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보전제도 개선 외면은 국회 '직무유기'
국회의원선거와 지방선거 등에 출마했다가 당선무효형(벌금 100만 원 이상)이 확정된 선거사범 5명 중 1명은 선거비용을 반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 반환금액은 올해 1월31일 기준으로 196억 원이 넘는 상황이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6일 선거사범들의 '선거보전금 먹튀'를 방지하고, 선거보전금 환수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을 촉구했다. 강제력을 동원해서라도 미반환 선거보전금의 환수에 나서야 하고, 미반환자들의 명단과 미반환금액·사유를 반드시 공개한다. 선거범죄로 기소나 고발된 경우에는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기탁금 반환과 선거비용 보전을 유예해야 한다.
특히 재산을 은닉했다가 선거보전금 반환 소멸시효가 끝나면 재출마하는 경우도 있다. '혈세'인 선거보전금을 반환하지 않아도 이에 대한 마땅한 처벌규정이 없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선거사범의 선거보전금 미반환자의 공직선거 입후보도 철저히 제한해야 한다.
선거보전금은 당선자 내지 일정 비율 이상의 득표를 한 후보자에 대해서 선거비용의 전액 또는 일부를 보전하는 제도다(득표율 10%이상 15%미만 50%, 15%이상 100% 보전). 공직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 등을 어겨 당선무효형이 확정되면 보전받은 비용 전부를 반환해야 한다. 낙선자도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형을 받으면 보전받은 비용을 반환해야 한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당선무효된 사람 등의 선거보전금 반환 현황(2021년 1월 31일 기준)' 자료에 따르면, 2004년 '완전 선거공영제'를 실시하는 선거법 개정 이후 지난 1월 31일까지 선거보전금 반환대상 선거사범은 총 364명이었고, 이중 77명(21.2%)이 미반환 상태다. 반환대상 금액은 401억 원이고, 2006년 제4회 지방선거부터 누적된 미반환 금액은 196억 원(48.9%)에 이른다.
선관위는 개인정보를 이유로 선거보전금 미반환자 중 징수불가자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현재 비용징수 권한이 없는 선관위는 공직선거법 제265조의2에 의해 선거사범들이 기탁금·보전금 반환고지 후 30일 이내에 납부하지 않으면, 관할 세무서장에게 징수를 위탁하고 있다. 국세징수법 제27조에 따라 국세 5억 원 이상의 소멸시효가 10년, 그 이하는 5년임을 감안 할 때, 100억 원 넘는 '혈세'의 징수가 어려울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내년 지방선거다. 역대 지방선거 선거사범의 선거보전금 반환대상자는 300명으로 전체 364명 중 82.4%를 차지하고 있다. 반환대상 금액도 298억7100만 원으로 전체 74.3%에 이른다. 이중 미반환자는 62명으로 전체 미반환자 77명의 80.5%를 차지하고, 미반환 금액도 154억7700만 원으로 전체 미반환금액 중 78.7%를 차지하고 있다. 2022년 6월 1일에 치러지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얼마나 많은 혈세가 낭비될지 벌써 우려되는 상황이다.
선거비용 보전규정을 강화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요구는 시민사회와 학계는 물론, 중앙선관위에서조차 끊임없이 제기됐다. 그러나 국회만 철저히 제도개선을 외면하고 있다.
21대 국회도 선거보전금 반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검찰청의 '21대 국회의원선거 선거사범 입건 및 처리현황' 자료에 따르면, 당선자 중 149명이 입건되고, 이 중 27명(18.1%)이 기소됐다.
현역 국회의원 기소자들의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이다. 무소속 이상직(전북 전주을) 의원은 당내 경선과정에서 권리당원의 중복투표 유도와 선거거구민에게 전통주·책을 돌리는 등 6가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4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더불어민주당 이규민(경기 안성) 의원은 상대 후보에 대한 허위사실을 선거공보물에 공표한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에서 벌금 300만 원의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 국민의힘 홍석준(대구 달서갑) 의원은 선거운동원으로 등록하지 않은 자원봉사자에게 현금 300여만 원을 지급한 혐의로 1심 법원에서 벌금 7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당선무효형이 확정될 경우, 선거보전금 반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국회가 제도개선에 나서지 않는 것은 결국 자신들의 특권을 내려놓기 싫다는 것이고,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21대 국회에서는 이미 선거사범의 선거보전금 미반환을 방지하기 위해 2건의 개정법률안이 발의돼 있다.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의안번호 3922 / 2020.09.15.)은 기탁금 및 선거보전금 미반환 선거사범의 공직선거 입후보제한 및 인적사항 공개하는 내용의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 류성걸 의원(의안번호 6837 / 2020.12.22)도 기탁금 및 선거보전금 미반환 선거사범의 공직선거 입후보 제한을 내용으로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중앙선관위도 지난 5월28일, 이러한 내용을 포함해 '당선무효 선거보전금 환수 실효성 확보' 방안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선거보전금 미반환자의 입후보 제한에 초점을 맞춘 사후적이고 미온적인 대응으로는 '혈세낭비'를 바로잡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강제력 동원을 통한 환수, 미반환자 명단공개, 선거범죄자 선거비용보전유예 등 선거보전금 환수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강력한 법개정"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