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대안으로 만들어진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지난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20대 국회 시절인 2017년 4월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의 이름으로 최초 발의한 지 4년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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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법제정을 위해 국민동의청원에 10만 명 넘게 서명에 참여했고 정의당(강은미 의원), 더불어민주당(박주민 의원 등), 나아가 국민의힘(임이자 의원)까지 법률안을 발의했다. 국민의 70% 이상이 법률 제정에 동의했다.
하지만 국회 법사위의 법률안 심의과정에서 정부 부처와 경제단체의 주장에 밀려 수정을 거듭한 끝에 법률의 이름마저 바뀌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서 기업이 빠진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변경된 것이다. 공무원 처벌 조항이 삭제되고 산재 사망자 수 비율이 가장 높은 5인 미만 사업장이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전방위적으로 후퇴한 내용으로 만들어졌다.
중대재해를 야기한 기업과 최고경영자, 안전보건에 관한 감독 권한을 가진 공무원에게 엄정한 책임을 묻고자 했던 당초 법안 취지는 크게 후퇴했다(관련 기사:
중대재해법, 공무원·경영책임자·발주처 처벌까지 모두 '후퇴').
더불어민주당의 당대표와 원내대표는 여야합의로 법안을 통과시킨 데 대해 의미를 부여하며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18일 기자회견에서 재벌 문제에서의 중요한 부분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을 언급하면서, 법의 국회 통과로 "중요한 첫발"을 내디뎠으며 우리 사업장의 안전문제도 진일보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그 말처럼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최근 사례와 연계해 이를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고된 죽음... 두 명이 또 죽었지만 처벌받는 이는 없다
이 법이 통과된 바로 다음날(10일)과 그 다음날(11일), 공교롭게도 두 건의 '끼임'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한 사고는 10일 전남여수의 금호화학석유 계열사인 금호티앤엘(KUMHO T&L, 원청)의 하청업체 성호엔지니어링 소속 노동자(33세)가 원청 직원의 지시로 석탄운송설비의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던 중 컨베이어벨트가 갑자기 가동되면서 하반신이 끼여 사망한 사고이고, 다른 사고는 11일 광주 광산구 평동산업단지 내 플라스틱 재생공장인 A업체에서 업체 직원(51세 여성)이 홀로 폐플라스틱을 플라스틱 재생기계에 투하하는 작업을 하던 중 오른쪽 팔이 빨려 들어가 끼인 채 사망한 사고다.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위 두 사고의 경영책임자인 진짜 사장들과 기업을 처벌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결론은 '아니다'이다.
사고가 난 금호티앤엘(원청)과 성호엔지니어링(하청)은 모두 향후 3년 동안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법 공포 후 3년 동안 개인사업자 또는 50인 미만 사업체에 대해서는 법적용을 유예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금호티앤엘은 상시근로자수 43명, 하청업체인 성호엔지니어링은 상시근로자수가 8명인 기계설비 수리업체다. 금호티앤엘은 금호석유화학이 100% 주식을 보유한 대기업 계열사로 자본금 675억 원, 매출액 연 665억 원에 달하는 회사이지만, 상시근로자수가 50명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향후 3년 동안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대한민국 상황은 이렇다.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체 수가 대한민국 전체 사업체 수의 98.8%에 이르고(2018년 말 기준), 바로 이 50인 미만 사업체에서 전체 재해의 76.6%, 전체 사망자수의 61.6%가 발생하고 있다(2019년 기준). 거칠게 환산하면, 사망자 10명 중 6명이 50인 미만 사업체에서 일하다가 숨지고 있는 것이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유예 조항 탓에 3년 동안이나 98.8% 사업체에 대해 이 법을 적용할 수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플라스틱 재생공장 A업체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아예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법 적용 범위에서 5인 미만 사업체, 소상공인 전체, 다중이용업소 중 영업장 바닥 면적 1,000㎡미만 업소(약 302평, 다중이용업소 17만 9256개소 중 97.5% 차지)등을 제외했기 때문이다. A업체는 상시근로자수가 6인 사업장이나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의 '소상공인'이다. 광업·제조업·건설업·운수업의 경우 평균매출액이 연 80억원 이하, 상시근로자수 10명 미만이면 소상공인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5인 미만 사업체는 전체 사업체수 중 79.8%를 차지한다. 이곳에서 재해자의 31.6%, 산재사망자의 24.5%가 발생하여(2019년 기준) 가장 높은 재해 및 사망 비율을 보이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체와 함께 추가로 제외되는 소상공인과 다중이용업소를 포함하면, 산재 사망의 3분의 1가량이 발생하는 사업장들이 정작 법의 적용 범위에서는 제외된 셈이다.
중대재해법의 가장 큰 구멍, '5인 미만 사업장 제외'
가장 많은 재해와 사망자가 발생하는 사업장을 법적용에서 제외한 것은 법의 제정 취지는 물론 법의 실효성과 형평성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은 차별해도 된다는 것인가? 민주당은 대답해야 한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차치하고, 3년 후 개인사업자와 50명 미만 사업장에 법이 적용되는 시점이 도래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인가? 질문을 바꿔보자. 3년 후 금호티앤엘(원청)에서 위와 똑같이 원청 직원의 안전의무위반으로 하청업체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 이 법에 따라 금호티앤엘의 대표이사가 1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처벌되고 법인(금호티앤엘)은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될까?
금호티앤엘은 원청업체로서 자신이 지배·운영·관리 책임이 있는 시설, 장비, 장소에서 일하는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에 대해서도 '안전보건확보 의무'(산업안전보건법상의 안전보건조치의무가 아님에 주의)를 부담하게 된다.
그런데 금호티앤엘 경영책임자가 부담하는 의무란 '안전보건 관계법령에 따른 의무이행'과 같은 '직접의무'가 아니라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로써 '간접의무'이다.
