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실천, 상징학의 변주, <상징학연구소> 탄생
지난 2월 16일 국내 순수 시전문 계간지 <상징학연구소>가 탄생했다. 찬찬히 읽어보니 편집 기획 내용 등이 신선하고 알찼다. 아니 그런데 시잡지 이름이 <상징학연구소>라니. 잡지 제호만 특별한 게 아니다. 발행인을 맡은 오창헌 시인은 '울산고래문학제'등 지역문화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문화예술인이다.
199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변의수 시인은 이번 창간호의 기획편집을 맡았다. 변의수 시인은 현재 경기도 고양시에 거주하고 있지만 고향이 부산이다. 그는 시도 쓰고, 문학평론 활동도 오래 했다. 2015년에는 <융합학문 상징학>Ⅰ․Ⅱ를 출간했다. 이 책은 '상징학'을 독립된 신생학문으로 제시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렇다. 시에 있어서 상징은, 언중유화 화중유시(詩中有畫 畫中有詩) 같은 것이 아닐까.
'상징'의 뜻을 사전적 해석을 그대로 옮겨보면, "상징은 어떤 대상을 가리키며 그 실재를 드러내는 다층적 의미 구조를 지닌다." 이러한 상징에 대한 이해 없이는 좋은 시를 쓰기 어렵다. 시인에게 상징에 대한 이해와 연구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편집인 변의수 시인은 그동안 탐구한 '상징학'을 보다 새로운 관점으로 풀어내어 <상징학연구소>란 잡지를 탄생시켰다. 지난 2월 26일 그와 전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럼,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창간이념은 순수, 열정, 깊이, 융합이다
" …<상징학연구소>는 순수, 열정, 깊이, 융합이라는 창간 이념에 따라 서정, 리얼리즘, 모던, 전통과 실험을 떠나 시문학적 성취가 높은 작품들을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제시해 나갈 것입니다. 아울러 인문, 학술, 예술을 시와 융합해나갈 것입니다.
(중략) 현재의 시문학 잡지들은 명목을 잇기 위한 생존 경영 전략들로, 콘텐츠의 질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 보입니다. 시문학적 성취와 감동은 양이 아닌 질적 요소에 의하고, 시 미학의 깊이와 예술적 아우라는 중요합니다. 시 전문지의 역할은 우리 사회의 문화와 정신을 수렴하고 대표하는 아주 귀하고도 막중한 일입니다. 이 일에는 분명 재정의 문제도 있으겠으나, 그보다는 흔들림 없는 의지에 달려 있겠습니다.…"
문학에 온 생애를 내 맡기고 걸어온 변의수 시인. 시에 관한 것이라면 어디서 활화산 같은 열정이 치솟는 것인지, 거의 1시간 이상의 인터뷰(전화통화)도 양이 차지 않은 듯 끝없이 이야기가 이어졌다. 달리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시전문 순수 잡지를 창간하는 일이, 마치 소신공양과 같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실, 2021년에는 <모던 시>, <문학선>, <시인동네> 같은 참신한 시 전문지들이 이런저런 사유로 줄 폐간했다. 코로나19의 여파까지 겹쳐 더 없이 힘들고 암울한 상황 속에서 파인아트 개념의 순수 시문학 계간지가 태동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변의수 시인이 창간‧등록(고양시)을 하고 기획‧편집을 맡아 깊은 산고 끝에 봄호(1호)가 첫발을 내디뎠다.
