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사 '
시골 어르신들이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법'이 나가고 나서 사람들이, 특히 도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게 있는 거 같아 짚어주려고 한다. 울 마을 어르신들이 비닐하우스에 사랑방을 차렸다고 하니 농작물 심는 비닐하우스를 상상하셨나보다.
하지만 시골에 살아보면 다른 용도의 비닐하우스 하나쯤은 집집마다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바로 다용도 비닐하우스다. 여기는 농작물을 키우는 곳이 아니라 고추, 깨, 마늘 등 농작물을 말리는 곳이다. 심지어 겨울엔 빨래를 널기도 한다. 이런 용도의 비닐하우스가 있다는 걸 알아야 비로소 시골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우리 마을 어르신들이 코로나로 인해 마을경로당이 폐쇄되자,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여 만들어졌다는 마을사랑방은 바로 이런 비닐하우스다. 그러니까 그 비닐하우스는 농작물이 심겨져 있지 않으니, 겨울엔 텅텅 비어 있다. 바로 거기에 우리 마을 어르신들이 '마을사랑방'을 차리신 거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아내와 나는 하나의 미션을 수행하고자 했다. 아내가 내게 말했다.
"자기야, 지금 마을 어르신들 계신지 알아보고 와."
"알았어."
염탐하다가 말을 걸어오시면 머쓱하니까, 007작전 수행하듯 몰래 비닐하우스 쪽으로 다가갔다. 투명한 비닐하우스 안엔 아무도 없는 듯 보였다.
'그럼 언제 오시지?'
그래도 미션을 수행해야겠기에, 살금살금 하우스 쪽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갔더니, 왕고엄니(울 마을 최고령자 어르신에게 붙여진 별명, 하우스를 공유하는 하우스의 주인)가 갑자기 내 등에 대고 말씀하셨다.
"지금 뭐하는 겨?"
"아이고 깜짝이야."
진짜 식겁했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정말 죄 짓다가 들킨 사람처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엄니. 저 있잖아요?"
"뭔일 있는 겨?"
"사실은 아내가 감자전을 해서 마을하우스에 갖다드리려고 마을어르신들이 계신지 보고 오라고 해서 그만."
"아. 난 또 뭐라고. 2시는 넘어야 와. 아직 멀었어."
"그렇군요."
부리나케 아내에게 복귀해서 작전시간을 알렸다. 작전 시간은 오후 2시 이후다. 2시 2분쯤 되어 다시 갔더니, 아직 한 분 정도만 와계셨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조금 있으니 한 분 두 분 모이시기 시작한다.
다시 본대로 복귀해서 아내에게 보고했다. 어르신들이 하나둘 모이신다고. 아내는 벌써 감자전을 굽고 있었다. 2시쯤 모인다는 사전보고에 충실한 아내였다. 드디어 감자전을 다 구웠다. 감자전을 들고 하우스로 향했다. 하우스로 가까이 가니 5명 정도가 모여 계셨다.
"아부지, 엄니들. 감자전 좀 가져왔어요."
사실은 하우스가 투명하니까 안을 들여다 볼 수도 있지만, 바깥도 잘 보이는지라 마을어르신들이 내가 오는 걸 보고 이미 수군거리고 계셨다.
"뭘 가져오나 벼"
"아녀. 그냥 오는 겨."
"손에 뭘 들고 오자녀"
"그게 보인단 말이여. 젊네 젊어. 하하하하"
이렇게 '감자전 갖다드리기 미션'을 완수했다. 잘 드시라고 인사드리고 나오려다가, 갑자기 한 가지가 궁금해졌다.
"아부지, 엄니들. 하우스 출근시간은 2시 좀 넘어서 인데, 퇴근 시간은 언제래유?"
"아, 그걸 자네가 알아서 뭐하려고?"
"그냥 궁금해서요."
"그거야. 4시 좀 넘으면 슬슬 일어서지."
드디어 마을하우스 출퇴근 시간을 알아냈다. 오후 2시 넘어 출근해서 오후 4시 넘으면 퇴근하신다. 이렇게 여쭤보기 전엔 사실 거의 하루 종일 계시는 줄 알았다. 왜냐하면 무심히 지켜보던 아내와 나는, 지나갈 때마다 모여 계시는 걸로 착각했으니까.
왜, 그 시간이 출퇴근 시간일까 생각해봤다. 겨울 아침부터 모이기엔 날씨가 살살하다. 일단 집에서 점심까지는 챙겨 드시고 출근하신다. 모여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4시 넘어서 퇴근하신다.
그러고 보니 겨울 하루 중 가장 따스한 시간대에 출퇴근을 하시는 셈이다. 코로나로 인해 마을경로당이 폐쇄되자 마을하우스에 모이더니, 그 모이는 시간도 겨울 하루 중 가장 따스한 시간을 택하신다. 도대체 이분들의 삶의 지혜의 끝은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