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선발대회를 통과한 최종 선발자를 발표하며 시작하는 그림책 <마음먹기>는 마음이라는 추상관념을 구체적 음식으로 형상화한 책이다. '마음 먹다'라는 관용적 표현을 그림으로 구현해 낸 이 책의 주인공은 '마음'인데 노란 하트 얼굴을 흰색이 감싸고 있는 게 흡사 계란 같다.
'사람들은 나를 가지고 요리조리합니다.'
마음으로 마음을 요리하는 마음 담
인기 절정 메뉴
마음 찜-----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마음 전-----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시도때도 없는 메뉴
마음말이-----마음을 접고 싶을 때
마음만두-----마음만으로 충분할 때
계란으로 요리할 수 있는 다양한 요리에 빗대어 마음담요리가 된 메뉴판을 보면서 오늘 어떤 마음을 먹어볼지 고르는 재미가 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린 듯한 그림은 추상화를 닮아 있다. 볶고 지지고 뒤집고 태우고 끓이는 요리과정에 빗댄 우리들 마음 상태. 요리가 이렇게나 마음과 닮아 있었는지 몰랐다.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세상 사는 맛이 달라진대요. 오늘은 어떤 마음을 먹었나요?'
한바탕 요리를 잘 먹은 것 같은데 책 마지막 부분에 그래서 오늘 어떤 마음을 먹을 거냐고 물으니 당황스럽다. 마음이 우울하고 짜증나서 힘든 줄 알았는데 어떤 마음을 먹을지 내가 고를 수 있다는 사실에 희망이 생기기도 하고 세상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진부한 이야기를 신선하고 재미있게 전하는 책이 메시지를 다시 한 번 음미한다.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 이 책이 나왔다. 마스크 쓰고 외출하는 것조차 두려워 최장 15일간 현관문을 나가지 않고 지내던 때에 만난 책이다.
아이와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루마블을 하고 하루 세 끼를 요리해 먹고 다음 날 같은 패턴이 다시 반복되는 무료함과 불안과 답답함이 극에 달하던 그때 내겐 마음부침(찢어진 마음을 붙이고 싶을 때), 마음 피자(마음을 쫙 펴고 싶을 때), 마음 정식세트(마음이 복잡할 때)가 필요했다.
희한하게 <마음먹기>책은 기쁠 때는 생각나지 않고 힘들고 우울할 때 찾게 된다. '마음, 감정'이란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저절로 생겼다 스스로 사라지는 거기에 어떤 마음에 집착하지 않으면 된다든데 잘 안된다. 그러다 보니 자꾸 스스로 없애고 싶고 그럴 때 <마음먹기> 책을 펼친다. 마음말이 요리를 먹으면 웬지 복잡한 마음을 딱 접을 수 있을 것 같은 위로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성평등한 명절을 바라는 나에게 필요한 요리
올해 설과 지난 해 추석은 코로나로 시가에 가지 않았다. 델타 변이 대유행으로 매일 확진자가 2천명이 넘는 코로나 4단계는 여전하지만 이번 추석에는 안 갈 수 없다. 부모님 모두 백신 2차 접종 후 2주가 지났고, 우리 부부도 2주는 지나지 않았지만 2차 접종을 완료했다. 백신이 아니어도 이제 일상이 된 코로나가 명절을 건너뛰는 방패가 돼주지 않는다. 시가에 가기 전에는 어떤 마음을 먹어야 할까?
시가는 남편의 집이다. 친정은 우리 집이고. 그런데 사위와 며느리 역학관계에 따라 우리 부부의 처지는 상대방의 집에서 다르다. 며느리는 남의 집에 가서 그 집안 사람인 것처럼 집안일을 하지만 사위는 남의 집에 가서 남처럼 손님대접을 받는다. 명절만 되면 극명하게 드러나는 이 차이가 불편하다.
"이번 추석엔 자기가 먼저 설거지 좀 해. 자기 부모님이잖아. 자기 집이고."
"그러면 엄마가 안 좋아할 텐데. 지난 번에 봐."
코로나 상황이 지금과 같지 않았을 때 시부모님이 우리 집에 오셨다. 멀리서 사돈이 왔는데 얼굴이라도 봐야 한다며 친정 엄마도 방문했다. 시부모님, 친정 엄마, 우리 3식구 모두 6명이 모여 저녁을 먹고 상을 치우는데 우리 엄마가 운을 뗐다.
"우리 아들이 설거지 하면 그렇게 보기 싫더라고요. 지금 김 서방이 그릇 나르는 거 보니 사돈 마음이 어떨지 제가 짐작이 돼서요."
내 귀를 의심했다. 맞벌이 부부인 남동생 네 아이들을 봐주고 있는 엄마는 평일 저녁을 동생네서 같이 먹을 때가 많은 데 아들이 설거지나 요리 같은 집안일 하는 걸 볼 때 마음이 불편하단다.
남녀 성별에 따른 차별적 대우를 받고 자란 엄마 세대에선 그렇게 볼 수 있다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하필 왜 시부모님이 계신 지금 이 순간 저 말을 꺼내는 것인가. 본인 마음 속에만 담아 두면 될 것을. 김 서방은 내가 저녁요리를 하는 내내 앉아 있었고 지금 단지 그릇을 식기세척기에 넣고 있을 뿐이었는데. 문제는 다음 상황이었다.
"입장따라 다르게 생각되는 거죠. 저도 애들이 아이 낳고 처음 내려왔을 때 저녁에 애 목욕을 아이 아빠가 시키는거 보고 놀랐어요. 그랬는데 아빠는 하루 종일 아이랑 안 붙어 있으니까 목욕하면서라도 친해지고 좋겠다 생각하고 마음을 돌렸어요."
시어머니는 우리 엄마보다 10살 아래다. 두 분은 같은 세대라 보기 힘들고 평소 시어머니는 60대 젊은 할머니답게 합리적이었다. 명절에 언제 내려 올 건지, 집에 무슨 일이 있는데 어떻게 할 건지 며느리인 내게 묻지 않고 아들에게 전화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당연하지 않게 보통 며느리에게 전화하는데 아들에게 전화하는 깨어있는 어머니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날 어머니의 이야기는 다소 충격이었다. 아이들 목욕은 아빠가, 특히 출산 후 몸이 약해져 있는 산모 대신 아빠가 하는 게 일반 상식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설거지하는 남자를 못 마땅하게 보는 문제와 달리 좀더 놀랐다. 결국 어느 세대건 남녀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은 비슷한 거였다.
이런 일을 겪고 난 뒤라 그런가 이번 명절이 더 답답하다. 마음담 상차림을 보아도 어떤 마음을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마음을 먹는다고 달라질 문제일까? 남녀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이 바뀌기 전까지는 어떤 마음을 먹어도 안 될 것 같다. 우리 부모님들이 자식과 거리두는 마음 먹기, 집안일에 남녀 성차 두지 않는 마음 먹기 할 수 있는 마음 요리는 없을까?
성별평등 송편(자매품-차별금지 송편)
명절노동 동등분배 분자요리
이런 메뉴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명절도 즐거울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