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생후 59일에 국회 나들이를 한 뒤로 무럭무럭 잘 큰다. 어떤 이가 댓글에서 아기가 국회에 와서 '나쁜 기운'을 받으면 어쩌느냐고 했는데, 희한하게 아기는 그 뒤로 한 번에 안 깨고 자는 시간이 길어졌고 울며 뻗대는 시간은 줄었다. 국회에는 의외로 '좋은 기운'이 흐르는 것일까?
국회 회의장 아이동반법이 일으킨 논쟁
국회에 복귀한 후, 육아휴직한 남편에게 아기를 맡기고 출근한다. 물론 여의도에서 퇴근하면 육아 현장으로 출근하는 것이긴 하지만. 많은 여성들은 나와 달리 출산과 함께 '자연스럽게' 직장을 그만둔다. 남성 육아휴직이 늘었다고는 하나 전체 육아휴직자 중 75%는 여성이다(2020년). '일과 가정의 양립'은 불가능하진 않더라도 고도의 스트레스를 대가로 요구한다. 이런 사회적 여건 때문에, 아이를 동반한 나의 출근과 내가 발의한 '국회 회의장 아이동반법'(국회법 일부개정안)이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일부 비판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회의원의 특혜를 요구하는 것이냐', '아이 동반보다 보육시설을 늘리는 것이 우선 아니냐' 같은 비판 말이다. 이 법안은 남녀 의원이 24개월 이하 영아를 불가피하게 직접 돌봐야 할 때, 그런데 국회에서 중요한 안건을 논의해야 하는 경우에 회의장에 영아를 동반할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이다. 영아는 보육시설에 맡기기 쉽지 않고, 보육시설에 맡기더라도 직접 봐야 하는 상황은 종종 생긴다. 국회의원이 아이를 동반해 회의장에 들어가려는 것은 의정활동을 잘하기 위해서다. 특혜 요구가 아니다. 국회 아이 동반과 '안전한 보육시설 확충'은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하는 과제도 아니다. 각각 나름의 필요성이 있다.
그런데 어떤 지적에는 공감한다. 오마이뉴스 박소희 기자는 <
애 데리고 국회 출근?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는 기사( http://omn.kr/1udtu )에서 "아이동반법이 과연 이 땅의 수많은 엄마와 아빠, 아이들의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국회의원이 던진 메시지는 국회를 넘어 사회 전체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소희 기자가 옳게 짚은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부모도 아이도 행복하기 힘든 주요한 이유는 '장시간 노동'이다. 장시간 노동 문화는 "아이가 없는 것처럼 일하기"를 당연하게 만들고, 그럴 수 없는 사람들-주로 여성-을 노동시장 밖으로 내몬다. 이 문제가 해결되려면 노동시간이 줄어야 한다. 노동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아이와 보낼 시간도 함께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국회 아이 동반은 끝이 아니라 시작
이러한 의문에 대해 국회의원의 아이 동반 출근은 충분한 답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어디선가 말한 것처럼 이 법의 통과는 '변화의 시작'을 뜻한다. 이 법은 우리 국회가 여성과 젊은 세대에게 더 민감해지겠다는 것이고, 남녀 같이 돌봄에 참여하는 문화를 국회가 앞서 만들겠다는 뜻이다. 그것은 상징적인 의미에 머물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의회에 아이를 동반하는 나라들은 하나같이 여성의원과 청년의원의 비율이 높다. 스페인에서 2016년에 여성의원이 의회에 아기를 데리고 와서 찬반 논란이 일었다. 그런데 2019년 스페인 하원 선거에서 여성의원이 47%를 차지했다. 뉴질랜드 의회도 회의 중 아이 동반을 허용하는데, 뉴질랜드 의회 여성의원 비중은 40%에 이른다. 유럽의회에 영국 노동당 출신 의원이 아기를 데리고 회의에 들어온 적 있다. 유럽의회는 현재 여성의원이 40%이고 초선의원이 60%다.
반면 이웃나라 일본에선 여성 시의원이 아기를 데리고 회의에 들어가려다가 40분 만에 쫓겨났다. 일본은 여성의원 비중이 10%에 불과하다. 아이 동반이 그나마 논란이나마 되는 한국은 여성의원 비중이 19%다.
아이 동반이 가능해서 여성의 의회 진출이 많은 게 아니라, 여성의 진출이 많으니 아이 동반도 가능하다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면 왜 이 나라들은 여성과 청년이 의회에 많은가?
돌봄 친화적인 사회제도와 돌봄 친화적인 정치문화는 반드시 어느 하나가 먼저가 아니다. 돌봄 친화적 정치문화가 그러한 사회제도를 낳고, 또 그 사회제도가 더 나은 정치문화를 낳는다. 한국 국회가 어린아이에게 열린 공간이 되면 당연히 그 부모인 청년에게도 더 크게 열린다. 청년이 의회에 더 많이 진출할수록 국회는 아이와 부모가 함께 행복해지는 정책을 더 많이 내놓을 것이다. 국회 아이동반법은 국회와 사회를 바꾸는 첫 번째 도미노가 될 수 있다.
일과 가정의 양립, 성평등한 돌봄을 위한 나의 고민
아이동반법 외에 내가 열정을 가장 많이 들이는 의제는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은 일과 가정의 양립을 방해하는 장시간 노동 문화를 바꿀 중요한 열쇠다. 한국은 한쪽에선 장시간 노동으로 사람이 쓰러지고, 다른 쪽에선 실업과 소득 감소로 고통을 겪는다. 어느 쪽이든 아이에게 충분한 돌봄을 제공하지 못하고 성평등한 돌봄 분담도 힘들다.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하는데, 소득 감소의 불안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소득을 보장하면서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다. 기본소득과 연동한 노동시간 단축은 일자리 나누기로 이어져 실업도 줄일 것이다.
성평등한 돌봄을 위해서는 남성 배우자의 돌봄 참여를 늘려야 한다. 배우자의 유급 출산휴가를 확대하는 것이 좋은 방안일 수 있다. 지금 제도에선 출산한 여성 노동자는 90일의 출산휴가(이 가운데 60일은 유급)를 권리로 쓸 수 있지만, 배우자는 유급휴가가 단 10일만 허용된다.
출산 시기부터 남성 배우자가 돌봄에 동참할 수 있다면 이어지는 육아 과정에 동참하게 하는 일도 수월해진다. 관건은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따라서 유급 출산휴가를 지금보다 늘리고, 특히 배우자의 출산휴가를 충분히 늘려야 한다.
아이를 낳고 들어선 새로운 세계
아이를 낳고 세계관이 바뀌었다면 과장이겠지만, 추상적으로 느낀 많은 것들이 구체적인 형태로 삶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맞다. 예를 들어 아이를 동반한 외출은 단지 '힘든 것'이 아니라 밤새 수유 조절을 하고 필요한 용품을 잊지 않기 위해 꼼꼼히 챙기고 이동 시간을 다 계산해야 하는 복잡한 과업이 됐다.
나는 그런 세계에 들어섰고 한동안은 이 세계에 살아야하므로, 이 세계의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짚고 바꿔나가려 한다. 내가 바라는 건 '나'를 부당하게 포기하지 않으면서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는 사회, 여성과 남성이 일도 돌봄도 함께 하는 사회다. 그 사회가 오도록 국회의원으로서 책임을 다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