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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어렸을 적 뽀로로는 대단한 생활 도우미였다. TV 속 뽀로로는 아이들의 시선과 영혼을 사로잡아 그 앞에서 꼼짝 못하도록 붙잡아 두었다. 그동안 나는 마음 편히 보글보글 찌개를 끓이고, 뜨거운 물로 샤워하며 육아의 피로를 씻어냈다.

아이들이 고등학생으로 훌쩍 커버린 지금, 나의 뽀로로는 배달앱과 밀키트다. 학교 급식의 고마움을 뼈저리게 실감한 지난 2년. 끊임없이 돌아오는 끼니는 시지프스의 돌처럼 무거웠다. 그 쳇바퀴 속에서 배달앱과 밀키트는 내 숨통을 트이게 하는 탈출구였다.

반갑던 배달앱 지고
 
 결제의 순간, 숨이 멎을 뻔했다. 배달료 오천 원!
결제의 순간, 숨이 멎을 뻔했다. 배달료 오천 원! ⓒ 최은경
 
옛날 떡볶이가 생각나면 종종 들르는 분식집이 있다. 플라스틱 대접에 비닐을 씌워 대충 담아낸 통통한 떡볶이의 맛은 묵은 피로를 잊게 할 정도. 허나 코로나로 몇 년째 외식이 쉽지 않다 보니 그 떡볶이를 먹은 지도 한참 되었는데 배달앱에서 바로 그 집을 발견한 거다.

'배달앱에 언제 입점한 거지? 나만 몰랐던 거야?' 반가운 마음에 가게에서 메뉴를 고르듯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담았다. 사천 원짜리 떡볶이를 먹기 위해 최소 주문을 맞추느라 두 배 이상 금액의 사이드 메뉴를 기꺼이 담았다. 걸쭉하고도 맵싸한 떡볶이 국물이 이미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이내 입안에 몽글몽글 맺히는 침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드디어 결제의 순간, 숨이 멎을 뻔했다. 배달료 오천 원! 흥분했던 탓인지 이전 메뉴 화면에서 배달료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나 보다. 꽤 오래 고민했다. 그리고 결국 그 오천 원은 최종 결제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저녁 무렵이면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은 주민 반, 배달라이더 반이다. 심지어 자주 오는 라이더와는 눈인사도 주고받는다. 초를 다투며 움직이는 그분들을 위해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누르고 기다려주는 주민들도 왕왕 있다.

배달은 평화다. 한 끼를 장만하는 수고로움을 덜어주고 아이들에게 원하는 메뉴를 즉각 대령하면 그날 저녁은 평화롭다. 따끈따끈한 음식을 건네주는 배달라이더가 친정엄마만큼 반갑다.

하지만 고마운 마음도 돈 앞에서는 쪼그라든다. 사천 원짜리 떡볶이와 배달료 오천 원의 골은 깊고도 넓다. 아들이 좋아하는 삼천 원짜리 도넛을 먹으려면 그보다 오백 원 더 비싼 배달료를 내야 한다. 선뜻 주문하기 어렵게 되어 버렸다.

신선한 밀키트가 왔다
 
 밀키트를 이용해서 만든 차돌쌀국수
밀키트를 이용해서 만든 차돌쌀국수 ⓒ 성태영
 
식재료를 직접 눈으로 보고 사고 깨끗이 손질해서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늘 최선이다. 그런데 먹는 것에 진심인 나에게조차 하루 한 끼 그 이상은 힘겨운 노동이다.

아이들의 정상 등교가 이벤트 같았던 코로나 시대에 밀키트는 단비처럼 반가운 존재였다. 포장되어 온 재료를 볶아내고 끓이면서 내 손으로 정성스레 준비했다는 만족감을 느끼게 했고, 다양한 메뉴는 식탁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밀키트 시장은 급성장했다. 유로모니터는 2020년 2천억 원에 미치지 못하던 국내 밀키트 시장 규모가 2025년에는 7천억 원대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했다. 식품회사뿐 아니라 마트, 백화점, 편의점까지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무인 밀키트 전문점도 생겨나고 있는데 무려 150종의 식품을 구비하고 있다. 속초 코다리 냉면부터 제주 흑돼지 두루치기까지 전국 맛집의 메뉴를 내 손으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밀키트의 가장 큰 장점은 신선함이다. 이미 조리된 음식이 아니라 깨끗이 손질된 싱싱한 재료를 조리법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30분 이내에 내 식탁에 올려놓을 수 있다. 초창기에는 채소마저도 냉동되어 모양도 식감도 떨어져 한 번의 시도로 끝난 메뉴가 많았다. 그런데 요즈음은 최상의 선도를 유지하면서 동네 마트에서 보기 힘든 향신채까지 정성스레 포장되어 있다.
 
 빠네 파스타쯤이야. 이것도 밀키트로 해결.
빠네 파스타쯤이야. 이것도 밀키트로 해결. ⓒ 성태영
 
 중식당 분위기도 낼 수 있지, 밀키트라면.
중식당 분위기도 낼 수 있지, 밀키트라면. ⓒ 성태영
 
매주 금요일 아침이면 문 앞에 밀키트가 배달된다. 나의 리추얼(Ritual)로 자리 잡았다. 두 개의 밀키트를 주문하면 세 끼를 해결할 수 있어 주말을 편히 날 수 있다.

토마토 비프 스튜는 집에 있는 파스타 면을 삶아 넣으면 든든한 메인 메뉴가 된다. 우삼겹 쭈꾸미가 오면 먹고 난 다음 날 남은 양념에(밀키트는 대부분 양념이 넉넉하고 간이 세다) 자투리 채소를 다져서 볶음밥을 만든다. 샤브샤브를 먹은 다음 날 아침은 어김없이 육수에 달걀 하나를 휘휘 풀어 죽을 끓인다.

밀키트는 주문과 동시에 주말 식단이 정해지니 뜻밖의 계획적인 생활을 하게 했다. 뭘 먹을까 고민하며 습관처럼 열었던 배달앱을 확실히 덜 찾게 되었다. 물론 가슴 떨리는 배달료의 부담도 큰 몫을 했지만. 아줌마 네트워크서 괜찮은 밀키트 추천과 각자의 꿀팁은 유용한 정보다.

밀키트를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은 있어도 한 번만 사본 이는 없을 것이다. 그 퀄리티와 가성비에 입문과 동시 마니아행이라고 감히 장담한다. 화려한 식탁 앞에 나만 음식 냄새에 절고 초췌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어색한 풍경은 이제 드문 일이 되었다. 나의 훌륭한 가사 도우미 밀키트, 너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한다.

#밀키트#배달료#배달앱#가사도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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