법 문언을 보면, 금호티앤엘의 대표이사가 사업장 관리책임자인 공장장이나 산안법상 안전보건관리책임자에게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을 지시하고 정기적으로 보고를 받는 '관리상의 조치'로 자신의 안전보건확보의무를 충족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있다. 이렇게 되면 안전사고 발생 시 안전보건조치에 관한 직접의무를 부담하는 현장관리자가 처벌받고 관리감독상의 의무만을 지고 있는 기업의 경영책임자는 처벌받지 않는 현재의 체제와 별반 다를 것이 없게 된다.
지금의 중대재해법, 기업 최고경영자가 빠져나갈 '출구'가 있다
법 규정을 선해해 대통령령으로 경영책임자의 관리상 조치를 직접적인 의무로 구체화한다고 하더라도, 경영책임자를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해 책임 주체를 "또는"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해놨다. 즉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안전보건업무담당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자신은 법적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출구를 열어준 셈이다.
왜일까? 앞서 백혜련 법사위 법안소위위원장이 "차관에게 전속 권한을 주고 일을 맡겼는데,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장관도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하는 것처럼 되는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라고 밝힌 바 있다. 백 소위원장의 이 발언에서, 애초 법안 중 "및(and)"이었던 접속사가 "또는(or)"로 바뀐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이는 기업 최고경영자가 안전보건업무담당자에게 전속 권한을 주고 그 업무를 맡기는 형식을 갖추게 되면, 그 책임이 최고경영자가 아닌 '안전보건업무담당자'에게 넘어가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른 사례로 살펴보자.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기 전인 지난 1월 4일,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현대차 본사 중역 방문을 앞두고 하청업체 노동자(50대)가 청소 작업을 서두르는 도중 무인공정으로 작동하던 철스크랩 압축 장비에 가슴이 눌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노조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안전작업허가서 기준에 따라 해당 작업은 A등급 고위험군 작업으로 설비를 반드시 멈춰야 하지만, 이날은 작업을 서두르라는 사측 요구로 설비 가동 중지, 2인 1조 작업 등 안전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이 좀 더 일찍 만들어져 적용되었다면, 현대차와 현대차의 최고경영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 의무는 안전보건의무에 대한 '관리적 조치'라는 간접의무에 그치므로, 이 경우 경영책임자가 청소 독촉에 직접 관여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하는 이상 결국 현장관리자나 산안법상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의 안전의무 위반이 문제 될 뿐이고, 현대차 경영책임자는 법적 책임에서 제외된다.
게다가 중대재해처벌법상 법인의 형사상·민사상 책임은 애초 제안된 법인의 경영책임자·대리인·종업원 등의 의무위반 중에서 대리인·종업원 등 의무위반을 제외한 경영책임자의 위반행위가 있을 때만 물을 수 있도록 한정하고 있다. 이로 인해 현장관리자의 안전의무 위반에 대해서는 '이 법에 의한' 법인의 형사책임과 법인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책임 어느 것도 물을 수 없다.
벌금 하한선 없애버린 중대재해법... 누가 이 법을 무서워할까
설령 경영책임자의 관리적 조치 의무를 광의로 해석하여 위 현대차 사례(원청 중역 방문에 대비해 현장 청소를 서두르다가, 무인장비에 가슴이 눌려 사망한 사고)에서 원청인 현대차의 경영책임자에 대해 문제 삼는다고 가정하더라도, 현대차에서 안전보건이사를 두고 안전보건업무에 대한 전속권한을 부여하는 형식을 갖췄다면 현대차의 최고경영자는 안전보건이사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자신은 법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다.
법인 처벌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법인에 적용될 벌금의 하한형은 삭제되었고 벌금의 상한마저 50억 원으로 고정됐다. 이로써 중대재해처벌법이 현대차에 대해 법의 위하력(억제력)을 보이기는 애당초 불가능해졌다. 법안 심의과정에서 매출액 대비 벌금 조항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2019년 현대차 매출액은 105조 원에 이른다. 이와 비교할 때 50억 원으로 제한된 벌금은, 재벌대기업에 대한 처벌로는 새 발의 피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징벌적 손해배상의 하한(3배 이상)마저 삭제됨으로써, 안전투자비용과의 비교 셈법에서조차 안전투자 유인이 크게 발생하지 않게 됐다. 즉, 기업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벌금액이 그닥 부담스럽지 않거나 안전에 투자하는 비용보다 사고처리비용이 더 싸게 먹힐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한국 사업장에서 이 법안 통과가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자 집권당인 민주당이 원내 과반의석을 가지고 주도한 법안임을 고려할 때, 제정된 법의 내용은 옹색해 보인다. 재해에 대한 예방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위엄(억제력)이 서린 법을 기대했으나, 중대재해법은 결국 과정에서의 소리만 요란했을 뿐 구멍이 숭숭 뚫린 '종이호랑이법'으로 둔갑해 버렸다.
누군가 말했다. 작은 기업들은 법 적용을 피하고자 이제 사업장을 5인 미만 사업체로 쪼갤 것이고, 다양하게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이 법 제정에 전혀 긴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구를 위한 법제정인가, 곰곰이 되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관련 기사]
하종강 "중대재해법, 없다고 봐야... 기업은 전혀 긴장 안할 법" http://omn.kr/1rbgj
용균엄마의 눈물 "중대재해법으로 알았다, 국회가 썩었다" http://omn.kr/1ralb
덧붙이는 글 | 기사를 쓴 권영국씨는 인권변호사로, 구의역 김군 사망재해 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장, 고 김용균 사망사고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간사, 전 정의당 노동본부장 등을 거쳐 현재 해우법률사무소 변호사로 근무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