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본가의 앞마당이 요즘 온통 꽃밭이다. 엄마야 늘 뭐든 심고 키우는 것에 도가 튼 사람이니 그렇다손 치더라도, 나는 이제껏 일흔을 훌쩍 넘긴 아버지가 그렇게나 꽃을 좋아하는 줄은 미처 몰랐다. 능소화니 인동초니 하는 곱기로 소문난 꽃들을 마당 곳곳에 심어 놓고 달마다 철마다 그것들이 저마다의 순리대로 피고 지는 자태를 감상하고 흐뭇해하시는 모습이 사춘기 소녀가 따로 없다.
그 와중에 더 재미난 것은 시골 사람들의 넉넉한 '꽃인심'이다. 예컨대 어느 집 마당에 핀 어떤 꽃이 곱다 싶어, 주인댁 아주머니를 붙들고 "그거 무슨 꽃이유?" 묻기만 하면 얼마 안 있어 틀림없이 그 댁 아주머니가 꽃씨 담은 비닐봉지를 들고 우리 집 대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그렇게 몇 계절을 보내고 나면, 남의 집 뒤뜰에 피었던 꽈리꽃이 우리 집 뒤뜰에도 소복하니 내려앉고, 우리 집 마당에 피었던 수국은 어느덧 앞집 마당을 환하게 밝힌다. 곱씹을수록 뜨시고 즐거운 광경이다.
나도 꽃을 참 좋아한다. 꽃이 단순히 예쁘고 보기 좋은 것을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전하는 고마움, 미안함, 존경과 격려, 사랑까지, 꽃 한 송이에는 참으로 귀하고 따뜻한 진심이 담겨있다.
그런데 요즘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사는 것이 팍팍하다 보니 아무래도 당장 꽃집을 찾는 발길부터 뚝 끊게 되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입학식이나 졸업식 같은 대규모 학교 행사는 대부분 온라인으로 진행되었고, 요즘은 결혼식마저 인원을 제한하게 되면서 꽃이 귀하고 따뜻한 마음을 담아내던 시절이 언제였나 싶게 까마득하다. 무엇보다 화훼 농가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난생처음 본 고구마꽃
사실 오늘 이렇게 꽃타령을 하게 된 데는 이유가 따로 있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상설 시장이 하나 들어서 있는데, 오늘 볼일을 보러 시장을 가로질러 가던 중 내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장 한가운데 위치한 작은 정육점 앞에, 주인이 내어놓은 여러 개의 꽃화분이 바로 그것이었다. 플라스틱 생수병의 밑부분을 잘라 대강 만들어 놓은 것처럼 보이는 화분들 앞에는 팻말이 하나 놓여있었다.
"고구마꽃 구경하세요. 사진 찍어 가세요."
문득 내가 그간 고구마를 먹기만 잘 먹었지 그 꽃을 본 기억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걸음을 멈추고 난생처음 고구마꽃을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연분홍색의 화사한 꽃잎이 술이 달린 가운데로 향할수록 짙은 보랏빛을 띠고 화관은 깔대기꼴을 한 것이, 흡사 어릴 적 남의 집 담장에서 흔히 보았던 나팔꽃과 쌍둥이처럼 꼭 닮아 있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니 정육점 사장님이 신이 나서 목청을 돋우신다.
"네! 사진 찍어 가세요. 귀한 겁니다."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촬영 버튼을 눌렀다. 정육점에 진열된 고기를 고르고 있던 할머니 한 분이 사장님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
"맞어. 나도 이 나이 먹도록 고구마 꽃은 처음 보네. 아가씨! 사진 많이 찍어 가."
집으로 돌아와서 인터넷으로 고구마꽃을 검색하다가 그 꽃말이 '행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슬며시 웃음이 번진다. 생각해보면 꽃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은 '나눔'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곱고 예쁜 것을 나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보고 싶은 그 마음. 그 다정한 마음이 한 송이 꽃이 되어 세상에 내려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하루다.
혹 지금 그런 다정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 얼굴이 떠오른다면, 오늘은 망설이지 말고 동네 꽃집의 문을 두드려보면 어떨까. 당신이 내민 한 송이 꽃에 언 마음도 사르르 녹아버릴 고운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행운'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