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지구촌을 점령한 지 3년째다. 확산 속도가 매우 빠른 전염병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공공의료의 필요성을 재확인하고 있다. 수많은 병원들이 밀집돼 있는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일일 천만명의 확진자가 발생하자 우왕좌왕했다. 눈앞에서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세계적으로 자랑하던 K-방역의 실체는 무엇이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염병의 공포 속에서 민간의료가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공공의료 체계의 확대와 강화를 외치고자 한다. 지금이야말로 공공의료 확대와 강화를 말할 때고, 천재일우(千載一遇)를 만난 것이다.
공공의료 확대와 강화 운동은 의료 공급자인 보건의료노동자들과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절대적으로 공공병원 병상의 수가 부족한 대한민국의 의료현실에서 공공병상의 확대와 공공의료공급체계를 개편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그러나, 구체화되거나 실현된 것은 거의 없었다. 추상적인 구호만 난무했다. 의료기관 운영자와 의료기관 이용자인 국민들이 문제를 해결 하기엔 의료체계의 벽이 너무 높았다.
1998년에 출시되어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스타크래프트'라는 PC게임이 있다. 최근 인터넷 방송을 중심으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 이 게임은 3개의 종족이 각자의 특성에 맞게 기술을 발전시켜 자신의 세를 확장하는 게임이다. 이 기술의 시작은 각각 '커맨드센터', '넥서스', '해처리'로 불리는 기지를 건설하고 확장하는 방식이다.
대한민국 공공의료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공공의료의 커맨드센터, 넥서스, 해처리를 제대로 짓지 못하고 민간의 영역으로 넘겼다는 것에 있다. 기본적인 의료의 지휘체계를 권역별 공공병원이 맡고 주위의 민간병원들과 역할을 분담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민간병원에게 떠넘기니 민간병원은 돈벌이 경쟁에만 몰두하고 있다(예를 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비급여 진료를 환자에게 권하는 경우, 불안한 환자 입장에서는 거절하기 어렵다).
서울은 감염병 확산이 급증할 때, 민간병상은 이미 포화 상태였다. 더 이상 병상을 늘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확진자가 늘어나니 민간병원에게 병상 내놓으라고 하고, 환자가 줄어드니 변환한 병상은 나 몰라라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서울을 4~5개의 권역으로 나누어 권역별로 필수의료를 실행할 수 있도록 공공병원 2~3개에 '커맨드센터'를 놓고, 주위의 민간병원들과 협력해 지원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했다면 환자가 급증하는 순간에도 의료 시스템은 붕괴되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2월 초에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오미크론의 폭발적인 확산으로 일일 확진자가 2~3만 명 나올 시기였다. 본인이 확진 판정을 받자, 함께 살고 있는 60대 어머니도 연이어 확진이 되었다. 보건소는 나의 확진을 알린 후, 곧바로 역학조사관과 담당 병원에서 연락이 올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보건소에서는 확진 문자만 보내고 3일 동안이나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보건소에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고, 힘들게 연락이 되었을 때는 "지금 대처 인력이 없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만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상부에서 변경된 지침이 내려와 정신이 없다는 공무원들의 답변도 들었다. 확진 3일째에 힘들게 구호물품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어플을 깔고 체온과 산소포화도를 직접 체크해서 올리라고만 했다. 이틀 동안은 아침에 의료진의 연락이 오더니 사흘째부터는 끊겼다. 확진자가 계속 늘어나 자체 치료로 전환되었으니 응급 시에만 병원에 연락하라고 했다. 7일 후 격리 해제가 되었다.
확진된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확진 판정 이후 아무런 구호물품도 연락도 받지 못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70을 바라보는 어머니가 아무런 증상 없이 넘어가서 다행이었지만 만약 어머니에게 응급상황이 생겼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그렇게 자랑하던 K-방역의 실체를 직접 겪어보니 대한민국의 공공의료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보건의료 영역은 정치적 입장이 크게 갈리지 않기 때문에 공공의료 확충 공약은 모든 후보에게서 나온다. 하지만 공약 이행률은 매우 낮다. 당선자들의 입장에서는 본인 임기 내에 근본적인 시스템을 변화시키기에는 시간이 짧고, 보건의료영역은 계속해서 돈을 투입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기가 막힌 정책도 결국 예산의 뒷받침이 없으면 공허한 울림에 그친다. 공공의료 확대, 강화는 곧 공공의료 예산의 확대를 말한다. 한정된 예산에서 한 분야의 예산 확대는 필연적으로 다른 분야의 축소를 야기한다.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정치의 영역이다.
초유의 감염병 사태에서 치른 20대 대선에서도 공공의료와 감염병 대응체계의 공약은 실종되었다. 앞으로 다가올 6월 1일 지방선거에서는 코로나19 이후 공공의료의 확대와 강화를 제대로 이슈화 시켜야 한다. 거리두기 해제와 함께 코로나 엔데믹에 맞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추상적이고 공허한 구호만 외쳐서는 공공의료 확대라는 대어를 낚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공공의료 예산을 어떻게 확충해야 할까? 서울시의 경우 서울시 보건의료 강화를 위한 특별회계를 추진해 국비를 확대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서울시 담배소비세 중 일부를 적립하고, 각종 기부금과 지역개발기금 등에서 특별회계를 적립하도록 조례를 제정해야 한다. 또 자치구별로 보건의료 수요 비례로 투자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공공의료기관의 착한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보건의료분야 예산을 항목별 예산 방식에서 성과지표별 예산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이렇게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6월 1일 지방선거를 준비해야 한다.
뿌리 깊은 이념논쟁이 반복되는 중앙정치의 영역보다는 기초와 광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진보정치의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6.1 지방선거를 공공의료 확충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보건의료노동조합에서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근웅 입니다.