 부산에서 만난 택시 기사 박재호(가명)씨는 코로나로 인해 사납금도 내기 어려운 형편이라는 말을 전해줬다. 초기에는 회사에서 사납금을 일부 감면해 주기도 했지만 지금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1차 재난 지원금이 나온 후 한동안 거리에 사람들이 보이는 듯싶었지만, 거리 두기 단계를 상향한 이후에는 하루 수입이 몇 만 원도 안 될 정도로 어려워졌다고 했다. 그러나 기사님은 힘든 상황을 이야기하면서도 손님에게 전하는 새해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손님도 올 한해 힘드셨죠? 내년에는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 인사와 덕담을 나누기를 주저하고 스스로를 궁색한 처지라고 느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 힘든 시간을 견딘 것만으로도 우리는 생존 신고를 하고, 안부를 묻고, 덕담을 나눌 수 있을 자격이 충분하다.
경제지에서 근무했을 때 딱 한 번 인터뷰했던, 국회에 단 1석을 가진 미니 정당에서는 지금도 나에게 (전 회사 메일로) 보도자료를 보내고 잘 지내냐는 안부를 묻는다. "세상을 바꿔보겠다는데 그까짓 게 대수냐" 하는 기백이 느껴질 정도다.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나도 이렇게 글을 쓰고 모두에게 새해 인사를 전한다. 중견 언론인이나 유명 칼럼니스트만이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입이 반 토막 난 택시 기사도, 소수 정당 국회의원실도 그리고 예고 없이 찾아온 재난을 각자의 방식으로 견뎌낸 우리 모두 코로나 시대의 산증인이고, 희망을 전할 수 있는 공동체의 일원이다.
2020년의 마지막 날은 나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을 주변 사람들과 안부를 묻거나,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희망찬 2021년을 기약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올 한 해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