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팔 티셔츠를 입어도 어딘지 답답하고 습습한 공기가 살갗에 느껴질 때, 알아챈다. 여름이 왔구나.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피서지를 찾아 떠나곤 했다. 나도 나만의 특별한 피서지로 발걸음을 옮겨 보았다.
보통 내가 여행을 떠날 땐 캐리어에 갈아입을 옷과 잠옷, 추위를 대비한 바람막이, 씻기 위한 물품, 화장품, 빗, 드라이기, 혹여나 필요할까 싶어 비상식량, 비상약, 벌레 퇴치제까지 가방에 욱여넣었다.
내 안에 있는 걱정인형의 투 머치한 염려를 덜기 위해 준비한 짐들을 캐리어에 가득 담았다. 불룩해진 캐리어의 배를 꾸욱 눌러 지퍼가 뜯어질 것만 같은 아슬아슬함을 견디고 톱니바퀴를 맞춰 겨우내 입을 다물게 했다.
하지만 나만의 피서지로 갈 때는 에코백 하나에 잠옷과 칫솔만 넣고 훌렁 집을 나서면 된다. 집 밖으로 나와 차에 시동을 걸고 단 15분이면 나의 피서지에 도착한다. 그곳은 한 아파트 단지. 주차를 마치고 엘리베이터 13층을 누른다.
13층 도착과 함께 익숙한 음식 냄새가 엘리베이터의 빈 공간으로 밀려 들어왔다. 많이 보던 물건들이 복도 한 켠에서 나를 반겼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간 현관으로 환하게 웃는 주인장이 등 뒤에 구수하면서도 매콤한 된장찌개 냄새를 업고 나타났다. 나는 주인장과 인사를 나누었다.
"엄마! 잘 지냈어??"
그렇다. 나만의 시크릿 피서지는 친정집이다. 짧은 포옹을 마치고 한창 간을 보던 엄마를 따라 부엌으로 쫓아갔다. 찌개를 끓이면 열기에 집이 더워지기 마련인데 전혀 아니다. 부엌과 거실에 난 창으로 맞바람이 불고 아파트 앞뒤로 있는 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입주 당시 400만 원을 주고 산 AI에어컨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한창 더울 때엔 친정집으로 더위를 식히러 향한다. 더욱이 넉넉한 인심의 주인장은 숙소값 뿐만 아니라 식비도 받지 않는다.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아도 그 곳에 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 머릿속 고민들이 녹아내린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의 시간을 날 수 있다. 더위도 나고 기분전환까지 할 수 있는 맞춤 피서지이다.
걸쭉한 된장찌개를 조심히 떠서 입에 한 입, 밥 한 술, 나를 위해 특별히 만든 마늘쫑 무침까지 한 젓가락 입에 넣으면 어느 세상 신선노름보다도 행복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주인장은 본인의 최애 수박을 야심차게 꺼내온다.
수박의 머리 한가운데를 턱 내리치더니 쫘악 소리를 내며 갈라지고 붉은 속살을 만나게 한다. 냉장보관 돼 있던 수박까지 베어물고 배시시 웃는 나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엄마의 표정까지 보면 나의 여름나기는 완성된다.
조합아파트라 그 집에 들어가기까지 건설사와의 고충이 참 많았는데 입주하고 나니 이만한 집이 없다. 이런 무릉도원이 엄마에게 오기 위해 그 힘든 시절이 있었나보다. 덕분에 나는 무료로 여름을 시원하게 날 수 있는 피서지가 생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