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27일은 휴전협정 68주년이었다. 휴전은 잠시 전쟁을 멈춘 상태를 의미한다. 국제법상 한반도는 여전히 전쟁 중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지만, 한국전쟁만은 끝이 안 보인다.
휴전협정 서명국은 북한, 중국, 미국 등 3개국이다. 당시 소련은 한국도 포함시킬 것을 제안했지만 제외됐다. 북한은 평화협정을 주장해왔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미국의 눈치만 살핀다. 미국은 요지부동이다.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의 명분이 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한국은 서명국 아닌 당사국으로서 속수무책이다. 벌써 일제 병탄 36년의 갑절 세월을 허송했다.
지난 1월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교한 대북정책을 기대했다. 유감스럽게도 현재까지는 북미간 협상재개가 불투명한 상태다. 미국은 일방적으로 '조건없는 대화'를 제안하면서도 대북제재 행정명령을 1년 더 연장했다. 상대없는 대화가 어디 있는가. 지난 3월 북한 외무성은 '강대강, 선대선' 원칙을, 6월 김정은 총비서는 '대화와 대결'의 대미입장을 천명했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흥미로운 신호'로, 성 김 대북특별대표는 '조건없는 만남'으로 화답했다. 그러나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스스로 위안하는 해몽'이라면서 일축했다. 그리고 지난주엔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이 방한했다. 방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27일 '남북 통신연락선이 재가동됐다'는 남과 북의 발표가 있었다. 의미 있는 진전이다.
북한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 직후에 이미 자국의 입장을 다양한 경로로 밝혔다. 그중 하나가 '비핵·철수·3000억 달러 지원'이다. 이 제안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평화협정 체결 후 주한미군 '철수'하고, 10년간 '3000억' 달러를 북한에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1월 31일 러시아 매체 <이아 레알이스트>의 평양발 기사에 해당 내용이 실렸다. 제목은 '3천억 달러 교환조건으로 비핵화: 북한이 미국에 새로운 거래를 제시'였다. 이 기사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outh China Morning Post)>에 게재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전략연구센터 장용방 선임연구원의 주장을 인용하는 형식이다. 이 기사에 실린 내용은 국내 언론에 인용보도 되진 않았다(해당 기사 보기 : https://realtribune.ru/news-news-5823 ).
물론 이것은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북한 학자의 견해가 평양발 러시아 언론을 통해 나온 것이다. 북한 사회의 속성상 이는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 띄워 본 애드벌룬으로 해석한다.
미국은 진정어린 대화로 북핵 해법을 모색하겠다는 결단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북한의 요구가 터무니없더라도 수용할 수 있다는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 평화협정이 실질적인 평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당장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평화협정은 평화체제의 필요조건일 뿐이고, 당사국간 합의와 공약에 불과하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고 외교협상에 임해야 현실적인 정책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이제 군사력 세계 6위, 경제력 10위의 선진국 반열에 진입했다. 지난 1세기 동안 식민통치, 분단, 전쟁, 가난, 독재 등 온갖 도전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나라다. 동맹국인 미국의 도움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이제는 안보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북한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이다. 한반도에서 낮은 단계의 무력충돌이라도 핵전쟁으로 비화될 개연성이 높다. 항국적인 평화체제가 구축돼야 할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박종수씨는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입니다. 전 주러시아 대한민국 대사관 공사로 근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