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각으로 2021년 10월 10일 오전 9시,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나는 한국 언론들이 일제히 타전한 뉴스에 소리 없이 눈물만 주르르 흘렸다. 그 기사의 첫문장은 아래와 같다.
7년 전 박근혜 대통령이 이끌고 검찰이 뒤따른 '종북몰이'에 종북은 없었다.
내 이야기다. 내가 그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의 재미동포 아줌마, 신은미다.
허위보도 쏟아내 여론을 만들더니... 박근혜가 반응하자 검찰이 뛰어들다
2015년 1월, 나는 조국에서 내 국적국인 미국으로 강제출국 당했다. 한국에서 열린 초청강연에서 한 발언이 '한국 국내법(국가보안법 제7조 고무 찬양)을 위반하고 탈북자에 대한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단순히 강제로 쫓겨난 것이 아니다. '5년간 입국금지'라는 꼬리표도 따라 붙었다.
검찰은 내가 강연에서 한 발언 중 "대동강맥주가 맛있다" "(2014년 당시) 북한의 휴대전화 가입자 수가 250만을 넘었다" "북녘에 흐르는 강물이 깨끗하다" 등의 발언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며, "일부 탈북자들이 가족이 그리워 북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는 말은 탈북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봤다.
다만, 기소를 유예하는 대신 5년간 입국금지와 함께 강제추방을 한다는 결정이 나왔다. '기소유예'란 쉽게 말해 '죄'는 인정되지만 기소를 하지 않고 '봐준다'는 처분이다.
사건의 발단은 한 매체(TV조선)의 '가짜뉴스'였다. 서울에서의 첫 강연을 마치기가 무섭게 이 매체는 내가 강연 중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했다'는 허위보도를 내보냈다. 이어 다른 매체들은 확인조차 없이, 그대로, 일제히 보도했다. '종북몰이 광풍'이 무자비하게 몰아쳤다. 급기야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씨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북콘서트가 매우 우려스럽다"라고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마치 '수사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
출국금지를 당한 상태에서 네번에 걸친 검·경의 조사를 받은 나는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기소유예처분에 대해 나의 변호인단은 2015년 4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고, 6년 6개월이 지난 2021년 9월 30일 마침내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관 전원일치로 '기소유예처분 취소' 결정을 내렸다.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은 그 결정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수사미진 및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는 자의적인 검찰권의 행사로서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였다.
그러나 이 결정으로 인해 나와 내 주변이 크게 달라진 건 없다. 7년여 세월동안 응어리진 마음의 상처는 이미 돌처럼 굳어 가슴 한가운데 깊이 박혀버렸다. 내게 덧씌워진 '종북'의 굴레 또한 지워질 수 없는 주홍글씨가 돼 앞으로 내 삶을 계속 따라다닐 것이다.
가짜뉴스, 국가보안법 그리고 검찰
이 사건은 내게 세 가지를 생각케 한다. 한국 언론의 가짜뉴스,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국가보안법 그리고 시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검찰.
가짜뉴스를 처벌하는 법이 없어서인지 모르겠으나 지금도 한국 언론에는 가짜뉴스, 허위보도가 횡행한다. 그러나 이로 인해 언론사가 처벌을 받았다거나 가짜뉴스의 피해자가 보상을 받았다는 뉴스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 상태 그대로라면 가짜뉴스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피해자는 계속 나올 것이 분명하다.
국가보안법은 한 마디로 슬픈 코미디에 가깝다. 검·경에서 조사를 받는 동안 나는 이런 어이없는 질문을 받았다.
- 북한주민들이 들고 다니는 전화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어떻게 아는가? 그냥 시늉하는 것은 아닌가?
- 어떻게 북한의 강물이 깨끗할 수 있는가?
- 대동강맥주가 정말 맛있다고 생각하는가?
- 멋을 낸 여성들끼리 맥줏집에서 술 마시는 모습이 사실처럼 믿어지는가?
북한동포들이 갖고 있는 휴대전화 숫자와 북녘 하천의 수질에 대한 팩트 그리고 대동강맥주의 맛을 내 기호에 따라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어떻게 '선진국 한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말인가.
검사는 내게 혐의를 시인하거나 아니면 국가를 혼란스럽게 한 점에 대한 유감표명이라도 하라고 권고했다. 나는 "국가를 혼란스럽게 한 당사자들은 거짓 왜곡 보도를 한 언론들 아니냐. 그러니 오히려 가짜뉴스를 살포한 언론사들이 내게 유감을 표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끝까지 그들의 권고를 거부했다. 그러자 검사는 "미국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이곳에서 조사 받으며 있을 텐가" "내 위에 총장 있고 그 위에 또 있다"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표하기도 했다.
"내 위에 총장 있고 그 위에 또 있다"는 말은 검찰이 진실보다는 '윗분'의 의중을 헤아려 이 모든 일을 진행하고 있다는 뜻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검찰이란 시민을 보호하고 불의를 제단하며 사회정의를 세우는 보루다. 그래서 미국의 형사법 판례문에 원고는 'People(시민)'로 적혀있다. '윗분'의 의중이나 심중을 헤아려 힘 없는 시민을 향해 무소불위의 검찰권을 휘두른다면 이것이야말로 어느 전 검찰총장의 말대로 '그게 깡패지 검사인가'.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접하면서 사랑하는 조국에 정의의 불씨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며 지난 나의 7년을 되돌아 본다.
[관련 기사] 헌법재판소, 7년 전 '박근혜 검찰'의 종북몰이 취소 http://omn.kr/1vho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