시전문지로서의 '순결성'에 남은 생을 걸겠다
" …사실 잡지 표지는 시전문지 성격을 상징하는 만큼 많은 고민 끝에 제작되었습니다. <상징학연구소> 표지를 자세히 보면 삼각뿔의 도상이 있습니다. 4개의 면을 가진 삼각뿔은 '시간이 공간을 여는 최초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밑면의 흰 색은 순수, 빨간 면은 열정, 검정은 깊이, 뒷면의 노란색은 융합입니다. 우리의 융합기획, 공동창작은 아마도 국내 시전문지 계통에서는 최초로 시도한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창간호 '시의 공동창작'은 시인과 시인, 시인과 화가가 협력하여 개인으로선 이룰 수 없는 새로운 작품을 창출했다고 생각합니다. 시는 창작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독자를 위한 것입니다. 시인 1인의 힘으로 제작할 수 없는 보다 좋은 작품을 제작할 수 있다면 공동창작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이) 철저하게 상업성을 배제하고 시전문지의 순결성을 지켜나갈 것입니다. 말처럼 될지 모르겠으나,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혼신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웃음)"
인도 델리에 있는
마하트마 간디 추모공원엔
생전에 그가 죄악시했던
일곱가지 악덕이 돌에 새겨져 있는데
정말 통렬한 성찰이다,
일별하면
철학 없는 정치
도덕 없는 경제
노동 없는 부
인격 없는 교육
인간성 없는 과학
윤리 없는 쾌락
헌신 없는 종교다
간디의 소망대로 위의 일곱가지 죄악이
근절되는 세상이 온다면
이 세상 모두가 얼마나 행복할까
당연하다는 생각에
그가 빼놓았을 나머지 한 가지는
'저항하지 않는 인민'일 것이다
- <상징학연구소> 1호- 송경동 '8대 죄악' 전문
창간호에는 사회적 실천을 주장하는 송경동 시인을 비롯하여 실존적 서정을 노래하는 길상호, 김성규, 박장호, 조인호, 주원익, 김학중, 오주리 시인의 이름이 보인다. 신감각의 사유와 이미지들을 제시하는 신두호, 오성인, 황유원과 같은 다양한 장르의 신예 시인들의 대표작, 신작시, 근작시, 시론을 선보이고 있다.
'시와 인문학의 융합기획 난'에는 박찬국(서울대 철학) 교수와 기획‧편집인의 '카시러 <상징형식의 철학>(1923-9) 완역 기념' 대담이 독자의 눈길을 끈다. 또한 창간호에서 가장 볼거리는 세계적 사진‧미술가인 김아타(Atta Kim)의 작품과 산문이다.
가히 기념비적인 김아타 사진미술가의 2011. ACAW(Asia Contemporary Art Week) Rubin Museum of Art. 자연으로 돌아가는 얼음 부처(The Ice Budda). 그의 작품 한장이 1억을 호가한다는 진가를, 미려한 작가의 글향기에 취해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피의 원재료는 실오라기
바늘로 기운 실이다
촘촘한 줄무늬의 매끄러운 피부
얼음을 녹여 먹는 펭권
구애의 생물학적 형질이 디스플레이 된다
포유류의 편식
폭우가 하늘의 동전을 시식한다
천둥번개가 집게를 문다
아슬아슬
뱉어버린다 나뒹군다
- <사월에 부쳐>일부-김서연&변의수의 '공동창작시' 그리고 그림 이채현
그림자는 연못을 지나 강물을 지나고
마른 풀 위를 거쳐 호숫가에 잠시 머물다
몇 개의 기둥을 휘돌아
나에게로 걸어오고 있다
그림자 속의 바람 냄새
그건 떠도는 구름 속에 가라앉은 나의 망토 자락이었다
나는 또다시
그림자의 시작점에서 그림자의 끝까지 걷는다
그림자의 끝에서 또 시작되는 또 다른 그림자
- <그림자 걷기>-정익진&변의수 '시의 공동창작' 일부
독창적인 기획으로 우리 시문학의 전당이 되고자 한다
변의수 시인을 중심으로 강서연, 강서완, 정익진 시인이 서상환, 이채현 화백의 작품들을 융합하여 제작한 국내외 최초의 실험 형식의 작품들인 '시(詩)의 공동창작', 그리고 전위적 실험 시를 대학 현장에 소개하는 '실험과 현장', 창조적 책읽기의 '환상독서'와 같은 신선하고 독창적인 기획들을 선보이고 있다.
변 편집인은 다시 이렇게 말했다.
"… 요즘 같은 가볍고 빠른, SNS, 이미지 시대에 "깊은 사유를 요하는 밀도 높은 내용의 잡지를 누가 읽겠습니까? 하지만 우리 <상징학연구소>는 시문학의 역사라는 추상의 공간을 위해 발행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문학계 어딘가에 이런 책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과학계의 '네이처', 유럽의 '텔켈' 같은 잡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우리 시문학의 전당 같은 잡지가 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
"저도 감사합니다. 인터뷰 응해 주셔서요. <상징학연구소>의 발전을 빕니다."
시전문지 <상징학연구소> 함께 만든 사람들 |
김아타 사진미술가 서상환화백 이동언 건축학교수 이숭원 평론가: 전문위원
김언 김학중 오주리 이재훈: 편집자문
강서연 김승기 엄재국 최영화 최휘웅:운영위원
변의수 기획편집인
발행인 오창헌
편집R실장 강서완 편집W실장 성향숙 편집 Y실장 정익진
해외컬렉터 박소진 편집기자 정소운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