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전시 유성구 대정동의 사천 목씨 군선공파 집성촌 마을인 원당리에서 청년 농부들과 함께 종중 땅에 농사 지으며 소작 농부로 사는 여성이다. 나에게는 '마을에서 문제를 일으킨 주범'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져 있다.
2018년 대전 도안대로를 개발하면서 종중 땅에 생긴 보상금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여성을 차별해 여종원에게는 남종원의 50%만 지급하기로 한 종친회의 결정에 반기를 들며 시작되었다. 법정 다툼 끝에 모두 승소했으나 이 주홍글씨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관련 기사:
'여성은 씨받이' '발언권 제한'... 종친회를 고발합니다)
지난 2021년 5월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농사 짓는 종중 땅의 임대차 계약을 연장해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종중의 보복이 시작된 것이다. 이미 농사를 짓고 있는데도 그들은 내가 여자라서 재계약이 불가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현재 내 이름으로 쓰인 계약서가 있는데 안 되냐고 묻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임시로 해준 것이고 이제는 여자라서 재계약은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바로 임대차 계약을 종료시키려 하였으나, 종중의 자경농민 세금 감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남은 기간 내 이름으로 임시로 써줬다'는 것이다.
2018년 종중에 대한 법적 대응을 통해 법원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남녀 차별하여 분배금을 지급하여서는 아니된다'(2018가합102885)는 판결을 받았음에도 종중은 패소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종중에서 아버지와 함께 50여 년 넘게 해온 임대차 계약을 여자라는 이유로 불허하는 등 지난 소송 패소에 대한 앙갚음을 시작한 것이다.
누구도 기뻐하지 못한 승소
문제가 된 소송은 2018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종중에 대전 도안대로 개발 보상금 37억 원이 생겼는데 보상금을 분배하면서 여성은 400만 원, 남성은 800만 원씩 차등 지급하려 했다. 이런 구시대적인 남녀 차별에 반대하여 나를 비롯한 종중의 여성들이 1년여간 법적 대응을 한 끝에 법원에서 여성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하지만 종중은 2019년 3월 정기총회에서 법적 결과에 승복하기는커녕 관습에 따랐을 뿐이라며 차별 지급 이행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판결을 무시하고 관습을 핑계 삼아 형사소송을 당하지 않는 이상 여종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이에 종중의 여성들이 '차등 지급 이행을 위한 강제집행 형사소송'을 추진했고 그제야 종중은 긴급하게 임시총회를 열어 여성에게도 균등하게 지급한다는 결의를 통과시켰다.
그러나 그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임시총회에서 차등 지급한 400만 원을 여성들에게 지급하는 것을 결의하기 전, 남종중원들로부터 종중에 사과할 것을 강요받았다. 종중의 '평화'를 위해 나는 여성 대표로서 물의를 일으켜 종중에 '반기'를 든 것에 대해 먼저 사과해야만 했다. 그저 차별이 아닌 평등을 주장했을 뿐이었는데도 말이다.
당시 한 종중원이 "<오마이뉴스>에 올린 기사를 내리라"고 호통을 치고 "니 어머니가 씨받이냐?", "이 글이 이게 뭐냐?" 등의 모욕적이고 폭력적인 말을 쏟아냈지만 누구도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지난한 법적 승소 결과를 현실에서 이행하기 위한 임시총회였음에도 마치 계획된 시나리오처럼 모든 여성은 죄인이 되었다.
판결의 힘을 빌려 비로소 균등분배의 목표는 달성하였으나, 나를 비롯해 여종원들 누구도 승소를 기뻐하지 못했다. 자축하거나 승소를 입 밖에 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법보다 우선하는 성차별적인 관습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종중에 아무런 교훈을 남기지 못했다. 오히려 관습을 잘 지켜온 종중에 '반기'를 든 여성은 비난받아 마땅한 '죄인'으로 각인되었다.
그런데도 사천 목씨 종중에서 여성이 종원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아주 작은 변화의 시작이다. 종친회 회칙 제4조 '종원은 19세 이상 남성으로 한다'라고 기존에 명시되어 있던 조항이 '종원은 19세 이상의 후예로 한다'로 개정된 것이다. 여성도 이제 발언권뿐 아니라 이사회 임원이 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겼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종중의 이사였으나 딸만 있는 우리 집에서 다시 이사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말이다.
보복...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지난한 법적 대응을 마친 후인 2020년 12월 나는 위암 확정진단을 받았고 종중 회장으로부터 내가 농사 짓는 종중 땅을 내 이름으로 재임대할 수 없다는 통보도 같이 받아야 했다. 종중은 바로 다음 해인 2021년 5월 땅의 임대를 만료시켰다. 왜 재계약이 안 되는지 그에게 묻자 "여자라서 안 된다", "종중에서 여자 이름으로 임대차 계약을 써준 전례가 없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또한 그는 "니가 니무덤을 판 거야. 직권남용으로 또 고소할 꺼자나. 임시회장이라서 권한이 없다"며 "만일 하려면 임시총회와 이사회도 열어야 해서 할 수 없다"고 했다. 아버지가 평생 곡괭이로 종중 밭을 일구어 살았고 후손이 농사 짓고 살고 있는데, 유독 왜 나에게만 임대차 계약을 써주지 못한다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면서 이웃집은 왜 계약을 했는지 묻자 "그집은 이전에 결의하신 아버지가 현재 살아계서서 가능하고 너는 아버지가 없다"고 했다.
이건 명백하게 지난 법적 대응에 대한 종중의 보복이다. 내가 계약 연장을 부탁할 것을 기다렸다는 듯 종중 회장은 "니가 그따구로 했자나"라며 언성을 높여 험한 말을 퍼부었다. 두 차례의 암 수술로 고초를 겪고 임대차 계약 만료 후 농사 지을 땅이 없게 된 나는 농협에서 조합원 강제 탈퇴 명령서를 받았다. 이와 더불어 동사무소 농지원부 재갱신 무효 통지서와 농업경영체 등록 말소 통지서도 함께 받았다.
위암으로 위의 2/3 절제 수술을 받고 6개월이 지나 수술이 잘 되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다시 용기를 내 변호사와 통화를 했다. 종중이 여자라는 이유로 임대차 계약을 안 하더라도 위법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현재 땅에 매실나무가 있으니 여성차별과는 별개로 종중에 과수 소유권과 피해 보상 소송은 할 수 있단다.
종중은 여성차별로 인해 법적 패소를 하였음에도 여전히 여성이라는 이유를 들며 차별을 멈추지 않고 있다. 법적인 승소와 무관하게 나의 일상은 여전히 처참하고 관습에 저항한 여성은 죄인이 되어야 하는 현실이기에, 소송은 이제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도 나는 오는 3월 종친회에 나가 종원으로서 '여성도 농사 지을 수 있다'고 죽음을 무릅쓰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아버지가 농사 지었던 매실나무를 여성 죄인으로서 계속 키우고 싶다'고 머리를 조아리고 굴욕적으로 갈구할 것인가? 아들이 없어 종중 이사 제명이라는 수모를 당하고 돌아가신 아버지 말대로 역사는 순리대로 흐르도록 죽은 듯이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다시 용기를 내 여성의 권리를 찾을 것인가?
내 할머니와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내 자매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미래 세대에 가부장적 사회를 이대로 물려주어야 하는가. 나는 어떤 행동을 선택해야 하는가.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당신들에게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