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예측할 수 없어 아름답다'고 했던가. 대학에 진학하며 고향을 뒤로 하고 10여년 동안 도시에서 생활해온 강수일(36)·김예슬(34) 부부는 '농업'을 택해 예산으로 돌아왔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길이었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 행복하다.
"직장을 다니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건강마저 나빠졌어요. 그때와 비교하면 정말 좋아요. 일하는 시간을 일정에 맞게 조절할 수도 있고요. 더운 날 새벽에 일하고 한낮에는 쉬는 거죠. 도시에서 살 때는 한 달 200만 원도 부족했지만 지금은 100만 원이면 살 수 있어요. 귀농한 걸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요. 오히려 '왜 내가 농대에 가지 않았을까' 후회돼요."
어여쁜 딸 소이를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혹시모를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22일 비대면으로 만난 예슬씨가 수화기 너머로 밝게 웃었다.
두 사람은 삽교중학교 선후배로 맺은 인연이다. 대학 졸업 뒤 예슬씨는 항공사 승무원, 수일씨는 대기업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다 과감히 퇴사하고 2년여 동안 전세계 30개국을 여행했다. 휘황찬란한 도심보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머무는 게 더 좋았단다.
부부는 서울로 돌아와 예슬씨 아버지인 삽다리더덕 김일영 대표가 생산한 더덕의 온라인판매를 맡게 됐고, '도시에 살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에 2020년 7월 고향 삽교로 와 1년 동안 아버지와 함께 일하며 더덕 공부에 매진했다.
올해 완공한 3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는 추석 즈음에 수확하는 1년근더덕을 심었고, 옆 동은 준비를 마치는대로 새싹 더덕을 수경재배할 계획이다.
22일 만난 수일씨는 "여행을 다닐 때 사람이 많은 것보다 조용한 곳에서 보내니까 좋았어요. 그때 시골에서 살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죠. 더덕을 인터넷으로 팔며 농사일에도 매력을 느꼈고요. 그래서 귀농을 결심하게 된 거예요. 장인어른이 42년째 더덕을 재배하고 있어 시작하는 데 부담이 덜하기도 했어요. 답답할 때도 있지만 농촌이 저희와 잘 맞는 것 같아요. 회사를 다닐 땐 스트레스에 매일같이 술을 마셨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요"라며 삶에 찾아온 긍정적인 변화를 전했다.
부부는 젊은 감각을 살려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는 데 열정을 쏟고 있다. '더덕포'는 더덕이 '산에서 나는 고기'라는 말에 착안해 육포와 쥐포를 대신할 수 있는 건강간식으로 만든 것이다. 채식을 하는 사람 등도 먹을 수 있다. '더덕밀크'는 흰 즙을 활용한 식물성 대체우유다.
산모들이 더덕즙을 먹으면 모유가 잘 나온다고 해 예로부터 '양유근(양젖)'이라고 불렸다는 이야기에 연구에 착수했다. 고소하면서도 더덕향이 풍긴다고 한다. 임산부 혈액순환을 돕고 붓기를 빼주기 위한 '호박더덕즙'과 잎에 많은 영양분을 함유하고 있는 '새싹더덕페스토(허브 등을 빻아 만든 양념)' 등도 개발했다.
더 많이 배우고 싶은 마음에 최근 한국농수산대학 특용작물학과에 진학한 예슬씨는 농업을 향한 남다른 애정과 소신을 드러냈다.
"직접 농사를 지어보니 농부들이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데도 그만한 대우를 못 받고 있어 안타까워요. 학교에서는 '쌀 한 톨을 먹을 때도 농민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자'고 배웠지만 정작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도매시장 등으로 가는 농산물은 제값을 받지 못해 생산비조차 건지기 어려워요. 이런 상황이니 농사를 짓겠다는 사람이 줄어들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재배한 더덕을 온라인직거래해 더 나은 값을 받을 수 있게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거예요. 고객들한테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여 생산했는지를 잘 전달하면 이해하시더라고요"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아버지 덕에 상대적으로 시행착오는 적었지만, 안정적인 소득을 얻기 위한 판로 확보는 과제다.
수일씨는 "보통 더덕은 추석과 설명절에 선물용으로 많이 나가요. 아직은 기반이 잡혀있지 않다보니 꾸준한 수입이 있진 않아요. 원물과 가공품 생산·판매가 자리를 잡으려면 재배만 할 게 아니라 브랜드를 탄탄히 갖춰야겠다고 생각해요. 한 번에 대박이 나는 건 없으니까요"라며 "농업에 대한 소비자 인식개선도 필요해요. 누가 찾아주지 않은 농산물은 그냥 버려져요. 좋은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장이 사라지면 우리 삶도 어려워진다는 인식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물론 한 순간에 되진 않겠죠. 조금씩이라도 바뀔 수 있길 바라요"라고 씩씩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부가 고집하는 것은 '친환경'이다. 농약을 많이 쓰면 당장은 잘 자라지만, 작물을 키워내는 땅과 지구환경에는 안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란다. 땅을 건강하게 해주면 농산물도 건강하게 자랄 것이라는 믿음으로 도전하고 있다.
단란하게 평화로운 나날을 그려가는 부부를 보니 '행복은 멀리있지 않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세 식구가 차곡차곡 쌓아갈 하루하루는 또 어떤 이야기를 담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